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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재판 방청기] “내 목소리 못 들었냐”며 화낸 서장님은…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 당일 아무런 지시 없다가 한 달 뒤 허위 문서 작성, 근무자 반발로 3009함 항해 일지는 꾸미지 못해
등록 2020-12-14 19:16 수정 2021-04-16 13:41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이 2015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이 2015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된 피고인 김석균(당시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수뇌부 11명에 대한 재판 진행 절차가 이미 8부 능선을 넘어버렸다.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의 관전평을 종합하면, 검찰 공격의 칼끝은 예리하지 못했다. 정곡을 찌르지도 피고인들의 반격을 명쾌하게 막아내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재판은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세 번째 공판기일인 11월23일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당시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장이던 이병윤을 비롯한 5명의 증인이 법정에 나왔다. 검찰은 이들을 통해 피고인 김문홍(목포해양경찰서장)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문홍의 범죄 혐의는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9시14분께 3009함에서 이병윤(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장)과 전화 통화를 했는가 △이재두(3009함 함장)와 김성민(3009함 승조원)에게 압력을 가하여 허위 공문서(‘목포서장 행동사항 및 지시사항’)를 작성하게 했는가 △항박일지 또는 가일지 허위 작성에 관여했는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아무도 기억 못하는 지시

현장책임자인 김문홍은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사고 현장으로 직접 이동해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지휘했어야 한다. 하지만 감사원은 감사를 통해 그가 “10시까지 아무런 지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김문홍은 이병윤과 전화 통화하고 그 지시 내용을 공문서로 남겼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화 통화와 공문서를 김문홍이 꾸며낸 허위로 보고 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2014년 4월 말, 목포해양경찰서 상황담당관 조형곤과 상황실장 3명(이현수·백남근·이병윤)은 김문홍 집무실로 호출됐다. 김문홍은 “세월호 침몰 당일 아침 나하고 통화한 사람이 누구야”라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 들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냐?” 김문홍이 화내자 이병윤이 답했다. “서장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김문홍은 감사원 감사에서 오전 9시14분께 ‘이병윤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주장하며 △가용 세력 총동원 △세월호 승객 퇴선 명령 △해상크레인, 예인선 동원 등 구조작업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증인으로 나온 이병윤은 법정에서 ‘(김문홍과의) 전화 통화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단순히 TRS(주파수공용무선통신시스템) 등에서 김문홍의 목소리를 들었다’고만 했다. 앞서 이병윤의 진술을 검찰 조사에서 전해들은 김문홍은 “(날) 교도소 보낼 일 있냐!”고 화냈다고 한다.

김문홍이 했다고 주장하는 세월호 침몰 당일 구조행위는 ‘목포서장 행동사항 및 지시사항’에도 담겨 있다. 또한 같은 내용으로 3009함 항박일지 또는 가일지도 작성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증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재두와 김성민은 김문홍의 압력을 받아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 반면 3009함 당직 근무자들은 끝까지 반발해 항박일지 허위 작성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책임자인 안전팀장(경위)이 서명날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당일 해경은 기록이 남는 TRS와 문자상황정보시스템을 이용해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했다. 따라서 김문홍이 주장하는 것처럼 능동적으로 구조작업을 지시했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증거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유효한 증거는 전혀 없다. 아무리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도, 해경들이 모두 김문홍의 지시사항을 기억하지 못할 수는 없다. 따라서 김문홍의 구조 지시 주장은, 오직 형사 책임을 면할 목적에서 만들어낸 허위 진술로 보인다.

‘계획서’에 중대 사고시 임무 적혀 있는 이들의 책임

세월호 사고의 구조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해경이 꾸린 중앙구조본부와 관련한 문제도 핵심 쟁점으로 등장했다. 첫째, 피고인 최상환(전 해양경찰청 차장)이 세월호 침몰 당일 중앙구조본부의 ‘부본부장’ 지위를 유지했느냐 문제로 다퉜다. 당시 본부장은 해경청장 김석균이었고, 부본부장은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검찰은 ‘2014년도 수난대비 집행계획’을 최상환이 결재했다는 점을 들어 그가 부본부장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수난구호법’(제4조)은 ‘수난대비 집행계획 작성’을 규정하고, 이 규정에 따라 해경은 2014년 3월 ‘2014년도 수난대비 집행계획’을 수립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과 같은 중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하지 말고 즉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진행하기 위한 조처였다. 따라서 이 계획서에 ‘부본부장과 구난 조정관’이 지정돼 있다면, 별도의 임명 절차가 없더라도 그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중앙구조본부가 구조를 진행할 때 ‘임근조(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와 여인태(해양경찰청 해양경비과장) 등 두 피고인에게 과연 책임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목포, 여객선 세월호 전복 관련-중앙구조본부 운영계획’에 두 피고인이 ‘상황반원’으로 지정돼 있기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상황반원은 중앙구조본부 내에서 구조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하는 등 실무를 맡는 인원이다.

임근조 쪽은 (상사인) 피고인 이춘재(당시 경비안전국장), 주무과장인 박종철(당시 수색구조과장)이 상황실에 임장(입장)하는 시점부터 구조지휘 권한이 그들에게 이관돼 자신은 구조 책임이 없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는 상황대책팀 또는 중앙구조본부가 비상가동하는 순간 임근조의 지휘권이 이춘재 또는 박종철에게 이관된다는 얘기지, 임근조의 모든 구조활동 책임이 면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앵무새처럼 “총력대응, 신속대응”

이러한 전후 사정을 정확히 아는 피고인 김석균은, 끝까지 두루뭉술한 동문서답을 했다. 한때 자신의 하급자였던 사람들의 책임을 면제해 주려는 리더의 모습도 없었고, 자신만 살겠다고 물귀신처럼 동료들을 끌고 들어가지도 않았다. 앵무새처럼 ‘총력대응, 신속대응’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재판이 끝나갈 무렵 재판장은 피고인 쪽 변호인들과 향후 재판 일정을 조율했다. 재판부는 “12월14일을 비롯해 내년 초에 한 차례 더 재판을 진행한 후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검찰 쪽은 박종철에 대한 추가 증인 신청은 하면서도 재판 일정에 대한 추가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음 재판은 12월1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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