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공동으로 기획한 ‘동네정치가 생활을 바꾼다’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는 독일의 동네정치 이야기다. 연방제를 통해 16개 연방주의 자치를 보장하는 나라인 독일을 방문해 시민들이 풀뿌리 정치인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삶의 문제를 개선해나가는지 살펴봤다. 특히 베를린의 사회문제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는 지역을 찾아가 주민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정치와 어떻게 결합해 활동하는지 면밀히 들여다봤다. 시민들의 연대의식, 지방의회의 정치문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대표되는 선거제도가 결합한 독일식 지방자치는 지방분권을 앞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_편집자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독일답게 이른 봄 거리엔 눈발이 휘날렸다. 3월28일 오전 11시 베를린 코트부스토어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역 주변에 낡은 임대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로이츠베르크’라 불리는 이 지역은 싼 임대료 덕분에 젊은 예술가와 이주민이 많이 모여들어 ‘물티쿨티’(다문화)를 이루는 지역이다. 그러나 6~7년 전부터 월세가 급격히 올라 살던 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심하게 앓고 있다.
크로이츠베르크의 ‘대안 관광객’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원래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상권 형성에 기여해온 상점이 급등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러나 독일에선 상점뿐 아니라 삶의 공간인 주택에서 시민들이 밀려나는 현상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이른다. 독일에서도 이는 중요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지하철역 앞 광장에 들어서자 나무로 만든 단층짜리 아담한 오두막이 보였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집에서 퇴거 위기에 몰린 주민들이 만든 대안 공간이다. 2011년 ‘코티운트코’(Kotti und Co)라는 세입자단체를 결성한 크로이츠베르크 주민들은 이듬해 이 광장에 모여 젠트리피케이션의 심각성을 알리는 길거리 파티를 열었다. 흥겨운 파티는 밤새 이어졌고, 새벽 6시까지 광장에 남아 있던 주민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무 울타리로 시작한 대안 공간은 점점 그럴듯한 집으로 변해, 현재는 비도 피하고 이웃끼리 가볍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아담한 오두막이 됐다.
이날 코티운트코 오두막 앞에는 추운 날씨에도 10여 명의 젊은이가 모여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대안 관광객’이라 소개했다. 유명 관광지만 돌아보는 여행이 아니라, 베를린이 겪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를 알아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의 연대체를 방문해 베를린을 한층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방식의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광객에게 이곳을 설명하는 가이드 옆에서 코티운트코 활동가이자 주민인 산디 칼텐보른(49)이 안내를 도왔다.
“월세가 오를 때 처음에는 저와 이웃에 사는 서너 가구에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활동하다보니 코트부스토어 지하철역 주변뿐 아니라 크로이츠베르크 전 지역, 나아가 베를린 전체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알았죠.” 오두막 안으로 자리를 옮긴 칼텐보른이 말했다.
2005년에만 해도 베를린의 평균 집세는 1㎡당 월 5.5유로였다. 그러나 2018년 현재 크로이츠베르크의 임대주택 월세는 11유로로 두 배나 뛰었다. 50㎡(15평) 크기의 집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매달 난방비 등 관리비를 제외한 월세만 550유로(약 72만원)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2011년 이 지역 170가구를 조사했는데 60% 넘는 주민이 한 달 총소득의 절반을 월세로 내고 있었어요. 어떤 이들은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200유로(약 26만원)밖에 안 남는다고 하더군요.” 독일에서는 적절한 월세 수준을 전체 소득의 30%로 보고 있다.
월세가 오른 이유는 다양했다. 잘못된 정부 정책도 주요 원인이었지만, 핵심은 자본가들의 부동산 투자 열풍이었다. 2008년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 자본가들 사이에 ‘새로운 콘크리트 금’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났다. 낡은 건물을 싸게 사들여 고급 주택과 상점으로 리모델링한 뒤 임대료를 올린 것이다.
독일 풀뿌리 정치의 역동성그 무렵부터 크로이츠베르크 등 베를린 각지에서 급등한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쫓겨나는 원주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상점의 사정도 같았다.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했던 거리는 이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들로 채워지며 획일화되고 있다.
쫓겨날 위기에 놓인 주민들은 코티운트코 등 세입자 단체를 만들어 행동에 나섰다. 코티운트코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30회 이상 거리시위와 캠페인을 벌이며 대책을 요구했다. 2012년에는 베를린 사회임대주택 세입자 연맹과 함께 ‘여기는 아무것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제목의 콘퍼런스를 열었다. 시민·전문가·자본가·정치인 등 젠트리피케이션과 관계된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함께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2015년에는 임대주택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내용의 주민투표를 청원했는데, 6주 만에 5만 명이 서명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이 투표로 임대주택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세입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 있다. 하나의 사회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해소해가는 독일 풀뿌리 정치의 역동성이다. 코티운트코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한국의 기초의회(시·군·구 의회) 격인 ‘베치르크’와 밀착해 움직였다. 베를린에는 모두 12개의 베치르크가 있다. 코티운트코가 활동 무대로 삼고 있는 크로이츠베르크는 ‘프리드리히-크로이츠베르크 베치르크’에 속해 있다. 한국식으로 보자면, 서울시 ○○구의회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가장 작은 풀뿌리 정치 단위인 기초지자체까지 내각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즉, 베치르크의 다수당 의원 가운데 한 명이 기초지자체의 수장인 시장을 맡고, 의원들 중에서 교육·건설 등 분야별 장관(부서장)을 뽑는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 ‘프리드리히-크로이츠베르크 베치르크’의 제1당이 된 것은 녹색당(20석)이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좌파당 12석, 사회민주당(사민당) 10석,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 4석 등이다. 다행히 녹색당과 좌파당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당이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소수인 두 정당이 베치르크에서는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결과였다.
다양한 사회갈등 해소되는 통로이 지역 베치르크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와 손잡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주어진 행정 업무만 처리하는 한국의 기초지자체와 달리 베를린 베치르크는 다양한 사회갈등이 한데 모이고 해소되는 ‘용광로’ 구실을 한다. 행정부와 의회가 결합된 베치르크가 주민들과 함께 문제를 개선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2012년 코티운트코가 지하철역 앞에 불법 건물인 오두막을 지었을 때, 프란츠 슐츠 베치르크 시장은 오두막을 철거할지 묻는 경찰에 양해를 구하고 코티운트코에 힘을 실어줬다. 2013년 시장에서 물러난 그는 현재 코티운트코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독일 시민사회와 지방정부가 단단히 한 몸으로 결합돼 있는 것이다. 3월27일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녹색당 사무실에서 만난 율리안 슈바르츠 베치르크 교섭단체 대변인 대표(녹색당 베치르크 의원)는 “베치르크가 주민이나 연대 단체와 같은 목적을 갖고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엄청난 힘을 가진 부동산 투자자들로부터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힘을 합쳐 대안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크로이츠베르크가 속한 베치르크는 지금까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정책을 실행해왔다. 가장 먼저 지역 조사를 면밀히 해 크로이츠베르크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임대주택을 고급주택으로 리모델링하려는 시도를 제한할 수 있다. 또 개인 소유였던 임대주택 건물이 팔릴 때 지자체가 먼저 매입할 권한을 갖는다. 이 제도에 따라 베치르크는 지난해 11채, 올해 4채의 임대주택 건물을 샀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은 한국의 기초의회에 해당하는 베치르크뿐이 아니었다. 베를린 주정부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왔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 사민당은 베를린 주의회에서 38석으로 제1당이 됐다. 그 다음 의석이 많은 당은 기민련(31석), 녹색당·좌파당(각각 27석),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23석), 자유민주당(자민당)(12석) 순이었다. 다수당인 사민당은 녹색당, 좌파당과 함께 연정을 꾸려 내각을 구성했다. 최근 기민련과 사민당이 연정을 이룬 독일의 연방의회나 다른 주들의 연정 구성과 비교해보면, 베를린에선 좌파의 힘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베를린 주정부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실시했다. 먼저, 3년 안에 임대료를 1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한 연방법을 베를린 전체에 적용했다. 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때 집주인이 기존 임대료의 10% 이상을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물론 이런 정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3월26일 베를린 주의회에서 만난 가브리엘레 고트발트 주의원(좌파당)은 “여전히 법에 구멍이 많다. 새로운 세입자에게 기존 임대료의 10% 이상을 올려 받지 못하게 했지만, 4년 평균의 10%를 올리지 못하도록 했을 뿐이다. 최근 급격히 오른 임대료를 고려했을 때 임대료 평균은 4년이 아니라 20년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를린 주정부는 임대주택 세입자들의 월세가 월소득의 30%를 넘지 못하게 하는 정책도 만드는 중이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힘이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정부 역시 주민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고트발트 주의원은 “주민, 세입자단체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 주의원은 물론 장관과도 대화 통로가 마련돼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다”고 말했다.
독일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이 발벗고 나선 가장 큰 이유로, 독일 시민사회의 활발한 참여와 연대 문화를 꼽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독일 사회는 정치인들이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게 유도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를 갖춰놓았다.
독일은 연방의회와 16개 연방주(광역자치단체) 선거엔 연동형 비례대표제, 기초자치단체 선거엔 완전 비례대표제를 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이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제도다. 예를 들어 A당이 선거에서 10%를 득표하면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0%의 의석, 즉 30석을 얻는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소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문턱이 낮아진다. 베를린 연방주와 프리드리히-크로이츠베르크 베치르크에서 소수 정당인 녹색당과 좌파당이 많은 의석수를 확보했던 것도 이런 제도 덕분이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이 정치 과정에 훨씬 더 다양하게 반영된다.
여러 정당을 통해 표출되는 다양한 의견은 이후 독일식 ‘연정’으로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다듬어진다. 3월27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만난 크리스토프 뉴엔 박사(정치학)는 “연정은 비례대표제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여러 당이 의회에 진입하면 한 당이 50% 이상을 차지하기 힘들다. 정부를 구성하려면 다른 당과 함께 연정을 이룰 수밖에 없다. 연정을 맺으면 협상을 해야 하니 한쪽 당의 의견이 100% 반영되긴 힘들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게 된다”고 말했다.
독일식 정치 문화와 선거제도는 16개 주의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독일식 연방제와 하나가 돼 장점이 더욱 극대화된다. 독일은 지역적 특색이 강한 만큼 정당 구성도 연방주별로 다양하다. 선거 시기도 주별로 다르다. 베를린에선 2016년 지방선거를 통해 사민당-녹색당-좌파당 연정이 만들어졌지만, 2017년 선거를 치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선 우파당인 자민당과 좌파당-녹색당이 함께 연정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다. 2013년 선거를 치른 바이에른주에선 오직 바이에른에서만 활동하는 정당인 기독교사회연합(기사련)이 101석으로 전체 의석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얀 레드만 브란덴부르크 주의원(기민련)은 “독일의 연방제는 주별 다양성을 반영하는 제도다. 한 정당이 어떤 주에서는 소수가 되지만 어떤 주에서는 다수가 된다. 그렇기에 정당은 주별로 다양한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얻는다. 한 주에서 새 정책을 시행하면 이는 다른 주의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독일이 연동형 비례대표라는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여러 선순환 효과인 셈이다. 한국은 총선과 지방선거 모두에서 소선거구제를 채택해 국회는 물론 지방의회에서도 거대 양당이 의석을 독식하고 있다. 결국 지역별 독특한 정치·문화적 특성이 살아남기 힘들다.
경제 격차 줄이는 ‘지방재정조정제’주별 다양성은 인정하되 경제 격차를 합리적으로 줄이는 독일의 ‘지방재정조정제’도 한국의 지방분권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제도다. 독일 헌법은 어느 주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자연재해 등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주의 예산을 나눠주도록 명시하고 있다. 독일 국민이라면 어느 지역에 사는지와 관계없이 평등한 복지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헌법에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독일에서 ‘동네 정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이유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돼 있다. 시민 연대체의 활동, 시민과 지방의회의 밀착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평등을 보장하는 헌법 등이 독일식 지방자치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 특징들은 6·13 지방선거와 개헌을 앞두고 지방분권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벌이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네스 모슬러 베를린자유대 교수(한국학)는 “지방에 더 많은 권위를 주는 분권화는 필요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단계별로 조금씩 확대해 시민들이 자신의 행동으로 우리 동네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분권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독일식 지방자치의 여러 요소들을 통해 ‘어떤’ 지방분권이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독일)=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정범구 독일 대사 인터뷰
“연정 통한 타협의 문화 배워야”
한국 정치와 독일 정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
정당정치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최근 들어 독일 정당 제도는 3당 체제에서 다당 체제로 변화 중이고, 극우파 정당이 커지는 등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독일 정당은 대중에 뿌리박힌 대중정당의 전통을 갖고 있다. 사민당은 역사가 160년이 넘는다. 정당이 가진 잠재력이 대단하다. 둘째,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오랫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제 아래서 살아온 나라와 다른 점이 많다. 연방정부에는 교육부·문화부 장관이 없다. 교육·문화는 연방주에 완전한 자치권을 준다. 지방정치 무대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중앙정치에 진출하는 사례도 많다.
연방제인 독일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는?
독일 사회는 작은 기초 마을 단위부터 분권이 이뤄져 있다. 이런 경험이 오랫동안 유지돼왔다. (지자체에 충분한 권한이 있다보니) 시민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렴하는 구조가 오래전부터 갖춰졌다. 그런 것들을 배워가야 한다. 한국은 지방자치를 제도로 도입한 역사가 짧다. 아직까지 풀뿌리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지방의원보다 지방의 명망가, 안 좋은 말로 ‘토호’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지방의회도 이들의) 사교 ‘구락부’(클럽)를 못 벗어나는 부분이 있다. 시민사회 발전과 함께 이런 부분도 바뀌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도적인 감시 장치도 마련되고, 지방의원의 도덕성과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이 함께 올라가야 한다. 독일은 정당의 지역조직이 촘촘하다.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이 풀뿌리 단계부터 정당 활동을 하거나 의견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한국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져 있다. 한국은 아직 정당과 국민이 유리돼 있다. 정당이 국민 속으로 어떻게 더 친근하게 파고들어갈지가 한국 정치의 과제다.
연방주별로 서로 예산을 지원하는 독일식 연방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독일 정치를 선진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부분 때문이다. 정치가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연대의 개념을 국민 생활 속에 정착시킨다. (다른 지역에) 예산을 나눠주는 것에 대해 분열을 선동하는 정치 세력이 없다. 지역 주민의 불만도 있겠지만 정당들이 나서서 독일의 정치를 (연대의 관점으로) 끌고 간다.
‘연정’은 독일 정치에서 어떤 작용을 하나.
독일은 1949년 서독이 국가로 성립하면서부터 한 번도 어느 한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한 적이 없다. 과거 나치에 대한 경험 때문인지, 특정 정당에 절대다수를 몰아주지 않는다.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해야만 내각을 구성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협의 문화가 정착된다. 정당 간에 연정 협상이 시작되면, 각 당이 주요 정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치열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장관 자리를 나누는 권력 배분 논리에 익숙한 우리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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