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날치기되던 날 4대강 공사의 핵심인 상주보와 구미보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물이 일시적으로 스며드는 현상이라 실리콘을 바르면 된다는 4대강 본부의 주장은 무너지는 집을 돼지본드로 붙이면 된다는 것만큼 무모하게 들린다. 수심 11m, 폭 100m의 댐에 물이 줄줄 새는데 실리콘 방수제라니 기가 막힌다. 4대강 추진본부에 ‘정상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요즘 젊은 세대는 ‘멘탈(정신) 붕괴’를 줄여 ‘멘붕’이라는 속어를 종종 쓰기도 하는데, 상실감이나 허탈함으로 정신건강이 허약해 졌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4대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노라면, ‘멘붕’이라는 신종 속어만큼이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싶다. 4대강 공사 현장을 갈 때마다 소중한 사람이 돌연 세상을 떠난 것같이 맘이 쓸쓸하고 아프다. 내가 걷던 넓은 백사장이 한 톨 흔적 없이 사라지고 벼가 자라던 푸른 논이 강에서 퍼올린 모래흙으로 뒤덮인 장면을 보고 올 때마다 여지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백사장 모래가 반짝이는 모습도, 모래를 굴리며 흐르는 맑은 물도, 그 사이에 사는 물고기들 구경하는 것도, 강가에 어지럽게 찍힌 수달 발자국을 구경하는 것도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아름다운 백사장이 사라지는 데는 불과 한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강에 다녀온 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운하반대교수모임을 도와 사람들을 강에 데려가고 책도 만들어보고 여러 가지를 하던 차에 지율 스님과 함께 ‘공간모래’라는 작은 전시장을 만들었다. 그 작은 갤러리를 연 지 벌써 1년, 전시와 행사를 10차례 넘게 기획했다. 낙동강 경천대 사진전을 시작으로 4대강 만화방,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의 딸기잼 만들기, 국토해양부에 항의 엽서 쓰기, 모래 이야기, 시화전, 내성천 이야기 등 강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강의 소중함을 공유하려 애썼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을 공유하고 안타까움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낙동강이 맑았던 것은 모래 때문인데 그 모래를 공급해주는 것은 ‘내성천’이다. 내성천은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강으로 전 구간의 모래가 10~12m 두께인 ‘자연 정수기’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 모래 강에는 수달·먹황새 등 천연기념물 수십 종이 서식하지만, 정부는 4대강 공사를 이곳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여기만은 지키자. 그리하여 지율 스님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함께 ‘내성천 한 평 사기’를 시작했다. 모인 돈으로 내성천 하류의 범람이 잦고 모래가 유려한 강가의 논을 사서, 하류의 4대강 공사를 위해 만든 인공 제방을 허물고 자연습지를 넓혀 내성천의 수달과 고라니, 너구리, 삵, 새 등이 자유롭게 살도록 한다. 이곳을 자연학습장으로 만들고, 훗날 4대강을 재자연화할 때 복원 모델로 쓸 수 있도록 일종의 샘플을 만들어 정부에 제시하고자 한다. ‘내성천 한 평 사기’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누리집(www.ntrust.or.kr/nsc/)에서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12월10일부터 매주 말 내성천 답사를 진행한다. 답사 정보는 다음 카페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리슨투더시티(listentothecity.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슨투더시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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