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1일 청와대는 전격적으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내정했다. 쟁쟁한 두 기수 선배들을 제치고 발탁된 터라,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 ‘깜짝카드’였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정통 공안통’이다. 내정 발표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공안통 검찰총장’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공안이란 결국 ‘공공의 안녕’인데, 국민을 편하게 하려면 공안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공공의 안녕이 잘 보장돼야 인권도 잘 보장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사전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법감시위원장인 최강욱 변호사는 “그동안 우리 공안검찰은 ‘국민의 안녕’보다는 ‘정권의 안녕’에 복무했다”고 꼬집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력의 의중을 살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개혁하라는 국민적 열망이 컸지만, 이번 인사는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통 공안 출신 검찰총장의 기용을 ‘개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다.
천 후보자는 올 1월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다. 공안통이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것은 1997년 안강민씨 이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5개월 만에 검찰총수 후보가 됐다. 선례를 찾기 힘든 초고속 승진이다. 도대체 무엇이 ‘천성관 검찰총장’을 가능하게 했을까?
530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우리도 이제 질 좋은 쇠고기를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됐다”며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 기세 좋게 합의했다. 전 정부의 협상 기조를 너무나 쉽게 뒤집으며 국민의 건강을 광우병 위험에 노출시킨 그의 경솔함에 시민들은 ‘촛불’로 저항했다. 집회 참여 시민 수는 늘어났고 일부는 청와대로 향하며 ‘MB 아웃’을 외쳤다. 집권 3개월 만에 터져나온 퇴진 요구는 이 대통령에게는 ‘공포’였을 것이다. 공안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대선 불복종 운동이었던 지난해의 ‘촛불’은 오버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촛불집회 상처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10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막아선 ‘명박산성’은 그 공포감을 증명하는 거대한 조형물이었다. 정권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이명박 대통령은 ‘법질서’를 강조하며 거리의 시민을 진압해야 했다. 야전에서 필요한 건 전투경찰이지만 시민들을 합법적으로 잡아넣고 벌을 주려면 법률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공안검찰이었다.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예전에는 남산(옛 중앙정보부 및 안기부)에서 잡아다가 패면 끝이었지만, 요즘은 무엇을 하든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며 “그런 법률적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공안검찰”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TK 독식’으로 끝난 첫 번째 검사장 인사에 견줘, 올 초에 단행된 두 번째 인사에서 공안통이 전진 배치된 이유로 볼 수 있다. 천 후보자는 ‘촛불’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소방수’처럼 서울중앙지검장에 기용된 천 후보자는 정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부임한 지 하루 만에 터진 용산 참사를 ‘철거민들의 화염병 난동’으로, 주임검사의 저항으로 전임 지휘부가 손놓고 있던 문화방송 〈PD수첩〉 사건은 ‘대통령을 향한 적개심에서 나온 명예훼손’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정권으로서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법하다. 검찰총장 인선 직후 “천성관 후보자는 평소 법질서 확립에 대한 소신이 분명한 분”이라고 추어올린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은 그를 미더워하는 정권의 시각을 보여준다.
천 후보자의 발탁은 검찰이 평소 수사만 ‘제대로’ 한다면 정권 차원에서 얼마든지 화끈하게 보상해줄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공안부에서만 공안 사건을 담당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대표적인 공안 사건인 용산 참사와 〈PD수첩〉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중심으로 이뤄졌고 이른바 ‘혹세무민죄’를 씌운 ‘미네르바 사건’은 엉뚱하게도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에서 담당했다. 공안 감각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하면 TK 출신이 아니어도, 꼭 공안검사가 아니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답은 수사 이전에 이미 나와 있다. “그거 틀렸는데요”라고 말하면 임수빈 변호사(〈PD수첩〉 사건의 첫 주임검사)처럼 검찰을 떠나야 한다.
기수가 낮은 천 후보자의 검찰총장 내정을 통해 정권은 검사장 인선의 재량을 크게 넓혔다. 발표 직전까지도 가장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로 점쳐졌던 권재진 서울고검장(사시 20회)은 현재 검찰조직에서 명동성 법무연수원장과 함께 최선임 기수다. 그가 총장이 되면 검사장 인사 요인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보다 기수가 낮은 천 지검장을 총수 자리에 앉힘으로써 선배·동기 검사장을 줄줄이 사퇴시켜 승진 자리를 많이 만들어놓는 게 정권으로서는 여러 모로 이득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권재진 고검장이 총장이 되면 좋은 사람은 권 고검장 한 명뿐”이라며 “검찰총장이 교체되는 2년마다 대규모 인사 요인이 발생하는데, 대통령이 2년 뒤에 인사를 하려고 해도 그때는 집권 말기라 힘이 빠질 수 있다. 정권 초기에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대통령의 영도 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래 머리 좋은 사람이 얄팍하지 않나”
물론 승진 기준은 정권을 향한 충성도가 될 것이다. 한 중견 검사는 “전혀 의외의 사람을 쓰는 건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한 뒤 “앞으로 검사들은 더 공안적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원래 머리 좋은 사람이 얄팍하지 않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충청 출신의 천 후보자가 내정되면서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동반 퇴진설이 나돌던 김경한 장관의 거취는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임설과 경질설이 엇갈린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이명박 대통령은 업무를 장악하고 선제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선호하는데, 김 장관이 그런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며 유임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려고 잠시 늦췄을 수도 있다. 개각 때 함께 교체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어쨌든 김 장관이 유임되면 최강의 ‘공안 콤비’가 법무·검찰을 장악하게 된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상승효과’가 우려되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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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2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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