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다. 계급투표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 단어를 들으면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묘한 반감마저 들기도 한다. 왜냐면 한국 정치사에서 계급투표라는 말을 쓸 만큼 눈에 확연하게 드러난 선거 결과가 과연 얼마나 존재했을까라는 도발적 질문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에서 계급의 이익을 배신하는 반(反)계급투표만 끊임없이 반복해온 현실만 머리에 맴돌 뿐이다. 1950~60년대 ‘막걸리 선거’와 ‘고무신 선거’를 거쳐 80~90년대 ‘빨랫비누 선거’와 ‘갈비탕 선거’로 이어져온 각종 향응이나 금품 제공은 부정선거의 화려(?)한 단골 메뉴였다. 고무신 한 짝과 막걸리 한 잔에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도 지독히도 지연·혈연·학연에 연연해온 풍토는 우리 선거 문화에 여전히 내재하고 있다. 노동자로 대표되는 서민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는 후보에게 신성불가침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가문·학교에 따라 줄서기를 하는 전근대적 선거 행태를 지금도 쉽게 접하는 마당에 계급투표 운운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 외려 의문부터 드는 게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냉소적이고 자기비하적 자책 이전에 한국의 정치 사회에서 계급투표는 어떻게 굴절되고 왜곡·변형돼가는지 한 번쯤 따져보는 게 의미 있을 수 있다. 정치사회학에서 계급투표는 특정 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하는 집단적 투표 행위를 의미한다. 특정 집단이 기존 조직이나 제도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선거 공간에서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계급투표다. 이런 정치적 행위는 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는데, 계급투표라는 본디 개념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투표 행위에서 연유한다.
계급투표의 구체적 실체는 노동자 집단이 선거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 행위를 조직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노동자 계급투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으로 파생되는 계급정치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흔히 보편적 이해관계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는 자본가적 계급투표에 비해 노동자 계급투표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즉,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먼저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합목적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계급투표를 제한할 경우 변혁과 개량의 구분이 우선된다. 이 경우는 노동자계급의 대표가 실제로 획득하는 득표율에 대한 의미보다는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철저하게 알리고, 자본가 주도의 계급지배가 만들어낸 사회구조적 모순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문제점을 전파하는 데 의미를 둔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자를 의회로 진출시키는 일에 심정적으로 동의한 노동자가 손쉬운 투표 행위 정도로만 집단화한다는 의미에 무게중심을 두는 해석도 있다. 이 경우는 노동자 대표가 선거에서 실제 획득한 득표율에 대한 해석에 의미를 둔다. 선거를 선전과 선동의 장으로 보는 해석보다는 후자의 경우가 한국 사회에서도 설득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의 동질적 투표 행위가 실제 존재하는지는 과연 자신들의 선거구 내에서 진보 정당을 얼마나 지지했는가로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투표라는 개념은 노동자 지지표의 ‘응집력’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계급투표의 저변에 놓인 노동자 개인의 행위를 규명하기보다 현상으로서 계급투표를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계급투표의 원인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계급투표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단편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계급 형성 과정에서 필요한 노동자 정체성을 확인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해명이 불충분하다. 게다가 계급투표가 존재한다고 해서 계급의식 역시 자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의문은 한국 정치사에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계급투표, 과연 있기는 하나?
계급의식을 가진 특정 계급이 집단적 투표 행위를 하는 것을 계급투표라고 할 경우,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계급투표를 하고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1987년 이후 노동조합운동이 대중화됐지만, 선거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계없는 몰계급적 투표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즉자적 계급’(Klasse an sich)으로서 산업노동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노동자의 투표 행위는 다른 계급 혹은 계층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아 ‘대자적 계급’(Klasse für sich)으로서 노동자계급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원론적 의문마저 제기될 수 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전국 평균 득표율 약 3%를 올린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비록 일부 산업 지역에서 평균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전국 합계 약 71만여 표에 불과했으며, 이 득표수는 80만여 명에 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제조업 노동자가 밀집해서 살아가는 울산·창원과 같은 산업 지역의 경우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후보가 꾸준히 당선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계급투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는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역적이고 예외적이라는 점에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반(反)계급투표, 과연 무슨 의미일까?사회적 존재인 계급과 무관한 투표를 하는 걸 반(反)계급투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이른바 계급이라는 존재를 배신한 반(反)계급투표의 경향성은 한국 정치사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회의 지형은 ‘진보 배제’와 ‘보수 독점’이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 물론 10년 전에 등장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했기에 진보 배제라는 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국회에서 진보 정당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감안하면 정치적 배제라는 용어 사용이 그리 무리가 아니다.
이런 정치적 현실은 선거라는 장에서 더욱 쉽게 확인된다. 노동자계급이 포함된 서민층은 계급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에 따라 투표를 해왔으며, 선거 결과는 마치 삼국시대로 되돌아가는 느낌마저 준다. 다시 말해 유권자의 투표 행위는 계급 정체성보다 지역 정체성으로 구조화돼버린 현실에서 과연 노동자의 합리적 선택이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회의도 가능하다. 물론 최근 들어 정치적 주류의 흐름과 관계없이 노동자의 집단적 투표 행위가 현상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현상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선거 시기에 자신의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행위로 인해 생기고 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계급의식 형성의 단서라고 볼 수 있는 ‘노동자 정체성’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몰표를 던지는 투표 행위와 유사한 현상이 자본가계급에서도 존재한다. 강남 3구를 주축으로 하는 부동산 자산가인 소부르주아지들의 투표 행위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종부세 저항의 진원지였던 강남 3구 소자본가계급의 투표 행위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부동산과 투표 행위 간의 인과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손낙구의 책 에도 나와 있듯이 다주택 소유자, 아파트 거주자, 정상적인 부부 가구 모형이 많은 지역의 투표율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성도 높다. 주택의 소유·주거·가구 형태에 따라 지지 정당과 투표 가능성까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지난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선거 과정에서부터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던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부동산 자산을 소유한 유산계급이 계급투표에 몰두하는 데 비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무산계급의 투표 경향성을 두고 반(反)계급투표의 전형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주장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손낙구의 책에도 이미 나와 있듯이 표의 응집성에선 비록 유산계급에 미치지 못하지만 무산계급 역시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대변하는 중도 혹은 진보 정당에 나름대로 열심히 투표해왔다고 보는 게 정당하다. 선거 결과에서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투표 행위가 계속되면서 무산계급의 정치적 무관심 역시 높아졌을 개연성을 두고 계급의식의 부재로 인한 몰계급적 투표 행위라고 핍박해선 곤란해 보인다. 쉽게 말해 아무리 열심히 투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데 대한 염증과 혐오가 계급 응집력의 저하와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으로 대변되는 무산계급의 이해관계를 무시하는 유산계급 중심의 정치는 항상 자신들만의 고유 의제인 지역주의를 감초 삼아서 우려먹어왔을 뿐이다.
반(反)계급투표라는 말은 한편으론 노동자계급 중심의 계급투표의 허약함을 냉소적으로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 중심의 계급투표를 숨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하지만 이 언어적 이중성은 자산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계급투표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는 현실의 원인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의 빈약함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모든 문제를 ‘내 탓이오’라는 식으로 돌리는 숙명론과 결정론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산가가 주도하는 계급투표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강화하는 역(逆)계급투표일 뿐, 결코 계급지배 질서에 반(反)하는 계급투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반(半)계급투표, 무엇 때문에?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표는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데, 자산가 중심의 계급투표는 제대로 꽃을 피우는 희한한(?)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왕왕 생기고 있다.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이 필요하다는 여론조사에선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하면서도, 실제 선거에만 들어가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권자만 선택하는 격차가 존재하듯이 계급투표 역시 의미와 현실에선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이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간단하게 말하면 계급정치의 빈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노동자계급 주도의 계급투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산업화 초기 시절 형성된 노동자 계급정당에 충성하는 산업노동자의 모습은 서구사회에서는 흘러간 옛 추억의 하나이지만, 한국 사회에선 제발 일어났으면 하는 소망의 하나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계급투표가 발현하기 어려운 점은 우선 자본주의 초창기에 형성된 공장노동이라는 동질적 조건에서 집단적 계급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던 서구와는 너무나도 다른 조건의 차이에 기인한다. 멀리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조건으로 인해 진보와 보수로 대별되는 이념적 균형을 한국 사회에서 만들기 어려운 역사적 경험이 있었다. 여기에 압축성장이라는 한국적 발전 모델이 사회운동에도 그대로 투영되면서 경제적 분배 정의에 초점이 맞춰진 노동운동과 탈물질적 가치 다양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는 신사회운동이 동시에 공존해, 계급정치 형성과 내용에 대한 접근마저 너무나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계급정치 형성에서 필요한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보수 정당에 몸을 의탁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계급정당의 출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 이웃한 다른 계급과의 연합 혹은 연대를 구축해가는 계급정치가 더디게 발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자계급 내부가 결코 동질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현실에서도 기인한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규모에서 전면적으로 작동하면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화와 이질성 증가라는 현상은 산업화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먼저 산업화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인구학적 측면에서 전통적 노동자계급의 주류였던 제조업·생산직 노동자 수는 점차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 조직화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현상은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왜냐면 노조라는 조직으로 모으기가 쉬운 노동자 수는 줄어드는 데 반해, 노조 조직화가 어려운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체성을 확인하고 계급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간 교두보인 노조의 역할이 점차 약화 혹은 무력화하는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고전적 노동자계급의 요새였던 ‘굴뚝산업’이 서서히 사라지고 첨단 정보기술(IT) 산업과 민간 서비스 산업이 신흥 산업으로 부각되면서 노동의 성격이 강제성에서 자율성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등장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하면서 남성 주도로 대표되는 기존 노조운동에 변화를 강요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말해 전통적 육체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진 노조운동으로는 정신적 서비스가 가미된 ‘감정노동자’를 포섭하기가 어려운 현상이 산업사회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전 지구적 규모에서 발생하는 공통분모적 현상 이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사이에 2배 이상의 임금 격차가 존재하고, 노조 조직률이 임금노동자 전체 대비 10% 안팎에 이를 만큼 낮다는 사실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노조조직에 포함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에겐 계급투표의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직된 노동자는 열심히 계급투표를 하고 있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반쪽짜리 계급투표의 전형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반쪽짜리 계급투표가 노동시장의 변화에 속수무책의 지경에 놓인 노조운동의 무기력에 책임이 있는지, 아니면 능동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화하는 자본의 움직임에 따른 것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대목이다.
계급투표와 민주주의의 함수관계
우매한 대중이 합법적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철저히 반(反) 혹은 비(非) 민주적 지도자를 선출할 때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는 위기에 빠진다.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 과정에는 선거라는 절차가 통과의례처럼 있었다. 한 사회에서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했을 때 대중은 반(反)계급적 투표 행위에 몰입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면, 민주주의 위기와 계급투표 사이에 놓인 상관관계의 비밀은 풀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은 곧잘 들리면서도 사회·경제적 첫 번째 의제인 일자리 문제는 비켜가거나 굴절되는 기이한 현상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일자리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말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시장에서 늘어나는 일자리란 불안정하고 장래가 없는 비정규 노동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생에서 실업자로 자리를 바꾸는 것 외에 달리 선택할 게 무어냐는 청년층 예비 노동자들의 볼멘소리가 개인적 무능으로 치부되는 현실은 하나의 보기일 뿐이다. ‘88만원 세대’만 있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직업 선택의 기회마저 제대로 없는 노령 노동자를 일컫는 ‘50만원 세대’도 있다고 말을 하면, 그건 나만 아니면 그만일 뿐이고 사회가 개인적 불행까지 감당할 수 없지 않느냐는 기묘한 도덕 교육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것도 모자라서인지 청년과 고령 노동자 사이에 놓인 중·장년 노동자 중에서 노조로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에겐 ‘대기업 이기주의’라는 사회적 저주와 비난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노조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는 행운(?)을 걸머쥔 노동자가 계급투표의 주도 세력이라는 사실은 항상 괄호 안의 내용으로 숨겨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는 구직자가 눈높이를 낮추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계급의식을 가진다는 건 또 다른 인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더 이상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 계급정치를 주도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계급이란 과거처럼 생산관계에서 파생된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인식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계급의식은 과거처럼 작업장에서 유사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동질적 의식이 아니라, 소비를 할 수 있는 상품과 문화의 향유에서 발생하는 의식적 동질성에 따라 새로이 형성·변화하는 과정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촛불 세대’가 보여준 신선한 문화적 충격에 노조 운동가들이 스스로 변화하려고 몸부림쳤듯이, 우리 시대의 계급의식 역시 새로운 이미지와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글•이종래
독일 뮌스터대 철학박사.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사회학). (2002), (200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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