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나베’(원래는 ‘냄비’라는 뜻으로 냄비로 끓이는 탕 종류를 통칭하는 일본말)에 파와 무, 어묵, 닭고기 등을 펄펄 끓이며 랩 배틀을 하는 이상하고 수상한 녀석들이 1월 둘쨋주 말 일본 교토시의 산조 거리를 누볐다. 일본 경찰 사이에서 악명 높은 이들의 이름은 ‘나베당(堂)’으로,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막는 집회나 반핵 집회 등 주요 집회에서 나베를 끓여 나눠 먹거나 경찰 앞에서 삭힌 생선을 구워 냄새를 피우는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나베는 연대의 끈이자 투쟁의 무기이고 이목을 끄는 도구인데, 물론 가장 큰 역할은 출출한 배를 채워준다는 점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본에서 나베당의 존재는 강렬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랩을 하며 탕국을 후루룩 마시는 그들을 보고 사진을 찍거나 신기해하며 구경했다. 2시간 남짓한 난장에 경찰이 무려 6번이나 출동했지만, 그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본 사회와 핵 문제에 대한 랩을 하며 나베를 후루룩 먹었다. 그 옆에는 일본 ‘히키코모리’(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본말)의 자활을 돕고 ‘니트족’(일할 의지가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말)을 지원하기 위한 ‘카페 커먼즈’의 대표가 커피를 끓이고, 서울에서 나들이 온 DIY(Do It Yourself) 공동체 ‘달팽이 공방’이 쿠키를 팔았다.
일본에 나베당이 있다면 서울에는 지난해 말 발전적 해체를 선언한 ‘혁육동’(혁명적 육식주의자 동맹), 모두에게 3천kcal를 골고루 분배하자며 복날 서울 시청광장에서 삼계탕을 끓이던 자들이 있었고, 경기도 고양시 풍동 철거 지역에서부터 밥으로 여러 현장에 연대해온 ‘투쟁과 밥’이 떠올랐다. 그리고 희망버스에서 맛있는 국밥과 주먹밥을 제공해준 평화바람의 ‘밥차’, 지난해 11∼12월 매주 수요일 재능교육 농성장 앞에서 죽을 끓여 나눠 먹은 ‘서부 비정규 센터’의 ‘죽’ 연대 ‘재능교육! 너희는 죽을 쑤고 있어라. 우리는 죽을 먹고 있으마!’도 있었다. 투쟁 현장에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연대의 끈을 만드는 데 음악만큼 중요한 요소는 ‘음식’이다. 낯선 사람과 말을 트는 데 음식을 나눠주는 것보다 용이한 일이 어디 있으랴. 여러 현장에서 신념을 내바치는 사람들은 ‘먹고살다 보니 남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먹고사니즘’을 거부하고,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노숙을 하거나 찬바람을 쐬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므로 모인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것은 성공적 집회의 열쇠이기도 하다. 지난 2차 희망버스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희망버스 승객들에게 줄 어묵탕 두 통을 경찰에게 압수당했을 때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고, ‘어묵탕을 석방하라!’며 목 터지게 외쳤다. 이 사건은 후일 ‘어묵 납치 사건’으로 회자됐다.
투쟁 현장에서 대부분의 음식은 나누기 좋고 따뜻한 국밥이나 주먹밥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민중계급의 식사는 풍부함과 자유로움이 특징으로 수프나 국수, 감자같이 유연하고 넘쳐흐르는 음식인데, 스테이크나 구운 닭요리처럼 썰어서 조각조각 나눠 먹는 요리와는 반대로 숟가락이나 국자로 떠 먹으므로 측정하거나 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민중의 유연한 음식은 점점 진화하고 다변화해 연대의 즐거움을 배로 증폭하고 있다. 지난 일본 교토 방문 이래 영감을 받은 몇몇 사람들이 서울에도 나베당 지부를 창립하기로 했다. 2월12일 여의도 오큐파이 농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바자회에서 나베당 서울 지부의 음식 나누기가 있을 예정이니, 함께 따스한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기를 기원해본다.
리슨투더시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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