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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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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모범생 과천이 뜨겁다

동네정치 역사 오래된 과천의 시민통합 후보 4인…

공동체 훼손하는 양당정치에 시민정치 처방하다
등록 2018-05-26 02:49 수정 2020-05-03 04:28
왼쪽부터 김진숙 다함 회원, 구자동 과천시의원 예비후보, 안영 과천시장 예비후보, 성미선 과천시의원 비례 후보(녹색당), 김은환 다함 회원. 다함 제공

왼쪽부터 김진숙 다함 회원, 구자동 과천시의원 예비후보, 안영 과천시장 예비후보, 성미선 과천시의원 비례 후보(녹색당), 김은환 다함 회원. 다함 제공

경기도 과천시는 인구 5만7224명(4월 말 기준)의 작은 도시다. 생활협동조합, 대안학교, 공동육아 등의 풀뿌리 자치 공동체가 일찍부터 자리잡았다. 시민들의 도시에 대한 애정도 크다. 2015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등이 전국 230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주민 삶의 질 만족도’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애정이 큰 만큼 시민들은 도시의 변화에 민감하고, ‘자치’에 관심이 높다.

이러한 시민들의 애정과 관심은 자연스레 ‘동네정치’로 연결됐다. 시정에 참여하고,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열망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과천풀뿌리 운동은 지방선거 때마다 주목을 받았고, 동네정치의 모범으로 꼽혀왔다.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기존 정당에 속하지 않은 시민 후보가 선거에 나서서 시의회에 진입했고, 2014년에도 시민 후보로 출마한 여성 시의원을 두 명 배출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과천풀뿌리 운동은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과천풀뿌리, 두근두근방과후 등 여러 시민모임·협동조합 구성원 뿐만 아니라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등 진보 정당이 함께 손을 잡았다. 이들은 지난 4년간 시의회에서 활동했던 안영(48) 시의원을 과천시장 예비후보로 과천풀뿌리 전 대표인 구자동(47)씨, 두근두근방과후 전 운영위원장 안수정(47)씨를 시의원 후보로 지난 3월 일찌감치 확정했다. 최근에는 성미선(49·녹색당)씨를 시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결정했다. 네 명 모두 ‘시민통합 후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국면에서 동네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불이 붙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정당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시민의 의사를 시정에 반영하겠다는 과천의 풀뿌리 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풀뿌리 모범생’ 과천을 통해 2018년 동네정치의 현재를 짚어본다.

파랑 빨강 말고 분홍 ‘시민의 힘’

5월11일에 찾은 지하철 정부과천청사역(과천시 별양동) 1번 출구 앞 한 건물의 입구와 외벽을 파란색과 빨간색, 하늘색 펼침막이 나란히 장식하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파란색)·자유한국당(빨간색)·바른미래당(하늘색)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펼침막이다. 대각선에 있는 한 상가 건물엔 낯선 색깔의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짙은 분홍색 바탕에 크고 굵은 글씨로 강조된 ‘시민의 힘’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4층 사무실로 올라가니 20~50대 사이의 남성과 여성 8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는 수다와 토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둘러앉은 이들 모두 나이와 상관없이 존댓말을 썼다. 사무실 한쪽에 붙은 ‘평등문화 약속문’에 쓰인 “서로를 존중하며 평등한 관계를 지향합니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들에게는 누구를 찍든지 투표를 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번주 후보 동선은 이렇게 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같이하는 게 우리 강점이잖아요. (다른 정당들이)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어요. 감시의 시선도 있고… (웃음).”

이들은 안영·구자동·안수정 예비후보의 선거운동 콘셉트와 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성별과 나이만 다양한 게 아니었다. 대학생, 안무가, 직장인, 주부 등 직업도 천차만별이다. 정의당원과 녹색당원도 있고, ‘정알못’(정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자발적으로 후보들을 돕겠다고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계기가 무엇일까. 이들은 자신들이 만족하고 살아온 도시와 공동체가 기존 정당들의 정치로 훼손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또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시의회와 시정에 답답함도 드러냈다.

과천은 서울과 가깝지만 전체 면적의 85%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고, 관악산과 청계산, 생태하천인 양재천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과천시청에서 실시한 2016·2017년 ‘과천시 사회조사’를 보면, 주민들은 도시에 만족하는 것으로 ‘자연친화적 환경’(2016년 70.3%, 2017년 67.4%)을 1위로 꼽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과천은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과 어긋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5천 세대가 넘는 대규모 재건축이 시의 허가를 받아 동시다발로 이뤄지며 지금도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재건축 공사 현장의 석면 해체·제거 작업에 불안을 느낀 인접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낡은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과 안정적인 주거문제 역시 과천의 주요 현안이었지만 막개발을 원하지 않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앞서 2015년에는 과천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취지로 170억원의 예산으로 시민들이 휴식 공간으로 쓰던 야생화 체험 학습장과 밤나무 단지를 캠핑장과 승마 체험장으로 바꾸려 해,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경기도는 관련 사업의 타당성과 환경 피해 최소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재검토 지시를 내렸고, 사업은 중단됐다. 18년간 진행된 거리극 축제는 신계용 시장(자유한국당)이 당선된 뒤 ‘말 축제’로 바뀌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양당정치와 시민정치의 괴리
5월11일 과천시 별양동 상가에 있는 안영 과천시장 예비후보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과천시민정치 다함’ 회원들이 선거운동 방향을 두고 회의를 하고 있다. 다함 제공

5월11일 과천시 별양동 상가에 있는 안영 과천시장 예비후보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과천시민정치 다함’ 회원들이 선거운동 방향을 두고 회의를 하고 있다. 다함 제공

김예원(22)씨는 “고등학교 때 거리극 축제가 말 축제로 바뀌고 승마 체험장·캠핑장 사업이 추진되는 것을 보고 황당해 반대운동에 함께했다. 그 뒤부터 풀뿌리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번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만 참여해왔다는 조준현(39·교육콘텐츠 개발)씨와 석수정(39·안무가)씨는 맞벌이 부모들이 만든 방과후 공동보육 협동조합인 두근두근방과후에서 안수정 후보와 인연을 맺고, 그를 지지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2015년 두근두근방과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집을 샀지만 “아이들 소음이 심하다”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경험이 있다. 당시 주민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졌지만 시는 방관했고, 조합원들은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결국 영구 터전 마련은 무산됐다. 석씨는 “그때부터 동네 일에, 시가 하는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겪은 공통의 경험과 시를 상대로 벌인 ‘싸움의 기억’은 좀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연결됐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만 모일 게 아니라 풀뿌리에 동의하는 정당과 시민들이 한데 모이면 어떨까?” 지난 2월11일 출범한 ‘과천시민정치 다함’(다함)은 이러한 질문의 답이었다. 과천풀뿌리,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두근두근방과후, 여러 시민모임, 협동조합 구성원들과 개인들이 참여하는 지역정치 네트워크로 출범한 다함은 3월16일 71명이 투표로 ‘평화롭게’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을 확정했다. 김은희(58) 과천풀뿌리 대표도 “단순한 선거연합으로 보는 시선이 있지만 그건 아니다. 그동안 몇 번의 지방선거를 치르며 시민들이 나섰지만 시민정치로 연결되지 않았던 한계를 반성하며 다함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시민 모임과 연대를 하더라도 기존 정당들이 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 시민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심용옥 정의당 과천시지역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승마 체험장·캠핑장 문제에 제동을 걸고 하수처리장 지하화 반대 등 지역의 여러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며 서로 신뢰를 쌓았다”며 “진보 성향을 가진 동네 시민 연합으로 보면 된다.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만을 생활정치로 접근해보는 실험이다”고 강조했다.

다함의 고민과 지향은 후보들의 면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회계사 출신인 안영 시장 예비후보는 지난 4년 시의원을 하며 기초의회 ‘필수 코스’인 해외연수를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 “준비 없는 연수는 관광일 뿐이고 시민의 세금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풀뿌리 운동만 알았던 그가 공무원들과 민주당·자유한국당이 지배하는 시의회에서 회계사의 전문성을 살려 예산 감시를 하며 겪었던 온갖 경험은 시장 출마를 결심하는 바탕이 됐다. “‘과천시 재산은 과천시장 것이다.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뻔뻔스럽게 이야기하는 공무원들이 있어요. 시의회 예산 심의는 두 당의 짬짜미더라고요. 저희는 계속 반대하고, 안건은 통과되고….”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난개발 방지 조례’ ‘주민참여형 도시계획 실현’ ‘전시성 사업 예산 전수조사’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풀뿌리 역사의 선수들

‘엄마 후보’를 구호로 내세운 안수정 시의원 예비후보는 “과천에서 그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개발 열풍이 불고 전셋값이 올랐다. 석면 문제를 보면서 행정이 마비된 느낌도 받았다. 시민들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며 “제가 행복을 느꼈던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위기감을 느껴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수의사면서 과천풀뿌리 전 대표인 구자동 시의원 예비후보는 “선거운동을 하자마자 내 개인의 선거가 아니라 지난 12년 (풀뿌리 운동의) 꾸준히 누적된 힘을 바탕으로 선수로 뽑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천처럼 시민들이 모두 동네정치에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의 발달로 전국 각 지역에서 에스엔에스나 모바일 메신저 단체방으로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중앙선관위 누리집(www.nec.go.kr)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선거 정보)을 통해 4월24일부터 ‘우리동네 공약지도’ 서비스를 시작해 유권자들이 동네 주요 현안을 한눈에 파악하고 희망 공약을 손쉽게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는 동네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수록 내가 사는 동네가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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