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7월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 잇따라 대규모 개발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시장에 취임한 그 달에 발표한 용산역 정비창 터 개발이 신호탄이었다. 이어서 여의도 서울항 건설, 서울혁신파크 개발, 아파트 35층 제한 폐지, 서울링 건설, 제2세종문화회관 건설, 노들 예술섬 조성 등 사업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에는 한강 개발 사업이 여러 건 포함됐다. 한강 개발 사업이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 오 시장의 1기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미완에 그쳤기 때문이다. 세빛둥둥섬은 사실상 좌초했다가 세빛섬으로 다시 태어났고, 서울항 건설이나 경인운하 연결 사업은 이뤄지지 못했다. 또 역사상 최대 개발 사업으로 꼽혔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부도로 막을 내렸다. 오 시장으로서는 한강에 회한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강을 둘러싼 개발 계획과 관련해 논란도 많다. 가장 논란이 큰 사업은 여의도 서울항 건설과 한강~경인운하 연결 사업이다. 이 두 사업은 짝이다. 유람선이 서해에서 경인운하를 통해 서울로 들어와 서울항에서 사람들을 싣고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1단계로 2024년부터 1천톤급 유람선이 경인운하를 거쳐 서울로 시범운항할 계획이다. 2단계로 타당성 조사와 계획 수립을 거쳐 2026년까지 여의도에 5천톤급 유람선이 댈 수 있는 서울항을 건설한다.
2조7천억원을 투입한 경인운하 사업은 명백히 실패한 사업이다. 2021년 경인아라뱃길공론화위원회는 2012~2019년 물류가 예상의 8.2%, 여객이 예상의 20.2%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그래서 물류 기능은 밤에만 운영하고 물류·여객 기능은 향후 폐지까지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또 4·5등급에 불과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경기도 부천 굴포하수처리장에 고도처리 시설 도입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공론화위원을 지낸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경인운하는 애초 계획대로 시행했지만 망한 사업이다. 오 시장이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실패할 사업을 계속 밀어붙인다. 공론화위 조사에서 시민들이 원한 것은 운하가 아니라, 수변의 휴식 공간과 수질·생태 개선이었다. 그렇게 상식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 가장 먼저 발표한 사업은 용산역 정비창 터 개발이었다. 이 사업은 오 시장이 첫 번째, 두 번째 임기 때 실패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넓이가 50만㎡에 이르는 용산역 정비창에 상업업무 지구의 최대 용적률인 1500% 이상을 허용해 세계 첨단 기업들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오 시장은 여의도에 제2세종문화회관 건설을 발표했다. 서울 도심권이나 동남권(강남권)에 비해 서남권은 오랫동안 규모 있는 공연시설이 없었다. 다만 이 사업은 오랫동안 영등포구 문래동 터에서 준비됐는데, 서울시가 갑자기 여의도로 바꾸는 바람에 논란이 일어났다. 서남권 시민들을 위해 어느 위치가 더 나은지 반드시 토론해야 한다. 이 밖에 오 시장은 반포대교 밑 잠수교를 보행교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고, 마포구 상암동에 관람바퀴인 ‘서울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시장이 네 번째 임기 초기에 쏟아낸 대규모 사업 계획들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전 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오 시장이 네 차례 7년 동안 시장직을 맡고 있는데, 박 전 시장은 세 차례 9년 동안 시장직을 맡았다. 박 전 시장에게도 오 시장만큼이나 시간과 기회가 많았다. 특히 오 시장이 발표한 사업들 가운데는 박 전 시장이 사업을 시행했거나 검토했던 일도 적지 않다.
먼저 한강 개발과 관련해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될 때부터 환경운동연합에서 강력한 요구를 받았다. 바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에 대한 진보 진영의 대안인 ‘한강 재자연화’였다. 2009년부터 이 문제를 연구한 환경운동연합은 서울 한강 하류에서 하굿둑 노릇을 하는 경기도 김포 신곡보를 철거해 한강을 자연 하천으로 되돌리자고 제안했다. 이러면 한강 수위가 낮아져 넓은 백사장이 드러나고 생물종이 다양해진다. 또 강물이 흘러서 수질이 좋아지고 물놀이, 모래찜질, 물고기잡기, 썰매타기 등 다양한 강 활동이 가능해진다.
애초 박 전 시장은 이 대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이 방향은 서울시 한강 관리의 기본 개념이 됐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은 9년 동안 한강 재자연화 사업 추진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한강 재자연화’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박 전 시장 시절 서울시는 2015년 박근혜 정부와 함께 여의도에 통합 선착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현재 오 시장이 추진하는 여의도 서울항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당시 환경단체와 한강시민위원회, 서울시 의회가 모두 반대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박 전 시장이 한강 재자연화를 실현하려 했다면, 당연히 정책 중 최우선 순위에 놨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현상유지밖에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용산역 정비창 터는 서울 집값이 폭등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안정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은 2018년 ‘여의도·용산 통개발'이란 실언으로 서울 집값 오름세에 불을 질렀다. 국토교통부는 2년 동안 손대지 못하다가 2020년 이 터를 8천 가구가 들어서는 미니 신도시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바통은 2021년 다시 오세훈 시장에게 넘어갔다.
민주당의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동거한 2017~2020년에 이곳 전체를 100% 공공임대주택으로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준주거지역 용적률 500%를 허용하면 평균 전용면적 50㎡의 주택 5만 채 정도를 공급할 수 있다. 5만 채는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30만 채의 6분의 1이다. 주택의 크기나 종류, 디자인, 이용자는 수요에 따라 다양화할 수 있다. 서울 한복판인 용산에 5만 채 정도의 품질 좋은 공공주택을 공급했다면 집값을 안정시키고 공공주택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뒤집을 수 있었다.
정기황 시시한연구소 대표(건축가)는 “우리 도시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진보 진영의 생각이 없다. 집값 불안정의 원인은 공급 부족이 아닌데, 계속 수도권에 신도시와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다. 도시 안에서 공공주택을 늘리고 소규모 주거 개선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100% 사유지인 아파트 단지의 인프라를 정부가 직접 공급해야 한다. 그렇게 도시의 공공성을 높여가야 한다” 고 말했다.
보행교 정책도 마찬가지다. 2017년 박 전 시장 시절 한강시민위원회는 한강대교 개통 100년을 맞아 2개인 한강대교 가운데 하나를 전면 보행교로 전환하자는 혁신적 방안을 제안했다. 한강대교는 역사나 위치, 주변 환경, 노들섬, 디자인 등에서 보행교 전환에 유리하다. 그러나 서울시는 차량 교통에 부담이 된다며 거부했다. 차량 교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행권을 강화하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2년이 지나 2019년 서울시는 갑자기 2개의 한강대교 사이에 고가 형태의 보행교 ‘백년다리’를 놓겠다고 발표했다. 접근이 편리해야 할 보행교를 한강대교 사이에 2층으로 설치하는 황당한 방안이었다. 이 방안은 언론과 시민단체, 시의회 등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사업이었다. 이 밖에 반포대교 밑 잠수교나 천호대교 옆 광진교를 보행 전용 다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박 전 시장은 어떤 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보행권 강화는 차량에 과도하게 준 도시 공간을 보행자에게 돌려주려는 것이다. 보행자에게 가장 편리한 곳은 지상 공간이고, 보행로는 어느 한 지점이 아니라 주변의 길들과 쉽게 연결돼야 한다. 백년다리는 오히려 보행권에 배치되는 사업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 장애’와 ‘집행 무능’은 박 전 시장뿐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문 전 대통령은 주요 국정과제이던 4대강 보의 처리나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전체 16개인 4대강 보의 처리는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만 겨우 결정했고, 낙동강과 한강의 11개 보는 검증도 하지 못했다. 공공기관 이전 등 균형발전 정책도 전혀 집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임기 중에 수도권 인구와 수도권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이 50%를 넘었고, 전국 출생률이 1 이하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왜 이런 중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간사위원을 지낸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낙연 총리는 4대강 보 처리를 하는 시늉만 했고 실제로 집행할 의지가 없었다. 민주당도 새로운 사회를 열겠다는 생각이 부족했고, 여전히 개발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을 지낸 조명래 단국대 석좌교수는 “4 대강 보 처리에 청와대는 천천히 하자는 생각이었다 . 민주당 안에선 이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영남에서 표를 잃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 또 행정부 안에서 결정하거나 집행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 고 말했다 .
문재인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 장관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을 지낸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균형발전 정책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당시 청와대의 주요 과제가 아니었다. 남북관계나 집값, 검찰개혁이 우선이었다. 수도권 인구와 출생률이 갈림길에 선 2019년 전후가 좋은 기회였는데 놓쳐버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시사 오랑캐 : 오랑캐처럼 자유로운 외부자의 눈으로 세상사를 봅니다. 4주에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