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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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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의 시작, 선거제도 개혁으로

정치 개혁 위해선 그에 맞는 선거제도 개혁 필수…

학계에선 ‘현재보다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 변화해야’ 목소리 높아
등록 2017-10-17 20:32 수정 2020-05-03 04:28
9월28일 인천에서 열린 ‘헌법 개정 국민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개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28일 인천에서 열린 ‘헌법 개정 국민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개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 기획연재 ‘이제는 국회를 바꿀 때다’를 통해 다수당의 횡포를 막고 ‘민심 그대로’ 국회 의석수가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제1177호 ‘다수당 횡포, 꼴 보기 싫으셨죠?’, 제1179호 ‘문 대통령,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대 열까’ 참조). 이 논의를 진행할 때 명확히 인식해야 할 점은 한 나라의 권력구조를 바꾸려는 ‘개헌’ 논의와 권력을 선출하는 방식을 바꾸는 선거제도 개혁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개헌 필요성을 언급할 때마다 선거제도를 함께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지난 1월 자신의 책 출판 기념회에서 “내각제로 가려면, 첫째 지역 구도가 해소돼야 하고 이를 위한 선거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한 발언이나, 당선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5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정부 형태,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구상을 밝힌 게 대표적인 예다. 즉, 문 대통령이 약속한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행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얘기다.

현재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전국 순회 국민토론회를 여는 등 개헌을 위한 여론 수렴 작업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개헌안 가운데 ‘권력 분산’에 중점을 둔 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 직책을 그대로 남기되 대통령에게는 제한된 권력만을 부여하고 행정권은 국회가 갖는 ‘분권형 대통령제’(내각제형 이원정부제), 또 다른 하나는 국회가 모든 내각을 총괄하는 ‘의원내각제’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렇게 권력구조를 개편하면 그동안 제기돼온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거제도와 정당구조는 그대로 놔둔 채 권력구조만 개편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한국처럼 특정 정당이 언제든 국회 의석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는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더 큰 권력 집중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대표적인 예다. 영국은 의원내각제 국가이고, 한국처럼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제도 위에서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문제는 이 ‘철의 여인’의 통치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보수당은 11년 동안 단 한 번도 50% 이상의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표를 양산하는 소선거구제 아래서 보수당은 40%대 득표율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의원내각제 아래에서도 권력 집중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더구나 내각제의 총리에겐 임기 제한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보다 더 오래 집권할 수 있다.

대통령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조합

지난 9월8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 논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종철 연세대 교수가 지적한 것도 이런 문제였다. 그는 “내각제가 장점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비례대표제 선거제도와 협치적 다당제 정당제도가 함께 만들어져 효율적인 연립정부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 개혁을 위해선 그에 맞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설령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거나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편하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해볼 수 있다. 물론 정치권과 일부 학계에서 내각제는 비례대표제(다당체제)와 어울리고 대통령제는 소선거구제(양당체제)와 어울리기 때문에 현행 대통령제 아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제도적 충돌이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북유럽에서 선거제도는 대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이고, 권력구조 형태는 내각제다. 그러나 강우진 경북대 교수는 앞선 토론회에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다당제와 결합된 남미의 대통령제가 모두 불안정한 것은 아니었다. 상당한 안정성을 보인 사례도 존재했다”고 말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도 “핀란드도 예전엔 비례대표제 아래에서 강력한 권한을 갖는 대통령제를 유지했다. 이후 권력 배분 방법은 유연하게 변화했지만, 비례대표제는 100년 동안 꾸준히 유지돼왔다. 선거제도가 기본이고 권력제도는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 꾸준히 주장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제 아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강우진 교수는 대통령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조합에 대해 “중요한 것은 두 제도의 나쁜 결합이 아니라, 두 제도의 장점을 살리는 최적의 결합이 되는 제도적 고안을 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해외 선진국의 특정 제도를 들여오기보다는 한국적 상황과 결합하려는 논의가 더 깊이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이 올바른 권력구조 개편안인가

그럼에도 학계에는 한국의 선거제도가 현재보다 비례성이 훨씬 높은 제도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게 정치 개혁의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현재 5년 단임 대통령제 유지든, 4년 중임제·분권형 대통령제·내각제로의 전환이든 다양한 개헌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학태 전 전남대 교수는 ‘권력구조 개헌과 비례대표제’라는 글에서 “비례제는 (순수)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어떤 형태의 권력구조와도 조응이 가능하다. 권력구조 형태와 비례제 사이에 논리적, 인과적 필연성이 존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는 ‘주춧돌’이고, 정당체제는 ‘기둥’이며, 권력구조는 ‘지붕’에 불과하다. 달랑 지붕만 바꾸는 식의 개헌은 절대로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개헌 국민투표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이제 9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 기간에 개헌의 효율적 공론화 작업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정치권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권력구조 개편안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개헌으로 가기 위한 입구는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것이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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