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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영남당’… 총선 져도 대선 이기면 그만?

민심보다 영남에 쏠린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서 편중된 권력구도 바꾸고 당 시스템 복원할 수 있을까
등록 2024-04-19 11:51 수정 2024-04-20 02:11
2024년 4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 당선자 총회에서 제22대 국회 당선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4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 당선자 총회에서 제22대 국회 당선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실무형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새 지도부를 선출할 전당대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전당대회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2024년 6월 말이나 7월 초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당대표 후보로는 안철수 의원과 나경원·김재섭 당선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표적인 비윤계(비윤석열계) 인사이면서 국민의힘의 험지인 수도권에서 당선됐다는 점이다. 이는 수도권에서의 연이은 패배로 ‘수포당’(수도권포기당), ‘영남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이라는 딱지가 붙은 당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수도권 당대표’ 떠오르는 이유

과거 총선 결과를 돌아보면, 국민의힘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중도층에게 외면받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8년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이른바 ‘뉴타운 열풍’을 발판으로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서 81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4년 뒤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서 43석으로 반토막이 난 이후 2016년 35석, 2020년 16석으로 더욱 쪼그라드는 흐름을 보인다. 이번 총선에선 수도권 19석으로 지난 총선보다 3석을 더 얻었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성적표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는 당내 주류나 지도부의 영남 편중 현상과 맞물려 있다. 2023년 10월 치른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에는 김기현 당대표(울산 남구을)를 비롯해 윤재옥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박대출 정책위의장(경남 진주시갑) 등 영남 출신들이 포진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당의 주류로 등장한 친윤계 의원들의 지역구 역시 주로 영남에 몰려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국민의힘은 영남 당원 비율이 높기 때문에 지도부가 되기 위해선 민심보다는 당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영남 지역 의원들의 경우에도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기 때문에 공천권을 가진 대통령이나 당대표를 향한 충성 경쟁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총선 패배 이후에도 영남과 수도권의 인식차는 상당하다. 대표적 친윤계 의원인 박수영 의원(부산 남구)은 총선 패배 뒤 페이스북에 “참패는 했지만 4년 전보다 의석은 5석이 늘었고 득표율 격차는 5.4%로 줄었다”고 평가하며 “뚜벅뚜벅 전략, 또는 가랑비 전략으로 3%만 가져오면 대선에 이긴다”고 썼다. 수도권 당선자를 중심으로 이번 총선 패배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검법’(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자는 주장 등 당의 노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대조된다. 대구가 지역구인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역시 4월16일 “선거 승리로 법안 내용의 독소조항이 해독되진 않는다”며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갈수록 영남으로 쏠리는 국민의힘

문제는 국민의힘의 영남 편중 현상이 갈수록 심화한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 결과 국민의힘 지역구 당선자 90명 가운데 영남권 비중은 65.7%(59명)다. 이는 지난 총선(61.5%)보다도 높아진 수치다. 영남에 편중된 당내 권력구도가 수도권 패배를 이끌고 수도권의 의석수가 줄어들수록 중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에 더욱 무뎌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선거 때마다 당에서 오랜 기간 정치력을 다져온 인물 대신 외부 인사를 긴급 수혈하는 행태도 당의 지속가능성을 방해하는 요소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윤석열 대통령부터가 정치 경험이 전무한 당 외부 인사였다. 이번 총선과 비슷한 수준의 참패를 불러온 2020년 제21대 총선을 진두지휘한 것도 검찰 출신의 황교안 전 대표였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당 밖에 있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간판으로 내거는 실수를 되풀이했다. 한 전 장관의 ‘원톱 리더십’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이라는 잘못된 전략을 통해 108석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국민의힘의 당내 시스템이 망가진 계기를 ‘진박 감별사’ 논란을 일으키며 당내 거물급 정치인을 밖으로 내친 박근혜 정부에서 찾았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쫓아내고 김무성 당대표와 갈등을 빚으면서 당의 자기 갱신 능력을 파괴시켰다”라며 “정당의 조직이 사회 변화에 적응하려면 인물을 재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박 전 대통령이 이러한 재생 능력을 망가뜨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인물 재생산 시스템을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치인을 배제하는 행태는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에도 반복됐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실정에 쓴소리를 내는 인물들을 ‘내부 총질’이나 ‘배신자’ 프레임을 이용해 밖으로 내몰았다. 국민의힘 대표로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축출하고, 당원 투표 70%, 국민 여론조사 30%였던 전당대회 규칙을 당원 투표 100%로 변경하며 유승민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원천봉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준석 대표의 쓴소리를 내부 총질이 아니라 건강한 긴장 관계로 승화시켰어야 한다”며 “이준석·유승민 같은 사람을 버린 결과가 총선 패배로 나타난 것”이라고 짚었다.

당 시스템 복원 시험대가 될 차기 전당대회

국민의힘의 차기 전당대회는 정당 조직과 시스템을 제대로 복원할 수 있는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가장 먼저 현재의 100% 당심 반영 규칙부터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험지인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된 김재섭 당선자는 4월15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지금은 당원 100%의 구조로 되어 있는 전당대회이기 때문에 ‘영남의 힘'이 굉장히 많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런 전당대회 룰도 어느 정도 시정할 필요가 있다”며 “민심 대 당심 (비율이) 최소 ‘5 대 5'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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