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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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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자전거’는 이미 균형 잃고 넘어졌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한-일 극우세력 ‘영토 민족주의’로 공생…기초적 복지모델 도입 안하면 참극”
등록 2009-08-11 15:19 수정 2020-05-03 04:25

“이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한국의 도로에서 ‘이명박 자전거’는 균형을 잃은 채 넘어지고 말았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가 토건과 수출로 달리는 ‘두 발 자전거’ 모델을 버리지 않는 한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최근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불량 자본에 졸속 매각한 게 불씨였다”면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국가가 지원을 하고 노동자는 무급 휴직 등을 통해 정상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적 자금 대신 공적 권력을 투입하는 쌍용차 사태를 방관한다면 “그 비극은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그는 스승인 미하일 ‘박’의 성에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국인 ‘박노자’가 되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 교수가 7월 한국에 왔다. 학회 발제에 지방 강연, 불교단체의 법문 참석까지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어 인터뷰 날짜를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7월 28일 학회가 열리는 아산으로 내려가기 직전, 옹색하지만 서울고속터미널 커피숍에서 만났다. 질문마다 속사포처럼 열변을 쏟아내 기자의 컴퓨터 자판이 허덕거렸다. 큰 키에 구부정하게 앉은 채 팔로 턱을 괴다 보니 사진기자가 구도를 포착하는 데 상당한 신경을 써야 했다. 민감한 답변 뒤에는 얼굴을 더 가까이 대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되묻곤 했다. 구부정한 자세는 바로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군사부일체’란 유교적 용어를 빌린다면 박 교수는 올해 세 분의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지난 4월에 연이어 스승과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소회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면, 토착 한국인보다 한국 역사에 더 해박한 박 교수의 한국과의 인연이 자연스레 설명될 것 같다.

=미안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나의 군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부일체’로만 말하겠다. 스승인 미하일 박은 고려인 3세로 1918년 독립운동을 하던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명 박준호씨다.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의 참모인 계봉우 선생 밑에서 한문을 익혔다. 스승은 고려인의 뿌리와 비극적 삶을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사를 연구했다. 를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학 소장 학자인 손녀딸의 러역을 도우려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모스크바대 교수인 스승의 권유로 박사 과정 때 가야사를 연구하게 됐다.

노무현 애도하나 FTA는 이해 못해<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align="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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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 기억과 현재 그리고 전망

◎ 쿠데타의 국제정치학
◎ 불황기 ‘지혜로운 소비’의 함정

◎ 피아트와 파시즘의 정략적 연애
◎ 루앙프라방의 가난한 행복

<font color="#991900">[8월호 기사 목차] </font> | <font color="#991900">[르 디플로 바로가기]</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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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을 군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러시아의 푸틴을 여전히 군주로 본다는 말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웃음) 한국인이 됐지만 정치적 이념상 ‘마음속 군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렇다. 자유주의적 정치인으로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국가의 폭력적 기구에 의해 간접적으로 타살된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다만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국적을 취득한 지 꽤 됐는데 존경하는 한국인은 없나.

=함석헌 선생은 크리스천이지만 배타적이지 않았다. 불교와 도교를 포용한 보편적 종교주의자다. 민족주의를 넘어 세계주의, 우주주의로 나아간 위대한 사상가라고 평가한다.

-아버지의 말년을 보며 북한 동포들의 미래를 떠올렸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발전소 변전기를 설계한 엔지니어였다. 그런데 소련이 무너지면서 작업장이 폐쇄된 뒤 그 건물은 상업회사에 임대되고 노동자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다. 사회주의 옛 소련의 늙은 노동자에게 남은 건 쥐꼬리만 한 연금뿐이었다. 도시의 자본화에 충격을 받고 삶의 의지를 잃었다. 북한 체제가 무너져 흡수통일되면 북은 남한 자본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인데 북한 인민들이 야만적 자본주의 사회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북한 정권이 갑작스럽게 붕괴되지 않길 바라는 이유다.

-전공 분야인 한국 고대사 이야기로 넘어가자. 박 교수의 글을 보면 민족주의적 접근을 지양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차원에서 고대사를 바라볼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사군, 특히 낙랑의 성격과 관련해 요동반도 위치설을 주장하는 소장학자들은 물론이고 신채호나 정인보 같은 초기 민족사학자들까지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낙랑의 중심이 평양이었다는 것은 의 내용과 중국의 주요 사료에서 도출될 수 있고,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한국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일제 식민사관을 반박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근 일부 소장학자의 주장은 내용을 떠나 사료와 고증 등 역사학의 근본적인 방법론 틀을 너무 벗어나 있어 우려스럽다. 우리 안에 외부인이 살았다는 것을 왜 부정하려 드는가? 한사군의 침입을 ‘문화 교류의 창’이란 시각에서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고구려가 낙랑을 멸망시킨 뒤에도 중국인들을 추방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 대한 인식이 썩 나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또 낙랑의 실력이 좋아 고구려의 문화 발전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만주 지배를 부정하는 칼럼을 봤다.

=부족연합 식의 준국가인 고조선을 마치 거대한 제국으로 상상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고조선은 요동, 나아가 만주 역사의 일부분이긴 했지만 ‘영토 지배’ 같은 후대적 발상을 상고사에 투영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다.

후대적인 민족개념 소급은 난센스

-만주 지배라는 사실 여부보다 국가나 민족의 개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다는 말인가.

=고조선은 중앙집권적 구조가 없어 고대 관료제 국가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민족의 영토 지배라고 말할 수 없다. 고구려는 나름대로 제국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위나라·돌궐과 갈등과 제휴를 번갈아하는 데서 보듯 동북아를 혼자서 호령하는 것도 절대 아니었다. 제국주의의 침탈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역사에서 제국성을 자랑하려는 것은 모순 아닌가? 여말선초에 형성된 한반도의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역사에 소급해 적용하는 것보다 세계사의 보편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

-고구려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신라의 불완전한 삼국통일에 대해선 관대하다.

=당시 신라의 선택은 당나라 이외엔 있을 수가 없었다. 약자로서 어디에 붙느냐의 계산이 남았을 뿐인데 당나라가 중국을 평정하는 걸 보고 고구려의 멸망을 점쳤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고구려를 없앨 수 없으니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 대동강 이남은 우리 땅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결국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강자와의 연합을 택한 것인데,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정치인이라면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신라엔 고구려도 외세였다. 언어와 문화가 달랐는데 후대적인 민족 개념을 들이대는 건 난센스다. 당시엔 동족 인식이 거의 없었다.

-요즘 이나 같은 사극을 보는가.

=사실 왜곡이 너무 심하다. 그냥 판타지 소설로 즐기면 될 일이다. (웃음)

-반일에 관한 한 한국에선 과거 행적과는 상관없이 좌우가 따로 없다. 일본 정치인의 식민지배에 대한 망언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응이 일치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상처받은 민족주의에서 비롯되는 탈식민적 증후군을 정치인들이 활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도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상처에 기생해 국민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독도 문제는 이승만 정권이 먼저 활용했다. 정권 내부적으로는 사실 독도에 하등의 관심이 없는데도 ‘영토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민을 지배구조에 편입시키고 있다. 분단의 아픔이 남북한 강경파의 적대적 공생으로 활용되는 것처럼 영토주의는 한·일 극우세력 간에 적대적 공생으로 이용되고 있다. 더 넓게 보면 민족주의는 남·북·일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일본은 북한을 악마화하고, 남한과 북한은 일본을 공격하며 인민을 단결시킨다. 또 이명박을 ‘민족의 역도’라고 부르는 북한은 대남·대일·대미 위기의식을 부추겨, 생존에 허덕이는 민중을 어용적으로 결집하는 것이다. 동북아 전체 민중들의 비극이 아닌가.

-박 교수의 이러한 비판은 정치적으로 북한과 남한 내 좌파 민족주의와의 거리두기로 나타난다. 분단 한반도에서 민족 문제는 저항 담론으로서 유통기한이 지났는가.

=한국의 진보 진영을 괴롭히고 있는 북한 문제는 하루바삐 매듭지어야 한다. 파산한 북한의 바지 자락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것인가. 남북한의 군사주의는 동시에 비판받아야 한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종북주의’ 논쟁이 불거졌고 ‘마녀사냥’이라는 항변도 있었다. 금기를 깬 건가, 금도를 넘은 건가.

=‘마녀’ 격의 문제적 요소가 실제로 존재해서 ‘사냥’한 것 아니냐.

-민족주의 못지않게 지역주의도 여전히 강고하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권력은 피지배층 동원 기제로 국가주의뿐만 아니라 군사문화와 대중문화 등을 활용한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주의는 피지배층을 지배정치의 자장에 떨어뜨리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진보 정당의 득표를 어렵게 하고 혁명적 변혁을 가로막고 있다. 과거 호남 차별의 작동 기제는 외국인 노동자 차별로 이어졌고 북한 사람 차별로 이어질 것이다.

-반면에 서울의 강남은 확실하게 계급적 투표를 한다.

=강남과 한나라당의 관계는 김춘추와 당나라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웃음)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의 복지자본주의 모델을 한국 사회의 대안으로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궁극적 대안은 자본주의 철폐이지만 가야 할 길이 막막한데 어쩔 것인가. 기초적인 재분배형 국가의 틀을 도입하지 않으면 참극이 벌어질 것이다. 미봉적이나마 복지 모델이 필요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겉은 활기에 찬 듯 보이지만 속은 곪아터지고 있다.

진보진영 괴롭히는 북한문제 매듭을

-한국의 검찰을 공안기관이 아니라 사안기관이라고 표현했던데.

=고려·조선 시대의 어사대나 사헌부는 공적인 일에 대한 의식이 강해 임금과 갈등을 빚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금의 검찰에는 그 대듦의 정신을 찾을 수 없다.

-한국의 사회경제를 빨리 달릴 때는 괜찮은데 속도를 못 내면 바로 넘어지는 ‘자전거’에 비유했는데 ‘이명박의 자전거’는 넘어질 운명인가.

=이미 넘어졌다. 지금 일어나려고 하는데 자생적이지 못하다. 경기 회복을 중국의 부양책에 기대고 있다. 비정규직과 빈민들의 고통이 깊어질 것이다. 한국의 자전거는 이제 빨리 달릴 수가 없다. 자전거형 모델 자체를 빨리 버려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곧장 아산행 고속버스가 있는 승강장으로 향했다. 가방 두 개를 양쪽 어깨에 멘 채 가판대에서 을 집어 본 박 교수는 ‘미네르바’ 인터뷰 기사의 ‘부익부 빈익빈, 이러다 남미 될라’란 제목을 보고 “결론은 나랑 같네”라며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차에 오르기 직전까지 그는 한국학 세미나의 주제에 대해 꼼꼼히 설명했다. 괜히 겸연쩍어졌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다민족·다문화의 ‘무지개 세상’을 꿈꾸던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와 한국인 박노자는 동일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담·정리 한광덕 국내편집장 kdhan@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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