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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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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대 열까

2012년부터 정당지지율 반영한 선거제도 주장

소선거구제 유리한 자유한국당은 꾸준히 반대
등록 2017-09-14 02:41 수정 2020-05-03 04:28




이제는 국회를 바꿀 때다

① 표심 왜곡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꾸자
② 문 대통령,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대 열까


은 노동·여성·환경 등의 분야를 망라한 385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정치개혁 공동행동’과 함께 정치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비결’인 선거제도 개편 기획을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내가 던진 표가 ‘사표’로 돌아오는 현재의 소선거구제 대신 ‘민심 그대로’ 의석수가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부터 정치 개혁 방안으로 제시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논의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살펴본다. 정치권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어떤 이들이 요구하고 어떤 이들이 막는지도 따져본다. _편집자
지난 5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 오찬회동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5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 오찬회동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제18대 대선을 17일 앞둔 2012년 12월2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당시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대선 후보는 야권 단일화를 완성하기 위한 공동선언을 내놨다. ‘정권교체와 새정치 실현을 위한 문재인-심상정 공동선언’에 담긴 여러 정책 가운데 눈에 띈 것은 정당지지율이 의석수에 반영되도록 하는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선출 제도인 소선거구제는 지역구에서 1등으로 당선된 의원들로 253석이 채워진다. 나머지 47석만 정당지지율로 분배되다보니 정의당처럼 지역구에서 많은 의원을 배출할 수 없는 소수 정당은 정당지지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의석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민심이 왜곡되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런 폐해를 지적한 심 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정권 교체 뒤 정치 개혁을 단행할 것을 약속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추진과 무산

야권 단일화에는 성공했지만 12월19일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패했다. 공약으로 내건 선거제도 개혁도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 묻혔다. 그사이 한국 사회는 42.8% 지지율로 50% 넘는 의석수인 152석을 차지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곳곳에 적폐를 쌓아올렸다.

이후 선거제도 개혁에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선거구에 따라 인구가 어떤 지역은 많고 어떤 지역은 적어 그 차이가 3배 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니,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 대 1로 줄이는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정치권에선 선거구 획정을 새로 하는 김에 선거제도 개혁도 함께 논의하자는 흐름이 형성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도 보조를 맞췄다. 2015년 2월 선관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일종인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지역구 의석을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늘려 비례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비례대표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 뒤 권역별로 정당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울 권역의 총의석수가 60석이라고 했을 때, A정당이 서울에서 50% 정당지지율을 얻었다면 A정당에 30석을 주는 것이다. A정당의 지역구 후보가 15명이 당선됐다면 나머지 15명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다른 권역도 똑같은 방식으로 의석수를 채운다. 이렇게 되면 정당이 지역구에서 몇 명을 당선시켰는지와 관계없이 정당지지율로 의석수를 차지할 수 있다. 선관위가 내놓은 안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계로부터 민심을 반영하는 합리적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아안았다. 이를 당론으로 결정한 뒤 당시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을 주장하던 새누리당에 ‘빅딜’을 제안했다. 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아주면 오픈프라이머리를 수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015년 8월 문 대표는 “선거구를 재획정하는 이번 기회에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결정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 시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여야가 각자 방안을 고집하지 말고 통 크게 합의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42.8% 지지율로 이보다 많은 152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으로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의석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개별 의원들에게는 선관위 안대로 지역구 수를 줄이면 자신의 지역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작동했다.

2016년 정개특위, 선거제도 개악

새누리당의 반대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던 사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고 문재인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정치적 변동이 일어났다. 2015년 12월 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들어간 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 개혁 의지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축이 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016년 2월 선거제도 ‘개악’을 단행하고 만다.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수를 7석 줄이고 지역구 의석수를 7석 늘린 것(지역구 246석→253석, 비례대표 54석→47석)이다. 비례대표를 늘려 민심을 더욱 정확히 반영하자는 논의에서 훨씬 더 후퇴한, 거대 정당으로서 서로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짬짜미’ 방안이었다. 정치 개혁을 염원하던 시민사회에서는 이 합의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선거제도 개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은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서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게이트’로 정권 교체 요구가 높던 지난 1월17일 에세이집 출판기념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개인적으로 내각제를 더 좋은 제도로 본다. 내각제로 가려면, 첫째 지역 구도가 해소돼야 하고 이를 위한 선거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예를 들어 대구·경북 지역에서 30%의 야당 지지가 있다면 30석 의석을 낼 수 있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도 힘을 얻어 다시 뭉쳤다. 전국의 노동·시민단체 연대 모임인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1월24일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한 3대 정치 개혁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도 이를 수용해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의당과 정개특위 위원장, 도입 적극적
‘정치개혁 공동행동’ 대표단이 9월5일 국회에서 원혜영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원 위원장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요구안을 전달했다. 정치개혁 공동행동 제공

‘정치개혁 공동행동’ 대표단이 9월5일 국회에서 원혜영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원 위원장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요구안을 전달했다. 정치개혁 공동행동 제공

5월9일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드디어 그가 2012년부터 약속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물꼬가 터졌다. 문 대통령은 당선 뒤에도 이에 대한 의지를 계속 밝히고 있다. 그는 5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5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권력분산형으로 가더라도 대통령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왔으나 만약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정부 형태, 다른 권력 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시켰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 안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온다.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지난 2월 국회의원 299명을 대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찬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답변을 보내온 의원 88명 가운데 85명(96.5%)이 도입에 찬성했다. 3명은 보류 의견을 밝혔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120명 중 56명(46.6%), 국민의당 40명 중 20명(50%), 정의당 6명 중 6명(100%)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에서는 단 한 명도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 조사는 답변 도달률이 높지 않고, 답변을 보내지 않은 의원들 가운데서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힌 이가 많아 국회 안에 숨은 찬성표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선 주자 가운데 문재인·안철수·심상정·안희정·이재명·손학규 등 총 6명이 찬성 뜻을 밝혔다.

특히 소수 정당으로서 꾸준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온 정의당은 당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꼽는다. 지난 8월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는 2012년 대선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온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8월28일 국회 상무위 회의에서 “촛불 시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했다”면서 “정개특위는 정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구제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당은 20대 총선에서 7.2%의 정당지지율을 얻었다. 이 지지율이 그대로 의석이 됐다면 정의당의 의석수는 21석이 되어야 한다.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얻는 수치다. 그러나 현재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정의당이 가져간 의석수는 6석에 불과하다.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 최소 100석 보장해야”

정개특위 위원장인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그는 9월5일 ‘정치개혁 공동행동’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대의민주주의에서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의 개혁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개특위에 참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8명 가운데 6명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 김상희·김한정·박영선·박용진·박주민·정춘숙 의원 등이다.

박주민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지 않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 총의석수가 330~360석이 되도록 하는 내용이다. 선관위 안대로 지역구를 현재 253석에서 200석으로 줄이면 정치권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실현 가능한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9월8일 이상민 의원과 공동 주최한 ‘개헌 논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비례성을 높이고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독점을 완화할 수 있기에 민주주의의 원칙과 대의에 부합한다”면서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박주민 의원 안을 포함해 총 4개가 발의돼 있다. 이 가운데 박주민·소병훈·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은 비례대표를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눠 배분하는 방식이다.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은 비례대표를 전국 단위로 뽑는다. 의원 정수는 소병훈 의원 안(300석 유지)을 제외하고 모두 316석에서 360석까지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비례대표 선거구의 크기는 비례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전국 단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권력별로 비례대표를 선출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은 최소 100석 이상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민의당도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8월27일 당대표 당선 뒤 수락연설에서 “선거법 개정과 개헌에 당력을 쏟겠다”고 밝혔다. 당대표 후보로 나섰던 천정배·정동영 의원도 선거 과정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다. 국민의당의 지난 20대 총선 정당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보다 많은 26.7%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25.5%를 기록했다. 이 지지율대로라면 국민의당의 의석수는 80석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20대 총선 당시 소선거구제로 인해 38석밖에 얻지 못했다. 국민의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물론 당시 지지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9월7일 공개한 정당지지율을 보면 국민의당의 현재 지지율은 6%였다. 이 지지율대로라면 국민의당 의석수는 18석으로 현재 의석수(40석)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안철수 대표 앞에는 선거제도 개혁과 동시에 지지율을 과거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바른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신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한다. 중대선거구제는 지역구 크기를 넓히고 한 지역구에서 1~3등까지, 지역구에 따라 4~5등까지 당선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제도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5명이 뽑힐 경우 5등을 한 의원의 지지율이 5%가 안 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민심 왜곡이 더욱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바른정당이 큰 틀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다른 정당과 합의점을 찾아갈 여지는 충분하다.

총선 정당 득표율보다 22석 더 차지한 정당

문제는 자유한국당이다. 자유한국당은 과거부터 꾸준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반대해왔다.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공고히 유지되는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얻은 정당 득표율은 33.5%다. 이 득표율대로라면 새누리당의 의석수는 100석이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은 22석 더 많은 122석을 차지했다. 바른정당으로 분화된 자유한국당의 현재 의석수는 107석이다. 9월7일 리얼미터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이 기록한 지지율 15.5%로 계산했을 때 자유한국당의 의석수는 46석으로 반토막이 난다.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다른 정당들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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