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우화 속 정신 나간 거인 같다. 자신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갈팡질팡한다. 대선 패배 뒤 돌아보고 따지며 성찰해야 할 귀한 시간을 검찰 수사권 씨름으로 다 보내버리고도 뭘 얻고 잃었는지 가늠을 못하는 기색이다. 급기야 ‘자기최면’ 상태에 빠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쟤들이 더 나쁘니 나는 막 나가도 된다는,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해주는 엄호 세력과 스피커가 있다는.
그 상태는 우선 안면몰수로 드러난다. 하반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던 2021년 7월의 난항 끝 합의를 많은 국민이 기억하는데, 이제 와서는 야당이 맡아야 한다고 우긴다. 그럼 왜 그땐 야당인 국민의힘에 안 줬나. 법사위가 상임위 위의 상임위로 군림하는 게 싫다면 먼저 기능과 권한을 바꿀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이런 순서와 과정은 별 의미가 없다. 당장 국민의힘과 새 정부를 엿 먹이는 게 더 중요하니까. 일이 되게는 못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심보인가.
불편하지도 않아 보인다. 안 하면 세상 큰일 날 것처럼 굴던 ‘검찰개혁’도 결과적으로 검찰 힘을 빼기는커녕 대통령령 개정 등으로 하던 일 계속하게, 더 힘내서 하게 치어리딩해준 꼴이 됐는데 자책이나 아쉬움도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똥볼’을 차는 바람에 기세를 빼앗기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제대로 비판과 견제를 하려는 태세가 그 뒤로도 보이지 않는다. 공직사회 인사를 온통 검찰 출신이 틀어쥐려는 판인데 고작 찍소리만 내고 있다. 급기야 지방선거 지지율이 하락을 거듭해도 “이기든 지든 크게 상관없다”(정봉주)거나 “사과로는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김용민)는 ‘자아도취’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민주당은 해도 해도 정치를 너무 못한다. 집권해본 세력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과 자존심도 없는 것 같다. 다른 시각과 목소리는 조금도 허용하지 못한 채 맥없이 무말랭이처럼 오그라들고 있다. 국민 눈치를 보지 않고 강성 지지층 눈치만 보는 탓이다. 오죽하면 귀하게 들인 ‘업둥이’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의 “맹목적인 지지에 갇히지 않겠다” “내로남불의 오명을 벗겠다”는 입바른 소리에까지 선을 긋다 못해 삿대질할까.
민주당 전통 지지자들은 그런 탓에 이중 삼중으로 괴롭다. ‘눈 딱 감고’ ‘요번까지만’이라는 ‘영끌’은 지난 대선으로 끝난 듯하다. 6·1 지방선거에서 쫄딱 망하는 게 나을까 덜 망하는 게 나을까를 고민하는 이가 많다. 한결같이 당을 받쳐온 ‘늙은 당원’이 주변에 있거나 본인이 그런 오랜 지지자라면 그 고민은 더 깊다. 번민의 밤을 새우며 이재명을 찍었으나 대선 이후 반성과 쇄신은커녕 강성 지지층의 버블에 갇혀 딴 세상을 사는 듯한 모습을 보며 끝내 돌아서버린 이도 적지 않다. 이런 이들은 ‘사별의 고통’까지 호소하는데, 정작 당내 인사들은 위기감이 없다.
왜 그럴까. 지난 대선 득표를 민주당과 이재명이 좋아서 지지한 표로 오해하는 것 같다. 상당수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반대표이다. 근소한 표차로 진 이재명을 ‘최대 자산’이라고 여기기 전에 이재명이 아니었다면 이기지 않았을까 하는 반문은 해봤는지 궁금하다. 대장동과 ‘법카’ 논란을 거치며 적잖은 중도층에게 이재명은 민주당의 ‘위험자산’으로 분류됐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자숙의 시간을 갖지 못한 이재명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선거판에 나와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양심의 아들)의 엄호 속에서 자기최면과 자아도취를 반복하고 있다. 이들의 맹목적인 지지를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자화자찬한다. 팬덤의 추앙을 대중의 지지로 착각한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정치는 둘 중 한 곳으로 가던데 이를 어쩌나. 종교의 길이나 망하는 길.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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