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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용공몰이 타고난 ‘천성’인가

2년간 사생활 도·감청한 ‘영남위 사건’과 우스꽝스런 ‘원정화 간첩 사건’ 뒤엔 천성관 총장 내정자
등록 2009-07-10 10:47 수정 2020-05-03 04:25
한 공직자가 조직의 수장이 되는 것과 그가 직전까지 걸어온 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절대권력’ 검찰의 수장 자리에 앉을 이라면 보다 세밀하게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엄밀한 잣대로 평가해봐야 할 것이다. 국회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그 동안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건들을 뜯어보면 유쾌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편집자
그렇잖아도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 후퇴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공안통인 천성관 내정자가 검찰총장에 등극하면 각종 공안몰이 사건이 빈발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그렇잖아도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 후퇴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공안통인 천성관 내정자가 검찰총장에 등극하면 각종 공안몰이 사건이 빈발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1998년 7월22일 부산경찰청은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을 발표했다. 전국 최연소로 기초단체장에 당선해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김창현(당시 36살) 울산 동구청장을 비롯한 울산 지역 노동·시민단체 회원 15명이 이른바 ‘영남위원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해 활동했다며 이들을 긴급체포했다고 밝힌 것이다. 현역 구청장이 이전부터 반국가단체 조직원으로 활동을 펼쳐왔다는 경천동지할 내용이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국민들은 다시 한번 놀라야 했다. 경찰이 사건 핵심인물이라면서 구속한 박아무개씨 부부의 집을 2년 넘게 동영상으로 찍고 도·감청을 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 일부가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경찰은 심지어 박씨를 조사하면서 “당신 마누라가 가끔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는 것은 당신이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며 부부간의 은밀한 대화까지 모두 엿들었음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지독한 인권유린이 저질러진 것이다.

대부분 무죄 난 ‘영남위 사건’의 공안부장

사건 초기부터 ‘영남위원회’ 는 공안 세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통상의 조직 사건과는 달리 강령·규약·자금출처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고, 경찰이 발표한 조직 이름도 체포영장의 ‘반제청년동맹 영남위’에서 ‘한민전 영남위’로 바뀌더니 또 ‘조선노동당 영남지역당’으로 계속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1997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전달한 북한동포돕기모금을 두고 ‘김정일 보위투쟁’이라고 주장한 대목은 중학생이 들어도 고개를 갸웃거릴 내용이었다. 감청 테이프 1천여 개와 함께 유일한 증거물로 제출된 박씨의 컴퓨터 디스켓도 출처가 묘연한데다 경찰이 증거 제출 전 임의로 손댄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마다 경찰의 도·감청 영장 신청을 받아 법원에 청구하는 등 사건을 진두지휘해온 부산지검 공안부는 경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공소장을 작성했다. 당시 공안부장의 이름은 천성관이다.

1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은 15명은 2심에서 재판부가 도·감청 내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부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컴퓨터 디스켓마저 증거로서의 효력을 잃었다고 판단하면서 끝내 김창현 전 구청장을 포함한 3명에 대해서만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가 아닌 이적단체 구성 혐의를 인정해 징역 2∼7년형을 확정했다. 검경의 수사 방법 자체가 모두 무리한 것이었다고 판단한 당시 판결로 법조계에는 ‘독수독과론’(수사기관이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얻은 물증은 재판에서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이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11년 전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이 ‘영남위원회’ 사건을 겪을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장이 바로 천성관 검사였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11년 전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이 ‘영남위원회’ 사건을 겪을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장이 바로 천성관 검사였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6월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은 “사건 당시 부부를 한꺼번에 잡아가는 바람에 어린아이만 다음날까지 집에 혼자 남겨졌고 그 충격으로 현재까지 정서 장애를 보이는 등 심각한 인권유린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현대자동차가 1만 명을 해고한다고 했고 나는 구청장 당선자 시절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선고’라며 반발하던 시점에서 공안 세력이 몇 년 동안 끌어오던 사건을 터뜨린 것”이라며 “우리나라 경찰이 수사권을 가진 것도 아니고 검찰의 지휘를 받아서 수사하게 돼 있고 영장 청구도 검찰이 하고 공소 유지도 검찰이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인권을 깡그리 무시해가며 벌인 무리한 조직 사건 엮기의 책임에서 천성관 당시 부장검사가 져야 할 몫이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형식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전진한 것 같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공안 세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왜?

용산 참사 수사 때 철거민 엄벌 몰아가

문화방송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담당 PD들을 체포해 조사하고 김은희 작가 등 제작진들의 전자우편 몇 달치를 압수해 들여다보고, 심지어 전자우편 일부 내용을 언론에 보도자료로 뿌리는 엽기적 행태를 벌이는 곳이 바로 서울중앙지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YTN 노조원 20명의 전자메일 9개월치를 깡그리 가져다 뒤져본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은 곳은 서울 남대문경찰서였으나,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한 주체는 역시 서울중앙지검이다.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그들이 어떤 식으로 회사의 업무를 방해했는지 입증하기보다는 일단 지나간 전자메일을 뒤져보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무서울 뿐이다. 모두 새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천성관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등 5명이 화염에 숨져간 용산 참사 사건을 수사한 뒤 ‘철거민이 불을 질러 경찰 특공대원 1명을 숨지게 했으니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할 당시 지검장도 천성관 검사장이다.

그가 지난해 수원지검장으로 근무하던 때 발표한 ‘원정화 간첩 사건’도 마찬가지다. 원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간첩으로 활동하는 동안 중국에서의 행적도 의심스러워 심지어 도 진짜 간첩인지 의심스럽다는 기사를 쓸 정도였으나, 당시 수원지검은 자신감 있게 사건을 떠벌였다. 결국 원씨는 지난해 10월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그대로 형이 확정됐지만, 원씨와 함께 간첩이라고 기소된 의붓아버지 김동순씨는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났다.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신용석)는 판결문에서 “수사기관이 김씨에 대해 장기간의 면밀한 관찰이나 추적을 통해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원씨 사건 조사 과정에서 참고인으로 불러 보름 동안 조사를 하다가 간접 사실만을 들어 간첩이라 지목하고 체포했다”며 검찰 수사가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김창현 “또 수많은 공안 사건 터질까 걱정”

평생 공안검사로서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빨갱이 몰이 수사’ 논란에 휘말리고, 또 그 과정에 피고인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마구잡이로 저질렀다는 눈길을 받는 천성관 검사장이 공익의 대변자여야 할 검찰의 차기 수장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에 김창현 위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시국 사건들을 불온시하며, 가장 정의롭지 못하고 이분법적인 잣대로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인식해온 천 지검장은 진작 옷 벗고 반성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사람이 검찰총장이 된다는 건 대단히 올바르지 못하죠. 천 검찰총장 아래에서 수많은 공안 사건이 터질 것 같아 걱정됩니다. 그런 이를 총장에 내정한 사실이 공안 세력들에게는 환호를 불러일으키겠지만요.”

김 위원장은 최근 민주노동당 차원에서 ‘정권 퇴진’ 구호가 다시 나오자 김 위원장이 11년 전처럼 또 끌려가는 것 아니냐고 어머니가 걱정하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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