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12일 오후 2시. 드디어 해경의 세월호 참사 핵심 책임자 김석균(전 해양경찰청장) 등 피고인 11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이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장을 2월18일 제출했으니, 그들은 8개월 가까운 세월을 불안감 속에서 살았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1기 특조위 청문회 자리에서 보여줬던 뻔뻔하고 당당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소곳이 앉아 선처를 읍소하는 피고인들 모습은 인생무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참사 6년 반 만에 법정에 서다
제1차 공판기일은 검찰이 피고인들의 공소 내용을 설명하고 피고인 쪽 변호인과 피고인의 모두 진술을 듣는 순서로 진행됐다.
공소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에는 상황정보시스템인 ‘코스넷’이 각급 함정에 띄워졌고, 무전기 등이 함정·헬기와 연결돼 있었다. 또 VHF라는 초단파 무선통신기기도 민간선박인 세월호와 연결됐으며, 비록 바다 위지만 경비정 공용휴대전화도 충분히 사용 가능했다. 이런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피고인들은 각 구조본부와 진도 VTS, 세월호 등과 실시간 정보 공유와 지휘·통제가 가능한 상태였으며, 123정 정장 김경일이 수색구조 매뉴얼에 의해 현장지휘관으로 지정된 상태였으므로 충분히 구조를 지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①123정은 100t급 경비정인 반면, 세월호는 6800t급 대형 여객선박이었던 점 ②123정 승조원이 13명뿐이고 그중 3명은 의경이었던 점 ③123정 승조원들은 침몰하는 선박에서 승객을 구조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고 단지 물 위에 떠 있는 사람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위 계급에 불과한 김경일 정장이 현장지휘관으로 지정됐다 하더라도 각 구조세력을 효율적으로 지휘·통제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모든 것을 123정 정장 김경일에게 맡겨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 책임이 막중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경 구조세력 출동 당시 피고인들은 각 구조본부 상황실, 관제센터, 현장구조 세력의 모든 교신수단을 동원해 세월호 선장 또는 승객과 교신을 유지하게 해서 구조상황을 확인하고 이를 각 구조본부와 구조세력에게 전파했어야 한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법령과 매뉴얼로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또 출동 구조세력이 세월호 침몰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①해당 구조세력이 세월호 선장이나 선원들과 교신해서 선내방송을 통해 승객이 구명동의를 입고 최대한 빨리 비상 대피 장소로 이동하도록 지휘했어야 하며 ②123정 방송 장비와 메가폰 또는 승조원 육성으로라도 승객들이 빨리 선내에서 탈출하라고 퇴선을 유도했어야 하고 ③구조 헬기에 탑승한 항공구조사들에게 메가폰으로 퇴선을 유도하거나 래펠을 이용해 갑판에 내려가 퇴선을 유도하라고 지시했어야 한다. 하지만 피고인들이 이와 같은 지휘를 하지 않아 304명이 사망하고 142명이 상해를 입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미 앞선 방청기에서도 밝혔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우리 유가족이 가장 궁금해하는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이 누락돼 많은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일정 부분 동의는 한다.
피고인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 설명이 종료되자, 재판장은 변호인과 피고인들에게 모두 진술 기회를 줬다. 이때 이재두(전 3009함장) 피고인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 쪽은 해괴한 논리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송구스럽다’ ‘침몰 이후 7개월간 진행된 희생자 수습 과정에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 ‘지난 몇 년의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았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정작 자신들 책임과 직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진술 없이 “최선을 다했다” “매뉴얼상 책임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퇴선 명령 책임은 선원에게 있다?
특히 피고인 김석균은 “선박의 구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조가 아니다. 어떤 배에 가도 선원의 안내를 받지 않으면 출구도 모를 만큼 미로다. 여객선이 침몰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퇴선 지시만 내렸다고 해서 쉽게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퇴선 유도는 선장이나 승무원이 해야 하는 고유 권한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말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구호세력을 처벌한 경우는 김경일 정장 사례가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광역구조본부 지휘를 책임졌던 피고인 김수현(전 서해해양경찰청장)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 “선장의 절대적 권한이 있는 퇴선 조치를, 추운 날씨 속에 수온이 12도였는데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멀리서 상황을 알지 못하는 구조세력들이 무조건 바다에 뛰어내리라고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해경의 구조 관련 매뉴얼은 ‘구조세력이 침몰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침몰하는 선박의 선장과 교신을 설정하여 관련된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조계획을 수립하여 침몰 현장 도착 즉시 선장 등과 함께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피고인들이 이를 위반해 지금 법정에 서 있는데, 피고인들은 이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내 눈엔 비쳤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구조 가능했던 시기에 해경 구조세력이 침몰 현장에 도착했고, 물리적·시간적으로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피고인들이 적합한 구조를 지휘하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까지 외부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이때 피고인들이 승객 구조를 위해 노력했다는 구조행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우왕좌왕했던 정황만 감지된다. 특히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은 여객부 승무원 강혜성과 세월호 탑승객의 122 신고 전화를 통해 ‘세월호가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고 승객 1명이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 곧 침몰할 것 같다는 사실,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다는 사실’ 등 구조에 필요한 정보를 이미 모두 파악했다. 하지만 이후 적합한 구조 조치를 하지 않고 입수한 정보를 보고·전파하지 않아 초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피고인들은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했다는 구조 행위의 구체적 사례는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진지하게 “최선을 다했다”고 당당하게 주장해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유가족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내게 고백했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이날 재판은 본격적인 다툼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지만, 나는 이미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는 ‘피고인들이 잘못을 반성하고 진실만 말한다면 그들을 용서하라는 탄원서라도 써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내 기대를 접도록 했다. 다음 재판은 10월26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이날은 서증 조사만 온종일 한단다. 본격적인 증인신문은 11월2일부터 진행한다고 한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10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법정 안에서 내 인내심을 시험할 기회는 아직도 여러 번 남아 있는 셈이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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