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차 희미해진 별일 아닌 것에 분기탱천한 상태로 누워 잠을 청하던 금요일 밤. 쉬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오른팔이 약간 저릿하다. 이리저리 만져보니 오른쪽 뺨도 약간 감각이 떨어진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한국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충격받은 회장님이 뒷목 잡을 때와 같은 일이 이 젊은 나이의 나에게 닥친 걸까? 겁이 덜컥 났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아 좀더 기다려보자 했으나 다음날 아침에도 저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얄궂게도 아팠다 하면 꼭 주말이다. 불안해하며 월요일까지 기다리느니 응급실행을 택했다. 응급번호로 전화해서 내 몸 상태를 설명하고 움직이는 데 전혀 무리가 없으니 직접 가겠다고 하니, 응급실 쪽이 뇌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으니 가만히 집에서 기다리란다. 잘 걸을 수 있다는데도 굳이 나를 눕혀서 힘겹게 들고 가는 구조대원에게 미안하고 걱정스레 바라보는 동네 주민들과 마주치는 눈동자가 멋쩍어서 천장만 바라봤다.
응급차가 도착한 곳은 축구의 성지 산시로경기장 근처에 있는 산카를로병원이다. 오늘 안에는 집에 돌아오겠지, 길어야 하룻밤이겠거니 하며 나를 태운 환자 침대는 응급실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몇 시간 기다리니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다. 혈관 조영제 때문인지 온몸에 시뻘건 두드러기가 나서 항히스타민 주사를 맞고 뻗어 있는데 이윽고 의사가 다가와 말한다. 확신할 순 없지만 어쩌면 허혈성 뇌졸중일 수도 있다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전쟁터 같은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워 홀로, 홀로 눈물만 흘렸다. 이게 웬 청천벽력인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놀랄까봐 별일 없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하룻밤이 지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침 식사를 툭 던져준다. 비스킷 세 조각과 일회용 컵에 담긴 홍차 한 잔. 만 하루가 지나서야 슬슬 요의가 찾아와 간호사에게 이야기하니 침대 위에서 일을 보게끔 하는 변기를 가져다준다. 여기는 응급실이라서 어쩔 수 없다며. 하필이면 내 자리는 의사와 간호사가 컴퓨터로 차트를 작성하고 출력하는 곳 바로 옆에 가림막도 없이 있었기에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볼일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걸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춤도 출 수 있는 컨디션이라고 읍소한 뒤 몸통에 붙은 오방색의 코드들을 뽑아 던지고 내 발로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거의 30시간 만에 몸을 일으켜 움직이니 걸음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응급실은 환자가 차고 넘쳐 병원 복도까지 병상이 놓여 있었다. 회복실도 다 차서 월요일은 돼야 나를 올려보낼 수 있단다. 일요일 저녁에 졸다 말고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두어 차례 피검사를 했어도 현재까지 아무것도 확실치 않아 자기공명영상(MRI)을 봐야 할 거 같다는 결론이 났다. 오른팔과 뺨 저림도 진즉에 사라졌고 집에 가고 싶다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도 다 집에 가고 싶다”고. 원인 규명이 안 됐으니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단다.
응급실에서 만 이틀을 보낸 뒤 회복실로 옮겼다. 몸도 못 가누고 말도 못하는 상태의 아주머니와 한방을 썼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뀐 병원은 커튼을 떼어내서 큰 창으로 해가 여과 없이 들이쳤고 병실 밖에 나가는 게 금지됐다. 보호자나 지인의 병문안이 금지된 것은 물론이었다.
오매불망 MRI 검사를 기다리며 사흘이 더 지나가는 동안, 같은 병실의 아주머니 프란체스카가 천천히 회복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식물인간 아닌가,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는 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식사도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유감이고 안타까웠다. 담당 의사의 결정으로 남편을 방호복 입혀 병실에 들여 프란체스카에게 말도 시키고 자극을 줄 수 있게 했다. 남편이 들어와서 프란체스카의 손에 입을 맞추며 인사하자, 조각상처럼 가만히 있던 그녀의 입이 힘겹게 열리며 말이 새어나오더라.
“차오(안녕)….”
주책맞게도 아무 상관 없는 내가 옆에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천방져지방져’ 흘러나와 화장실에 숨어서 발리에서 무슨 일이 있던 배우처럼 울었더랬다.
목요일 새벽 5시, 겨우 잠든 나를 간호사가 찾아와 깨우며 아침에 MRI 찍을 테니 아무것도 먹지 말란다. 태어나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 톱3 안에 들 것 같은 MRI 검사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그 한심한 아침 식사(비스킷 세 조각과 엉터리 홍차 한 잔)를 하려는 순간, 신경과 담당 의사가 헐레벌떡 들어오며 검사 결과에 따라 척수 검사를 할 수도 있으니 먹지 말고 기다리란다. 대략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그 한 시간 나는 다시없을 비련의 여인이 되어 온 영혼을 끌어모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담당 의사가 돌아와 검사 결과 경미한 목디스크로 인한 손 저림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내일 퇴원서류 나오면 집에 돌아가라고 하는데,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 기뻐서 눈물이 났다. 그제야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지난 일주일간의 악몽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일주일을 병원에 있으면서 온갖 검사를 했으니 돈깨나 나왔겠네라고 한국의 몇몇 벗이 묻는다. 그러나 내 퇴원서류에는 의사소견서와 검사결과지만 잔뜩 있을 뿐 금액 이야기는 없다. 이탈리아 국가의료보험에 가입하면 국공립 병원비는 0원이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1년에 150유로(약 20만원) 정도 냈고, 일하는 지금은 세금에 포함돼 있다. 물론 한국의 의료시스템과 한의원이 몹시 그립지만, 이곳에서는 적어도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 걱정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 북부 이탈리아에는 사립병원도 많다. 특히 치과나 피부과, 성형외과는 대체로 사립병원이라 비용이 상당한 편이다. 예를 들어 성악가 친구들이 자주 찾는 성대 전문 의사에게 한번 진료받으려면 보통 150~200유로가 든다. 하지만 국공립병원에서 심장수술이나 뇌수술 등 위급한 수술을 받은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돈은 한 푼도 안 냈다고 한다. 외부에서 사적으로 들이는 간병인 같은 것도 없고 무조건 병원 인력으로만 환자를 돌보더라. 병실을 같이 쓴 프란체스카의 경우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물리치료사가 와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를 움직이게끔 도와줬는데 그것도 다 의사 처방에 따른 치료에 포함됐다.
지난 글에서 신나게 이탈리아 욕을 했다마는, 돈이 있든 없든 사람을 죽게 놔두지 않겠다는 이탈리아 의료시스템의 휴머니즘에 나의 작은 박수를 보낸다.
밀라노(이탈리아)=글·사진 박사라 스칼라극장 성악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스칼라극장 성악가로 활동하는 박사라씨가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유쾌하게 집필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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