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국방부의 대체복무 원점 재검토는 후폭풍을 불렀다. 국방부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도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기사가 나온 뒤 국내외에서 국방부로 향하는 역후폭풍이 불었다. 9월5일 춘천지법 형사1부(재판장 정성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을 명시한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 춘천지법은 이례적으로 “이르면 내년부터 대체복무제 시행이 예상됐으나 최근 정부가 방침을 번복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좌절을 겪게 됐다”고 정부 방침을 비판했다. 이어 9월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대체복무 도입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찬성 의견이 44.3%로 반대 여론 38.7%를 웃돌았다. 지난해 9월 리얼미터의 같은 조사에서, 반대가 49.7%로 찬성 35.5%보다 높았던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국방부는 연말에 끝나는 대체복무 연구용역 결과에 바탕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다시 확인했다. 연구용역의 핵심은 대체복무 도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여서 리얼미터 결과는 의미가 크다.
그리고 미국에서 뜻밖의 권고가 나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주재해 9월19일 워싱턴에서 열린 국무부의 ‘연례 세계 종교자유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무부 국제종교자유 담당 대사인 존 핸포드는 “한국 정부는 종교적 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며 “우리는 한국 국회가 이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2008 세계 종교자유 보고서’는 한국의 상황을 “헌법과 법률, 정책에서 종교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대체복무 도입을 특별히 언급했다. 보고서는 “2007년 9월18일 한국 정부는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도입 방침을 발표했으나, 아직 국민의 60% 이상이 도입에 반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현재 병역거부 수감자 489명, 반복적인 벌금형을 받는 예비군 거부자 약 60명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무부의 ‘2007 세계 종교자유 보고서’에도 한국 병역거부자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2007년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군복무를 거부하는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군복무를 면제하거나 대체복무를 수행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의 병역거부 수감자 현황 등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보고서는 언급 내용이 일반적 성격이 강하고 국내에 보고서 내용이 뒤늦게 알려져 여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에 견줘 2008년 보고서는 ‘권고’의 성격이 뚜렷하다. 더구나 앞으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해마다 ‘세계 종교자유 보고서’에 병역거부에 대한 언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7년·2008년 보고서에는 표현은 조금 달라도 공히 ‘미국 부대사가 한국 여호와의 증인 대표자들을 만나 병역거부 수감 현황 등에 대해 토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은 2007년 7월6일 당시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윌리엄 A. 스탠턴 부대사를 만나 한국의 병역거부자 상황을 전했던 정운영 (사)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여호와의 증인 연합체) 한국지부 이사를 만났다. 그는 당시에 마침 방한 중이던 필립 브럼리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본부 법률부 대표와 함께 스탠턴 부대사를 만났다.
“미 대사관에서 먼저 연락왔다”정운영 이사는 “우리가 먼저 만나자고 청원한 것이 아니라 미국 대사관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부대사가 우선 한국 상황에 대해 듣고 싶다며 물었다”며 “그래서 병역거부는 일제시대부터 있어온 일이며 박정희 정권 시절에 처벌이 극심해진 1970년대 문제인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한국에 국가주의 사고가 강해져 종교적 시각으로 병역거부 문제를 보지 못한다는 의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60년 가까이 1만2천 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혔고 4명은 맞아 죽었다는 사실, 그래도 병역거부가 의제로 떠올랐던 2000년대 초반에 견줘 대체복무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 등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탠턴 부대사의 발언도 전했다. “부대사가 우리의 입장에 공감하지만 내정간섭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어서 공식 언급을 하지는 못한다면서도, 한국 정부 관계자와 대화 기회가 오면 미국이 병역거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고 이 문제가 왜 민주주의 진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대화 내용을 국무부 본부에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대화는 20여 분 이어졌고, 정운영 대표가 이 문제를 다룬 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한 자료 등을 부대사에 전했다.
나중에 2007년 보고서에 부대사가 자신과 대화를 나눴다는 내용이 실린 것을 알고 정운영 대표도 깜짝 놀랐다. 그는 “미국이 한국 정부에 이런 발언을 조심하지 않느냐”며 “그럼에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한다(encourage)는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이런 발언을 해도 누가 되지 않을 만큼 한국이 성숙한 사회로 발전했다는 미국 정부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굳이’ 보고서에 병역거부자의 상황이 언급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은 종교 박해를 피해온 이들에 의해 건국됐다. 그래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국가가 있어야 종교가 있다는 말은 성립되기 어렵다. 오히려 종교가 있으므로 국가가 생겨났다. 이렇게 미국은 각국의 인권을 종교와 결부해 생각한다. 그래서 국무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종교자유 보고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죄” 소수의견 냈던 헌재소장이렇게 미국도, 국내 법원도, 여론도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에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병무청은 지난 8월 연구용역기관을 선정해 대체복무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연말까지 연구가 끝나면, 국방부는 내년 초에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2004년에 이어 헌재의 두 번째 위헌심판도 남아 있다. 헌재는 2004년 당시에 7 대 2 의견으로 병역거부 처벌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입법부에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했다. 하지만 4년이 흘러도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춘천지법 형사1부는 “우리 사회 수준에 비춰 현역 복무와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며 위헌법률심판을 다시 제청한 것이다.
이제 2004년 합헌 결정 당시의 헌법재판관들은 모두 교체됐다. 새로 임명된 헌법재판관 중 일부는 국회 청문회 당시 관련 질의를 받고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고,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은 2004년 대법관으로 있을 때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무죄 취지의 소수 의견을 낸 바 있다.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헌법재판관 9명 중에 6명이 위헌 의견을 내야 한다. 정운영 이사는 “호주제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나올 때 정부가 호주제 폐지 입법을 준비하고 헌재가 위헌심사를 하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듯이, 대체복무도 이번엔 허용되지 않겠느냐”고 희망했다. 이렇게 연말까지 ‘마지막 라운드’가 남았다. 병역거부가 공론화된 지 벌써 9년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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