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관련해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늦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7월5일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도 기자들과 만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내년 총선 이후부터 시작된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공공기관 이전 사업이 진행될 경우 자칫 사업이 지역구 표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시대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한 기관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 수도권-지방 간 균형발전 정책인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제동이 걸렸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을 ‘12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포함했다. 또 이 정책의 책임자라고 할 우동기 위원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여러 차례 “이르면 2023년 말부터 2차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사열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전 경북대 교수)은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어려운 정책은 집권 초기 힘이 있을 때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렵다. 수도권 주민이나 해당 기관 임직원 등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원희룡 장관이나 우동기 위원장이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총선 이후로 넘긴 이유는 총선 과정에서 유치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 국회의원 의석의 절반 가까운 수도권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의 지역구 의석은 2020년 총선에서 253석 가운데 121석(47.8%)이었다. 2019년 수도권 인구가 전국의 50%를 넘어섰으므로, 인구 비례로 지역구를 조정하면 수도권 의석은 절반을 넘을 수도 있다.
더욱이 수도권은 대표적 ‘유동 투표’(스윙보트) 지역이며,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따라서 2024년 총선에 사활을 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수도권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이기지 못하면 총선 승리는 불가능하고, 총선에서 여당이 지면 윤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이 시작될 것이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광주대 교수)은 “과거 청와대나 여당 내부를 보면 어떤 일을 할지보다는 선거를 앞세우는 경향이 강했다.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선거에서 이길 생각뿐이다. 또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수도권 중심주의가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려움을 감수하고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할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은 수도권 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이전을 결국 추진하지 않은 배경에도 이것이 있었다. 실제 2004년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정책을 위헌으로 결정한 배경에도 수도권 유권자의 집값 하락 우려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여당으로서는 수도권 총선 카드로 고려할 수 있다. 주요 격전지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수도권 집값이 하락세라면 2차 이전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여당이 수도권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은 이제 거의 모든 지수에서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이다. 인구는 2022년 전국의 50.5%이고, 청년 인구는 2021년 전국의 55.0%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2021년 전국의 52.8%, 가구 자산은 2021년 전국의 61.2%다. 2020년 ‘1000대 기업’ 가운데 86.9%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고, 2021년 신용카드 사용액은 수도권이 75.6%를 차지했다. 2022년 6월 수도권의 주택 매매 가격은 평당 2131만원으로, 지방(706만원)의 세 배였다. 2022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선 상위 20위 대학 가운데 19개(95%)가 수도권 대학이었다.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 과밀과 지방 쇠퇴라는 본래 문제점 외에 다른 문제들까지 파생시켰다. 이를테면 부동산 가격의 주기적 폭등과 주거 불안정, 지방 대학의 쇠퇴, 청년층의 불만과 불안, 출생률 급락 등이 모두 수도권 집중과 깊은 관련이 있다.
최근엔 지역에서도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싼 이견이 불거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1차 공공기관 이전 때는 10개 혁신도시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2차 이전을 앞두고는 각 광역 안에서도 이견이 나타났다. 이견의 핵심은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혁신도시로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할 것인가다. 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을 이전하기 위해 만든 10개 신도시, 신시가를 말한다.
현행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29조를 보면, 공공기관은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1차 이전 뒤 대부분의 혁신도시가 문제점을 낳았다. 주변 도시의 인구를 끌어들여 주변 도시를 약화시켰고, 인프라 부족으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었으며, 공공기관 이전 과정이 너무 길었다. 따라서 2차 공공기관 이전 때는 혁신도시 말고 배후도시의 쇠퇴한 원도심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도 이런 의견을 밝혔다. “혁신도시에 활용할 부지가 남아 있으면 당연히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기존 혁신도시에 남은 땅이 없다면 배후도시 원도심이나 제3의 지역도 검토할 수 있다. 일단 기존 특별법 체계 안에서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반발을 불렀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자 2023년 1월 혁신도시가 들어선 전국 11개 지역의 전국혁신도시협의회는 즉시 “2차로 이전하려는 공공기관을 혁신도시에 우선 배치해달라”고 요구했다. 공공기관들이 배후도시 원도심 쪽으로 간다면 그동안 혁신도시에 투입한 자원과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함께 1차 이전 때 혁신도시로 지정되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도 공공기관을 이전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2023년 5월 전국 18개 기초지방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 때 인구 감소 지역에 우선 배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2차 이전은 혁신도시와 배후도시 원도심, 제3의 지역 등 삼파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토부의 김복환 혁신도시발전추진단 부단장은 “현행 특별법에 따르면 2차 이전도 혁신도시로 가야 한다. 다만 입법부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법 개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인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려면 수도권 민심과 지역 민심이라는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과연 2023년의 대한민국 사회는 이 두 개의 산을 넘어갈 수 있을까.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오랑캐처럼 자유로운 눈으로 세상사를 봅니다. 4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