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020년 2월19일 해경 수뇌부 11명을 기소했다. 이후 4차례 공판 준비기일과 6차례 공판이 진행되고 피고인 김석균(당시 해양경찰청장)과 이춘재(전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를 비롯한 12명이 증인석에 앉기도 했다. 검찰이 진심으로 정성과 공을 들였다면 재판부의 마지막 판단이 남아 있더라도, 이즈음이면 ‘해경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끝나간다’는 후련함을 맛봐야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더 높은 장벽에 부딪혔다는 답답함과 막막함을 느낀다.
2021년 1월11일 열린 결심 공판은 ‘피고인 신문’ ‘검찰 구형’ ‘변호인 최종 변론’ ‘피고인 최후 진술’ 등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40분까지 숨가쁜 일정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중간에 고 장준형군의 아버지 장훈씨와 고 이재욱군의 어머니 홍영미씨의 피해자 진술도 들었다. 새로운 쟁점은 없었다. 피고인 김석균은 많은 생명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이 남아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천도재’를 지냈다는 것과 피고인 김문홍(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이 사력을 다해 구조해도 모자랄 시간에 10시50분까지 여섯 번이나 사적인 통화를 했다는 사실이 조금 신선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퇴선 명령은 선장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단골 메뉴는 이날도 빠지지 않았다. 검찰은 퇴선 명령을 오직 선장만이 할 수 있다면 △09:45 현장 출동함정 여객선 라이프래프트 및 구명벌 투하하라고 지시할 것 지시(상황문자시스템) △09:50 경찰관이 직접 승선하여 현장 조치할 것 지시(상황문자시스템) △09:51 경찰관이 직접 승선하여 현장 조치할 것 지시(상황문자시스템) △09:56 “기울었으면 그 근처에 어선들도 많이 있고 하니까 그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고함을 치거나 마이크를 이용해서 뛰어내리라고 하면 안 되나? 반대 방향으로?”(TRS·주파수공용통신) 같은 지시를 해경이 왜 했느냐며 따졌다. 하지만 나머지 쟁점들은 앞의 방청기에서 다 논의됐던 사항이므로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해 많은 시민이 ‘당사자들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조건으로 요구한다. 이 기준은 세월호 사건 피고인들의 선처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그들이 법정에서 ‘뒤늦게라도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아이들 앞에서 용서를 구한다’면, 나는 재판부가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도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재판이 진행되는 1년 가까운 세월을 ‘그래도 피고인들이 반성하며 약간의 진실은 밝히겠지’ 하는 심정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피고인들에게 그런 행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치임을 재판장이 변론 종료를 선언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여인태 변호인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하겠다”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은 자신의 잘못과 진실을 솔직히 밝히고 원통하게 죽어간 아이들을 향해 반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들은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피고인 김수현(전 서해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한 몇몇이 유가족 두 명만 앉아 있는 방청석을 향해 머리 숙였지만, 이어진 변명에서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깊이 반성한다’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도, 그 끝에는 자신의 당위성을 호소했다. 게다가 세월호 침몰 사건의 트라우마로 “불안·초조·불면증”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고도 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정년 5년을 앞두고 불가피하게 퇴직했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심지어 피고인 여인태(해양경찰청 해양경비과장, 현 제주해양경찰청장)의 변호인은 “당시 행동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똑같이 행동하겠다”고 했다.
앞서 피고인 김석균도 아무런 지휘를 하지 않은 해경 수뇌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불이 났을 때 소방본부 상황실에서 화재 현장 소방관에게 건물 진입을 지시할 수 없듯이, 세월호 침몰 당시 중앙구조본부도 직접 개입해서 현장을 지휘할 수 없다. 본청 상황실에 있던 피고인 등이 구조현장의 구조세력에게 선내 진입 및 퇴선 명령을 하는 것은 오히려 구조에 혼란만 초래한다.” 또 미국 9·11 테러와 영국 지하철 테러 사건, 충북 제천 화재 사건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적으로 현장 구조세력을 처벌하는 사례는 없고 현장 구조세력을 처벌한 사례는 123정 정장 김경일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전세계에 유일하게 세월호 사건만 구조세력을 처벌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이 예로 들었던 사고 중 해경의 구조 방기로 참사가 일어난 사례는 없다. 미국 9·11 테러의 경우 뉴욕시 소방관 343명, 뉴욕시 경찰관 23명, 항만 경찰 37명, 사설 EMT(응급구조사) 8명, 화재 순찰관 1명까지 모두 합해 무려 412명(+경찰견 1마리)이 이 사건으로 순직했다. 제천 화재 사건도 진압 방법론에 오류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구조를 방기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얼마나 억지 주장을 하는지 그들만 모르는 것이다.
세월호가 멀리 떨어져 있어 구조세력인 123정과 511호 헬기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세월호 선내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해경 수뇌부는 주장한다. 실제로는 세월호 여객부 승무원 강혜성과 탑승객들이 해경신고전화 122로 구조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상황실에 알려줬다. 9시17분께 상황문자시스템에서 “세월호 관계자 전화 통화 결과 현재 침수 중이며 침몰 위험으로 구조 요청한다는 사항입니다”라고 상황을 전파했던 것을 봐도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은 세월호 선내 상황을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세월호에서 511호 헬기 도착 보고, 123정장 김경일과 피고인 여인태의 통화 등에서 반전을 기대할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해경 수뇌부의 부주의로 그 어떤 기회도 살리지 못했다.
이날 검찰은 김석균에게 법정 최고형인 금고 5년을 구형하는 등 대부분 피고인에게 금고 3년 이상을 구형했다. 이미 2015년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던 123정 정장 김경일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법률 문외한이 보더라도 구형량이 결코 작지 않다.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거짓 반성에 속아 ‘너무 가벼운 형을 선고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게 현재 소망이다.
선고 공판은 2월15일 오후 2시에 열 린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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