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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려면 집이 필요해

전·입학 가정 임대주택 지원 등 경남 함양 서하초 성공 모델, 거창군 등으로 확산 중
등록 2021-11-07 15:20 수정 2022-01-26 11:29
경남 함양군 서하초등학교 인근 LH 임대주택 ‘아이토피아’. 한겨레 최상원 기자

경남 함양군 서하초등학교 인근 LH 임대주택 ‘아이토피아’. 한겨레 최상원 기자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은 전국에서 소멸 위험이 높은 지역(읍·면·동 기준) 1위였습니다. 2020년 5월 기준으로 20~30대 여성인구에 견줘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는 뜻입니다(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 분석). 2021년 5월엔 신원면이 3위로 내려오고, 거창군 가북면이 전국 1위가 됐습니다. 신원면이든 가북면이든, 거창군은 ‘지방소멸’이라 부르는 거대한 흐름의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2021년 10월19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시·군·구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고시했습니다. 거창군도 89곳 중 하나입니다. 정부가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는 거창군의 최남단 신원면을 찾아갔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신원면은 거창군에서도 가장 교통이 불편한 오지라, 누구도 오려고 하지 않는 동네”라고 말합니다. 신원면에 우뚝 솟은 감악산에는 겨울철 눈이 많이 내려 교통에 큰 불편을 겪기도 합니다. 해발이 높아, 여름철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5℃ 이상 낮아 고랭지 채소를 많이 재배합니다. 이렇게 춥고, 찾아오기도 힘든 동네에 최근 주민이 늘었다고 합니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신원초등학교엔 오히려 학생 수가 늘었습니다.
2021년 9월과 10월 두 차례 걸쳐 신원면에 머물며 신원초 학생, 학부모, 교사, 주민과 거창군청 관계자 등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라지는 마을에 살다’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_편집자주

현재 경남 거창군에는 11개 초등학교가 있다. 11개 면마다 초등학교 딱 1곳씩만 있는 셈이다. 이 중 전교생이 70명인 가조초등학교를 제외하곤 모두 ‘작은 학교’다. 절반이 넘는 학교 6곳의 전교생 수는 학교마다 3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언제 폐교될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지만, 면 지역에 초등학교가 1곳뿐이면 폐교·통합 대상에서는 제외되기 때문에 그나마 명맥을 이어간다.

전교생 14명→36명, 서하초의 기적

저출생 시대라지만 전국의 초등학교 수는 최근 몇 년 새 늘어나는 추세다. 2013년 이후 세종시에 초등학교 49곳이 새로 설립됐고, 경기도에서도 초등학교가 100곳 이상 늘었다. 전국 초등학교 수는 1999년 5544곳에서 2021년 6157곳까지 600곳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수도권과 광역시, 비수도권 지역을 나눠보면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수도권과 광역시 초등학교는 2243곳에서 3193곳으로 1천 곳 가까이 늘어난 반면, 비수도권 지역은 3301곳에서 2964곳으로 줄었다(그래프 참조).

강원도,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등에서 폐교한 초등학교가 많았다. 많게는 129곳(전남), 적게는 7곳(경남) 줄었다. 경남에서는 거창군에서만 5곳이 폐교했다. 1999년 남상초·모동초·석강초·하성초, 2008년 중유초가 없어졌다. 경남도교육청은 전교생 30명 이하인 초등학교는 폐교하거나 인근 학교와 통합을 권장하고, 20명 이하인 학교는 적극적으로 폐교·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자 인구 감소와 폐교 위기를 지켜볼 수만은 없는 지자체가 나섰다. 거창군은 함양군 서하초등학교 사례를 모델로, 2020년 6월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1931년 개교한 서하초는 1970년대만 해도 전교생이 1천 명을 넘겼다. 하지만 농촌인구가 줄면서 학생 수도 줄었고, 2019년 전교생이 14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를 맞았다. 학교가 문 닫을 위기를 맞자, 서하면 주민들은 2019년 ‘서하초 학생 모심 위원회’를 만들고 집과 일자리를 내걸어 학생을 모았다. 서하초에 자녀를 전·입학시키는 가정에 집을 마련해주고 부모 일자리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1억원으로 전셋집 5채를 확보했다. 전교생 해외 어학연수와 장학금 지급 등 초등학교에선 보기 드문 파격적인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2019년 12월, 75가구 144명이 서하초로 전·입학하겠다고 신청했다. 다자녀 가구를 우선해 순서를 정했다. 2020년 15명(7가구)이 학교에 전학 또는 입학했다.

전·입학 신청자는 많은데 살 집이 부족하자, 2020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양군은 서하초 인근 밭을 사들여, 12가구가 살 수 있는 임대주택 ‘아이토피아’를 짓기로 했다. 2021년 2월 임대주택이 완성돼 12가구가 입주했다. 3월 서하초의 학생 수는 초등학생 36명, 유치원생 9명으로 45명까지 늘었다.

빈집 고치고 임대주택 짓고

서하초의 ‘기적’을 모델로 삼아 거창군도 2020년 7월 ‘작은 학교 살리기’ 대상 학교로 신원면 신원초와 가북면 가북초를 선정했다. 서하초의 사례에서 보듯 ‘작은 학교 살리기’의 핵심은 ‘집’이다. 아무리 학교가 좋아도 살 곳이 보장되지 않으면 인구 유입은 어렵다.

거창군은 주인이 숨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비어 있는 집이 많다는 것에 착안했다. 거창군에는 빈집이 457채나 있었는데 이 중 리모델링 등의 방법으로 재활용할 수 없는 철거형 집이 252채, 활용 가능한 집이 205채였다(2019년 9월 기준). 임양희 거창군청 인구교육과장은 “원래 집주인이 숨져서 비어 있는 집이 많은데 상속받은 자식들이 집을 방치해버려 동네에 사람은 없고 비어 있는 집이 흉물로 자리잡고 있다”며 “빈집 문제도 해결하고 새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살 곳도 마련해줄 수 있는 활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거창군은 2020년 10월 말부터 학교 근처 빈집을 찾아 전·입학 세대를 위한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거창군이 2천만원씩 투자해 빈집을 리모델링해주고, 빈집 주인은 무상으로 전·입학 가구에 집을 빌려주기로 했다. 임대 기간은 3년이고 1차례 임대를 연장할 수 있다. 거창군은 신원면 4곳, 가북면 4곳, 주상면 1곳, 웅양면 1곳의 빈집을 찾아 리모델링했고 이를 통해 48명이 군에 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더 많은 살 곳을 마련해주기 위해 거창군은 LH와 협력해서 신원초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가정에 제공할 임대주택을 학교 근처에 짓기로 했다. 2021년 8월 신원초 근처에 부지를 선정해 착공했다. 2022년 2월 입주 예정이다. 함양군 ‘아이토피아’처럼 다자녀가정 10가구와 저소득가정 2가구가 입주할 수 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모두 9차례까지 연장할 수 있어,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했다. 보증금과 한 달 임대료는 아이토피아와 비슷한 수준(전세 시세의 30~40%)이 될 예정이다. 아이토피아의 경우 다자녀형 임대주택은 보증금 875만1천원에 한 달 임대료 20만~21만원, 저소득형은 보증금 629만3천원에 한 달 임대료 9만~10만원을 내고 살도록 했다.

‘작은 학교 살리기’ 바람이 분다

LH와 협력한 ‘작은 학교 살리기’는 경상남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2022년 초에 의령군 대의초등학교, 함양군 유림초등학교 인근에도 임대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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