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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보다 잘하기

동대문운동장의 역사를 뭉개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올리는 서울시 개발의 폭력성… 새 건물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보다 디자인 잘하기 올림픽’에 참여한 시민들
등록 2011-11-10 17:03 수정 2020-05-03 04:26
‘리슨투더시티’가 주최한 디자인 올림픽 포스터.

‘리슨투더시티’가 주최한 디자인 올림픽 포스터.

‘’ 두리반, 희망버스, 서울 명동의 재개발 구역, 4대강 현장을 가로지르며 활동하는 젊은 활동·예술가들은 본능적으로 ‘창작’ 행위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우리 공동체를 바꾸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어떤 연대의 무대를 시민들과 만들 때, 예술가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드러내는 순간, 예술이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공동체 시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희망버스와 두리반의 무대도 한두 사람의 전문가에 의해 특별한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탑승객들은 수동적 관객에서 다른 창조를 이어나가는 적극적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자기의 생각과 상상력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그것이 내 이웃에게도 영향을 끼쳐 삶의 감각을 바꾸는 것이 미시적 혁명이고 예술이다.

‘리슨투더시티’도 마찬가지로 도시 혹은 건축 전문가가 특권의식을 지양하며, 소수 전문가 대신 도시민들과 서울의 문제를 풀려고 시작한 도시 예술 공동체다. 우리가 본 서울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원주민이 10% 미만밖에 재정착하지 못하는 뉴타운 정책, 기업이 회사를 짓는 행위를 ‘공익’으로 간주해 가난한 상인들을 내쫓는 ‘도시정비법’은 아무리 봐도 소수의 특권을 강화하려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디자인 서울’ 같은 기획도 일방적으로 도시의 다양성과 역사성을 없앤 하나의 폭력이었다.

지난 10월29일 리슨투더시티 주최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이하 디자인 파크) 홍보관에서 개최된 ‘디자인 올림픽’은 서울시의 디자인 올림픽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디자인 올림픽의 인터넷 홍보를 보고 모인 서울 시민 10명이 디자인 파크를 다시 디자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디자인 파크는 도시의 추억을 도시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철거해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대회의 부제목은 ‘자하 하디드보다 동대문 디자인파크 디자인 잘하기’인데, 이는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을 못하니 더 잘하자라는 뜻이라기보다, 도시의 랜드마크란 무엇인지, 동대문운동장은 왜 헐려야 했는지, 서울에 필요한 건축이란 무엇인지, 서울시가 무시했던 서울 시민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자하 하디드는 디자인 파크를 설계한 건축가다. 참가자들은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했다.

참가자들은 우선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와 그 안팎에 자리잡았던 노점 상인이 강제 퇴거된 배경, 운동장을 판 터에서 나온 ‘하도감터’라는 유적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디자인 파크를 다시 디자인했다. 대부분 동대문운동장의 구조를 살리고 공원화하는 그림을 그렸다. 재미있는 점은 2007년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반대하는 노점 상인, 문화재위원, 스포츠계 인사들이 자하 하디드의 당선안 대신 내놓은 대안도 동대문운동장 건물을 개방형 공원으로 바꾸고 스포츠 박물관을 짓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디자인한 건물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할 예정이다.

건축을 하는 한 누리꾼은 “이 기획이 건축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냐”며 기분 상해했다. 이는 폄하라기보다 건축가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을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한강르네상스의 핵심 사업인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얼마 전 재개됐다. 620m의 초고층 빌딩은 과연 서울에 필요한가? 그리고 공공의 이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시민의 이야기와 삶의 문제를 무시한 도시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vmspace.com’과 아트선재미술관 1층에 의견을 남길 수 있다. 이 의견들은 책으로 발간돼 서울시청 도시개발과로 보내질 예정이다.

리슨투더시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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