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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대학도 무노조 경영?

등록 2012-08-22 16:58 수정 2020-05-03 04:26
성균관 대학교에서 강사 임용 탈락에 항의해 1년동안 1인 시위를 벌여온 류승완 박사가 14일 오전 성대 6백주년 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성균관 대학교에서 강사 임용 탈락에 항의해 1년동안 1인 시위를 벌여온 류승완 박사가 14일 오전 성대 6백주년 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검게 탄 얼굴엔 희끗한 수염이 덥수룩했다. 1년에 걸친 장외투쟁이 가져온 변화였다. “저도 제 얼굴 보고 놀랄 때가 있어요.” 담담한 상태임을 애써 드러내려 했지만 쇳소리 섞인 음성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대학본부의 강사직 박탈에 항의해 지난해 8월부터 학내 1인시위를 벌여온 성균관대의 류승완 박사다.

<font color="#877015">“학생들 시위 배후 조종 의심받아”</font>

그는 2010년 2월 ‘사회주의적 근대기획 연구-박헌영·신남철·박치우·김태준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1년간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후 연수 과정을 밟았다. 연수를 떠날 때만 해도 류 박사에겐 학문적 청사진이 있었다. 귀국해 일단 모교에서 강의를 맡은 뒤 3년짜리 연구재단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연구자로서의 미래를 도모할 작정이었다.

베이징에 머무르던 2011년 1월, 모교의 학과 조교로부터 학부 강의가 배정됐으니 강의계획서를 입력하라는 연락이 왔다. 커리큘럼을 준비하는데 이틀 뒤 학과에서 다시 기별이 왔다. 대학본부에서 강사 교체를 요구해 강의 배정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조교는 “2000년 학내 분규 당시 학생들의 과격 행동을 배후 조종한 것으로 대학본부 쪽이 의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류씨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00년 분규 당시 자신은 학교를 떠나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오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한 해명의 기회를 6개월 뒤로 미뤘다. 자료 수집과 연구를 위해 중국에 더 머무를 필요가 있었던 탓이다.

2011년 7월 귀국한 뒤 지도교수 등 학내 지인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힘이 돼줄 것으로 생각했던 지인들은 싸우겠다는 그를 만류하기 급급했다. “다들 그러더군요. 당장은 억울해도 참는 것 말고 방법이 없지 않느냐. 대학본부가 저러는 건 삼성 재단 쪽의 지시가 있어서일 텐데, 일개 박사가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건 무리다. 적당히 싸우다 타협안을 받아 뭐라도 챙기는 게 현실적이지 않겠느냐.”

귀국 과정에서 중국에서 택배로 부친 연구 자료가 기관에 압수당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중국 사회주의 비교연구를 위해 베이징대학 도서관의 희귀본 열람실과 베이징의 고서점 등을 돌아다니며 어렵게 구한 자료들이었다. 강사 해촉에 항의하며 1인시위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인천해경에서 연락이 왔다. “택배 내용물 가운데 북한 자료가 포함돼 있어 이적성 검토를 위해 압수했다고 하며 저한테 진술조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자료 중엔 북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거부했더니 1년간 별 연락이 없다가 며칠 전에야 자료를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더군요.”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연이어 벌어지다 보니, 류 박사는 연구 자료 압수를 둘러싼 해경과의 실랑이에도 삼성 재단이 개입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든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든, 범법 사항이 발견되면 대학으로선 합법적으로 강사 자리를 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지나친 의심이 아니냐고 하자, 류 박사는 몇 가지 정황증거를 갖고 있다고 했다.

<font color="#877015">재단 쪽엔 ‘요주의 인물’ </font>

1인시위가 이어지고 학교 안팎으로 이슈가 되자 학교 쪽에서 회유도 들어왔다. “본부의 고위 관계자가 나서 당장 1인시위를 그만두면 내년부터 강의를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거부했죠. 얼마 전엔 이번 학기에 당장 강의를 줄 수 있는데, 다음 학기부터는 장담할 수 없다는 새로운 제안도 하더군요.”

그사이 학교 쪽이 밝힌 강사 해촉의 사유도 계속 달라졌다. 과거 학내 소요와 관련 없다는 사실이 소명되자, 다음엔 강사 채용시 과격한 노조 활동이 우려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류 박사는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만 갖고서 강사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건 대체 무슨 논리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 역시 자신이 재단이 보기에 ‘요주의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요구하며 대학 순회 시위를 벌여온 김동애·김영곤씨 부부를 도왔던 게 사실인데다, 2010년엔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목숨을 끊은 서정민씨와 관련해 시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며 대학의 시간강사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적도 있다.

류 박사가 짐작하는 강사 해촉의 사유는 또 있다. 베이징 체류 시절이던 2010년 말 한 학술지에 ‘유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란 논문을 기고하며 당시 성균관대 총장이 주도한 국제학술대회의 발표 내용 일부가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황도 유학’과 비슷하다는 비판을 제기한 게 재단 쪽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학교 쪽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류 박사의 경우 과거 강의의 평가 점수가 낮아 학과 내 강사선정위원회에서 강의를 배정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1인시위가 1년 넘게 이어지자 류 박사가 겪는 어려움도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한 달에 40만원 정도 되는 강사료가 끊기고, 연구 프로젝트 응모도 불가능해졌다. 대학 내에 소속된 기관이 없으니 도서관 자료 접근이 안 돼 논문도 쓰지 못한다. 그가 지난 1년간 거둔 수입은 한 학술계간지에 쓴 서평 원고료가 전부다. 최근 한 출판사로부터 철학사전 증보판 집필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대학 도서관 자료 이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막막하기만 하다. 학술기관의 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려 해도 비용이 만만찮다.

<font color="#877015">삼성 인수 뒤 교원 통제 강화돼 </font>

그는 “어떤 회유가 들어와도 대학본부 및 재단과의 싸움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성균관대에서는 2000년대 들어 노조 활동 등과 관련해 강사 4명이 해촉됐다. 이런 강사들의 수난을 일각에선 대학 재단의 모기업인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원칙과 결부짓는 시각도 있다. 이 대학에 재직 중인 50대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삼성이 대학을 인수한 뒤 대학 운영에 시장 논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교원들에 대한 통제가 강화돼온 것은 사실”이라며 “재단은 대학평가 순위 상승 등의 성과를 내세우지만, 과연 대학의 본령인 연구와 교육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여름 시작된 류승완의 싸움은 이제 다섯 번째 계절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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