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은 내란사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어야 한다. 더 나은 한국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성찰과 방향, 밑그림, 과제 등에 대해 진보적 필자들의 연속 기고를 싣는다. _편집자
12·3 친위 쿠데타 시도 직후, 윤석열은 장황하고도 혼란스러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광란의 칼춤”이라는 선동의 언어로 시작한 담화는 국헌문란, 중국인 간첩, 반국가적 패악 등의 키워드를 지나 선거 부정에서 정점을 찍었다. 마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였다. ‘대국민 담 와’라고 불린 이 기이한 말잔치를 들으며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뇌썩음(Brain rot),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2024년 올해의 단어로 꼽은 말이다.
‘뇌썩음’은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저품질의 콘텐츠 때문에 느끼는 피로나 무기력을 일컫는 유행어로, 질 낮고 하찮은 정보들이 삶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비판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당신이 20초짜리 숏폼을 하릴없이 넘기며 불면에 시달리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광고에 속아 쓸모없는 물건에 돈을 쓴 적이 있다면, 혹은 부정적인 뉴스가 이어지는 알고리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뇌썩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는 내란사태가 뇌썩음의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말로였음을 보여줬다.
뇌썩음의 불행한 결과 중 하나는 ‘대안적 사실’의 득세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었다. 이는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했고, 포스트-트루스 정치의 대표적 얼굴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안적 사실’이라는 말장난으로 지지자들을 미혹하던 때였다. 마침 한국에서는 ‘팩폭’(팩트폭력)이라는 말이 인터넷 세계의 만능키로 자리잡았는데, 사실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팩트라고 주장할 이야깃거리만 있으면 충분했다.
선거관리위원회처럼 공신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도 “이것이 우리의 사실”이라는 태도가 시민들의 판단 근거가 되는 세상은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어쩌다 우리의 뇌는 이처럼 무기력한 처지가 됐을까. 중독경제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자본은 24시간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상시적 인터넷 접속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소비자 유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두 가지 방법을 취했다. 주목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큰 자극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소비자의 시간과 관심을 최대치로 확장해 그 증가분을 디지털 라이프에 투여하게 하는 것. 그래서 중독을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도파민이야말로 우리를 플랫폼에 잡아둘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쉬운 방법인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중독을 통해 상품화하는 건 유저의 사고 및 행동의 변화다. 거짓말을 믿게 하고, 없던 필요를 만들어내며, 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를 부추기는 것. 이때 정치적 각성과 더불어서 ‘나의 정치적 믿음’을 충족시켜주고 이를 강화하는 확증편향이야말로 도파민 경제의 효과적인 전략임이 드러난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힘을 갖게 되는 건 중독경제의 필연적 경로다.
“2시간 만에 실패한 내란”의 근거가 극우 유튜버들이 지난 몇 년간 차곡차곡 건설해온 조잡한 세계관이란 건 충격적이지만 예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중심에 ‘극우가 아닌’ 김어준이 시작한 케이(K)값 논쟁, 즉 ‘선거 부정’이라는 플롯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 사실이 뇌가 썩은 사람들이 모여든 카를 슈미트적 정치의 장에서 치열한 세계관 싸움이 시작됐음을, 동시에 이 양당적 적대 관계가 상호 보완적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관 싸움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치가 세계관 싸움이 됐다는 건 정치가 대중문화이자 상품이 됐다는 의미다. 여기에선 팬덤만이 희망이다. 마블이나 하이브처럼 21세기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선도하는 콘텐츠 기업이 세계관 장사에 몰두하는 건 화수분처럼 돈을 퍼내는 팬덤 없이는 소비가 무한대로 확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정치의 힘이 팬덤으로부터 나온다는 건 비극이다. 그들은 비판적 지지자가 아니라 광기 어린 추종자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정치인에게 충성하기보다는 세계관에 충성한다. 윤석열은 그 세계관의 봐줄 만한 플레이어일 때까지만 추앙받을 터다.
세계관이란 ‘우리’들의 해석 안에서 완벽한 내적 논리를 갖춘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잘 짜인 음모론과도 쉽게 만난다. 사실 음모론에도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 음모론은 고통을 설명하는 로직인 것이다.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고통은 어떻게든 설명되어야 하는데, 그 고통을 설명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예컨대 중세에는 종교가 고통을 설명했다. 신의 뜻에서 이유를 찾는 신정론(神正論)이다. 근대로 넘어오게 되면 그 자리에 이데올로기론이 들어선다. 정치가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는 종교도 정치도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음모론이 힘없는 자들의 ‘무기’로 부상하게 된 맥락이자, 21세기 초 ‘무학의 통찰’을 말하던 김어준의 음모론이 열광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일 터다. ‘무학의 통찰’이야말로 반지성주의를 반권위주의로 포장하는 기막힌 언설이며, ‘나는 꼼수다’는 정치 언론(을 가장한 대중문화)의 세계관 장사를 대중화했다. 그리고 2025년, 우리는 탄핵 정국에서 종교와 정치가 손잡고 음모론에 기꺼이 기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윤석열에 이어 전광훈 등의 얼굴이 떠오르신다면, 정확한 연상 작용이다.
그렇다면 전환을 꿈꾸는 이들이 모색해야 할 것은 ‘저들의 무기’가 되지 않는 운동의 방법과 상상력이다. ‘무학의 통찰’에 기댄 음모론이 답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명백해 보인다. 그렇다, 고통이다. 음모론은 척박한 현실을 설명하고 싶지만 복잡한 것을 복잡한 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에 지친 자들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 팽창하는 음모론의 성격과 사적복수 및 사적제재 서사의 인기는 어쩌면 이 부분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사적복수는 2000년대 초부터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화두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경제적 재난이 닥쳐왔지만 믿을 만한 사회적 안전망은 사라졌고 대의는 물거품이 돼버렸다. 국가는 시장과의 경쟁에서 패배를 인정하며 무기력해졌거나 용산 참사와 같은 폭력으로서만 스스로를 드러냈다. 시스템이 붕괴했다는 불안이 한국 사회를 사로잡았다. “정치적 기획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공적 체계에 대한 믿음의 몰락을 반영”(김정선, ‘2000년대 전반기 한국영화의 사적 복수 재현양상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교착’)하면서 복수의 이야기가 부상한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등으로 이어졌던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은 그런 의미에서 시대정신의 처절한 반영이었다. 그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구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
조금 다른 복수의 이야기도 있었다. 2012년 드라마 ‘추적자’(SBS)에는 정의 구현의 방법으로 ‘투표 혁명’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노무현 정권을 지나 이명박 집권기였다. ‘좋은 투표’가 세상을 구하는 만큼 ‘나쁜 투표’가 세상을 망친다는 진보의 레토릭이 헤게모니를 붙들고 있었다. ‘추적자’는 겉으론 정의로워 보였지만 사실은 약탈적인 권력자에 불과했던 강력한 대권 주자의 비위가 폭로되고, 그를 낙선시키기 위해 시민들이 투표장으로 향하면서 대선 투표율이 91.4%를 찍는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제시한다. 그리고 최후의 모든 정의는 법정에서 구현된다. 공적 체계에 대한 믿음이 얼추 ‘팔리던’ 때였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완성된다. 안타깝게도 이 대의제의 태평성대(?)는 박근혜의 집권 및 법조 엘리트들의 ‘재판 거래’와 함께 대중의 머릿속에서 폭파돼버렸다.
대중 담론의 장에서 정치적 진보는 민주당을 뽑는 투표로만 설명되는 와중에 민주당은 무능과 내로남불 프레임에 갇혀버렸고, 모든 것은 사법화되는데 재판은 거래된다는 사실이 폭로된 땅, 그 토양 위에서 2010년대 후반의 자경단 서사가 등장했다. ‘경이로운 소문’(tvN) 같은 드라마에서 인간세계의 법을 넘어서는 초법적인 초능력자들이 사적복수를 대행해주고, 오로지 선량한 의지를 가진 독지가와 그의 돈만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매우 급작스럽고 간편하게 작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사기 캐릭터나 연출 요소)처럼 모든 개연성 위에 군림한다.
초법과 돈의 만남이 대중적 상상력을 사로잡은 때, 돈이면 뭐든지 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사이버레커의 등장이다. 스스로를 언론이자 자경단으로 포장하곤 하는 이들은 그러나, 그저 여성 및 소수자의 존엄과 권리를 착취하고 ‘안티 페미니즘’이나 ‘인종주의’ 같은 세계관 장사에 기대 단물을 빠는 사기꾼들일 뿐이다. 여기에 디지털 성범죄물-불법도박장-사채시장-마약으로 연결돼 있는 비공식 경제가 중독경제를 발판으로 성장하고 있다.
12·3 내란사태와 함께 전면화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체제 전환을 위한 천재일우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다. 개헌, 차별금지법 제정, 한국 정치의 질적 전화 등 다양한 논의들이 나온다.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고통을 제대로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중독경제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AI 기본법’의 등장이 더욱 염려된다.
우리는 특정 세계관에 젖어든 사람들, 그러니까 뇌가 썩은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혹은 적대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의 뇌는 과연 괜찮은가?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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