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 때 폭우와 최루탄이 섞인 물대포로 만신창이가 된 승객들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깨운 것은 ‘단편선’과 ‘무키무키만만수’의 공연이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무키무키만만수는 2차 희망버스 이후 희망버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서울 홍익대 앞 칼국숫집 ‘두리반’ 출신 뮤지션이자 명동 카페 ‘마리’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홍대역 도로변에 있는 두리반은 철거 농성장인 동시에 복합 독립문화 공간이었다. 2009년 겨울, 두리반을 GS건설의 상가 건설 때문에 빼앗겼다. 두리반 주인 안종녀씨는 정성 들여 가꾼 식당을 부당하게 빼앗길 수 없었다. 용역들이 닫아놓은 문을 열고 자신의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두리반에 준하는 식당을 마련해주고 철거하라’라는 상식적 요구는 500일이 지나서야 지켜졌다. 식당 두리반을 지키고 사건화한 데는 예술의 힘이 컸다. 독립영화 상영회, 촛불 켠 문학낭독회, 칼국수음악회, 자립음악회, 전시회, 벼룩시장 등이 지속적으로 열렸다.
이런 행사들은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침침한 철거 투쟁장을 뜨겁고 개방적인 예술의 장으로 바꾸었다. 특히 철거 문제나 사회 부조리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이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문턱을 낮추는 마중물 구실을 했다. 주말 음악회와 51+ 콘서트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멍구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 단편선, 밤섬해적단, 무키무키만만수, 악어들, 송의빅밴드, 적적해서 그런지, 조한석, 하헌진 등 수많은 밴드들이 여기서 탄생하고 발전했다. 그리고 음악을 ‘화폐교환 수단’이 아닌 이웃과 교감하기 위한 장치로 만들려는 ‘자립음악생산협동조합’이 여기에서 설립된다.
두리반 투쟁이 끝날 무렵인 지난 6월, 명동3구역 세입자 11명이 ‘명동 금융특구사업’으로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가게 건물에서 쫓겨나 점거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리반에 연대하던 활동가와 뮤지션이 명동에 가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명동은 늘 용역깡패가 상주하는 정글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용역깡패에 굴하지 않고 두리반에서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명동의 카페 마리에 와보게 하려고 여러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세미나를 하고, 희망버스 전야제도 열었다.
초기 한 달은 용역깡패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싸움 때문에 거의 매일같이 폭력 규탄 문화제를 했다. 두리반과 달라진 대목은 관객으로만 참여하던 여러 사람들이 젬베와 기타를 두들기며 노래를 적극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관객이 예술가로 성장한 것이다. 마리는 늘 음악 소리로 시끌벅적한 농성장이었다. 그런데 점거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8월3~4일 새벽 4시, 관광버스로 수송된 용역깡패 150명가량이 농성장을 기습해 마리에 연대하던 시민들과 세입자들을 내동댕이치고 내부를 부쉈다. 악기를 산산조각냈다. 덩치 좋은 용역깡패 150여 명이 마리를 점거했다. 마리와 연대하던 세력들은 재탈환을 계획했다. 그날 밤 문화제의 맨 마지막 게스트인 단편선이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외부에서 사람들이 마리 내부로 들어가 용역깡패를 몰아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를 불렀다.
그때 신나게 노래 부르는 시민들에게 질려버린 용역깡패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용역깡패와 대치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용역깡패를 내쫓는 대신, 용역깡패가 시민들에게 소화기를 분사하고 각목으로 때리는 것을 구경했다. 이제 두리반도 마리도 희망버스도 모두 종료됐지만, 이곳에서 성장한 세력은 계속 여러 곳에서 이웃과 함께하고 있다.
리슨투더시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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