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피고인 11명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진수성찬이길 바란 적은 없다. 그들이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만이라도 밝혀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피고인들은 ‘일사부재리 원칙’(판결이 확정되면 같은 사건으로 다시 재판하지 않음) 혜택을 받고, 검찰이 피고인들에게 면죄부를 선물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직전 방청기 보도(10월9일) 이후 재판부는 서증조사(10월26일)와 5명에 대한 증인신문(11월2일) 등 두 차례 공판을 추가 진행했다. 검찰은 서증조사에서 이렇다 할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피고인과 참고인의 새로운 진술서가 공개됐지만, 진술 내용은 2014년 수사 결과에서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11월2일 재판에선 세월호 침몰 당시 해양경찰청 수색구조과 근무자 2명과 해경청 상황실 근무자 1명 등 3명이 해경청 관련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세월호 관련 중앙구조본부 운영 계획’과 ‘그랜드포춘호 침몰 관련 중앙구조본부 운영 계획’이란 문건을 제시하며 피고인(김석균 전 해경청 청장, 최상환 전 차장, 이춘재 전 경비안전국장, 여인태 전 경비과장, 임근조 전 상황담당관)들의 범죄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를 따졌다.
세월호 침몰 사건 발생 12일 전인 2014년 4월4일 선원 16명이 탑승한 상선 그랜드포춘호가 남해에서 침몰했다. 이때 해경청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랜드포춘호 중앙본부 운영 계획’이라는 구조계획을 작성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청 수색구조과에 근무했던 증인 2명은 이 구조계획을 참고해 ‘세월호 중앙구조본부 운영 계획’을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두 문건을 대조해보면 사건명과 관할 기관만 바꾸었을 뿐 그대로 베낀 것이다.
검찰은 두 문건을 비교하면서 조직도상 이춘재 전 경비안전국장(당시 상황반장) 밑에 과장급 피고인들(여인태 전 경비과장, 임근조 전 상황담당관)이 소속됐다는 점과, 관련 문건을 피고인 최상환(전 해경청 차장)이 결재했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들의 책임이 있음을 주장했다. 피고인들이 중앙구조본부에 소속됐으므로 사고 당시 구조 의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그동안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 본청 ‘중앙구조본부’가 새로운 조직으로 구성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검찰은 이를 ‘상설 조직’으로 판단했다. 나는 이러한 검찰 판단에 동의한다. 다만 검찰은 해경청의 중앙구조본부 비상체계로의 전환 시점을 밝혀야 한다. 김석균 전 청장이 해경청 위기관리실에 온 시점(4월16일 오전 9시19분께) 이후 실질적인 중앙구조본부가 가동됐다면, 해경의 늑장 대응으로 소중한 구조 기회가 날아가버렸다는 결과에 이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확실히 따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피고인들 쪽은 세월호 중앙구조본부 운영 계획에서 자신들의 직책이 빠져 있거나 정확한 임무가 정해져 있지 않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서해해경청과 관련해선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VTS센터장과 서해해경청 상황실장 등 증인 2명이 출석했다. 당시 서해해경청의 김수현 청장, 김정식 경비안전과장, 유연식 상황담당관 등 피고인들의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와 관련된 증인들이다. ‘탈출 여부는 (세월호)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당시 교신 내용이 주요 쟁점이었다.
세월호 침몰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26분께, 세월호에선 진도VTS와의 교신을 통해 “지금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게다가 세월호 인근에서 항해하며 이 교신을 듣고 있던 둘라에이스호가 교신에 개입해 “맨몸으로 하지 마시고 라이프링(구명튜브)이라도 착용시켜서 탈출을 시키십시오, 빨리”라고 외치고 있음에도, 진도VTS에선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세월호) 선장님이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을 해주십시오”라고 답변했다.
이날 공판에서 증인들은 “유연식 상황담당관이 통화에서 ‘여기서는 침몰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르니 현장에서 판단해서 탈출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유연식 담당관이 역정을 내면서 ‘그런 거(탈출 결정)는 서해해경청장이 판단할 일이 아니고, 우리 일도 아니다. 서해청 상황실에 굳이 보고 안 해도 된다’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우리 일이 아닌 것 같은 식으로 얘기했다” 등의 증언을 했다. 당시 승객 탈출이 신속히 결정되지 않아 대형 참사가 일어난 만큼 이 부분의 명확한 책임이 밝혀져야 한다.
따지고 보면 피고인석에 앉은 피고인들이나 증인 신분으로 출석한 증인들 모두 세월호 사건의 이해관계인이며 일말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증인들은 더듬더듬 얼버무리면서 답변을 회피하거나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며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세월호 침몰 당일 피고인들은 법·매뉴얼상 반드시 이행했어야 할 작위의무(법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이들이 이행했어야 할 작위의무를 명확히 확정하고, 이들이 왜 이것을 이행하지 않았는지 밝혀 세월호 참사의 진상에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예리하지 못한 칼날과 칼끝으로 피고인들을 공격하는 검찰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 사건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절망을 느꼈다.
이날 재판이 마무리될 무렵 김석균 피고인의 변호인이 “여기 피고인들이 다 직무유기로 고발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지난해 3월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처리했다. 일부 피고인이 불기소 결정문을 받았는데 익명 처리돼 있어 알아보기 어려우니 불기소 결정문을 검찰에서 제시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에 재판장은 “(피고인들 쪽에서) 유리한 증거로 제출하면 되겠다”고 답했다.
이 건은 2018년 내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피고인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고발했던 것이다. 서울중앙지검과 광주지검이 서로 공을 넘기면서 1년여 시간을 허비했고, 검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소·고발 결과가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로 제출’된다고 하니, 이 나라에 진정으로 법치가 작동하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검찰 쪽 5명의 증인신문 절차와 피고인 신문 절차가 남았으므로, 검찰이 ‘세월호 침몰 당시 왜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진상을 규명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 다음 공판기일은 11월23일 오전 10시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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