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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생님

김대중 전 대통령 곁을 16년 동안 지킨 장옥추 국장이 꼼꼼한 메모광, 너그러운 선생님을 추억하다
등록 2010-08-27 15:30 수정 2020-05-03 04:26
<font color="#006699">마지막 순간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 곁을 지킨 사람이 있다. 김대중평화센터의 장옥추(38) 공보기획국장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3년 7월8일부터 시작됐다. 19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영국으로 건너갔던 김 전 대통령이 귀국한 직후였다. 그때만 해도 그가 “대통령이 될 줄 몰랐던” 장 국장은 이후 2009년 8월18일 서거 때까지, 영욕의 16년1개월을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장 국장을 특히 아꼈다. 2009년 7월9일, 죽음을 직감한 듯 그는 김택근 논설위원과 장 국장에게 각각 자서전 편집위원과 편집위원보를 맡겼다. 두 사람에게 자신의 일생을 기록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년 전 세상을 떴지만 장 국장의 기억은 수시로 그와 재회했다. “자서전을 끝낼 즈음 꿈속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중국에 갔던 클린턴이 중국 정치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비행기를 못 탄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일이 다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시면서 자리를 뜨셨어요. 생전 좋아했던 클린턴과의 만남이 무산돼 아쉬울 법한데 다음 장면에서는 섭섭함을 털어버리고 여사님과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대통령께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저 역시 마음의 짐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을 추억하던 장 국장의 눈가는 자주 젖었다. 8월17일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난 그가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한 기둥이 됐던” 김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다. _편집자</font>
김대중평화센터의 장옥추 공보기획국장이 8월17일 김 전 대통령에 관한 오랜 추억을 풀어놓았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김대중평화센터의 장옥추 공보기획국장이 8월17일 김 전 대통령에 관한 오랜 추억을 풀어놓았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김 전 대통령이 언제 가장 떠오릅니까.

자서전에 매달리느라 옛날 자료를 많이 봤어요. 영상만 봐도 슬프죠. 여기저기 자료가 많았거든요. 타이핑 작업을 모두 제가 맡았는데, 수첩도 많이 참고가 됐습니다. 그런 데에도 메모 형식의 일기가 많았어요.

기억에 남는 습관이 있나요.

항상 메모하셨습니다. 퇴임하신 뒤 도서관 전시실을 꾸밀 때 자료를 정리했는데, 일정을 기록한 수첩 46권이 나왔어요. 1년에 두 권씩 사는데 상반기와 하반기를 나누고, 앞부분에는 일정, 뒷부분에는 각종 경제 수치와 단상, 계획, 전략 등을 썼어요. 글씨는 좀 클지라도 필체가 정갈했습니다. 정리·정돈을 정말 잘하셨습니다.

어느 정도였나요.

어떤 규칙이 있는 것 같던데요, 일정이 취소되면 펜으로 긋지 않고 꼭 액상 화이트(수정액)로 지웠습니다. 1996~97년의 일정은 어마어마했거든요. 특히 1997년 수첩은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습니다. 각계 인사를 10분 단위로 만났으니 (대선에서) 당선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이트가 테이프 형태로 나오니까 너무 좋아하셨어요. 양지수첩과 화이트, 포스트잇 아주 작은 사이즈(색인용), 그리고 아주 가는 볼펜과 만년필 등 문구류를 워낙 좋아하셔서 지인이나 비서들이 수첩을 여러 종류 사다드리면 꼼꼼히 보고 선택하셨습니다.

어떤 선물을 가장 좋아했습니까.

작고 소박한 걸 좋아하셨어요. 영국에서 로빈 모형 선물을 받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사저에도 유리로 만든 인형, 새나 천사 조각상 등이 있는데 그런 작은 것들에 감탄하셨어요. 박제나 분재는 싫어하셨어요. 경기 일산 사저 시절 꽃사슴 박제가 하나 있었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드셨던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옮겨) 화단 옆에 두셨어요. 사슴이 자연 속에서 뛰노는 것 같지 않냐 하시며 그제야 좋아하시더라고요.

김 전 대통령이 가장 기뻐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평양에서 2000년 6·15 선언문에 합의한 뒤 매우 기뻐하셨어요. 가기 직전 합의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2박3일간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가 나와 더 극적이었습니다. 술을 잘 못하시는데도 와인을 드시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들어오셨어요. ‘너무 잘됐다, 잘됐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어땠습니까.

초반 개표 상황이 별로 안 좋았잖아요. 마지막까지 혹시 보이지 않는 표가 있어서 반전되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어서 밤을 새우다시피 지켜보다 보니 진이 다 빠지셨어요. 당선 직후 곧바로 참모들이 오셨는데, 생각이 복잡해 보였습니다. 기쁨과 슬픔의 스펙트럼이 별로 크지 않은 분이었거든요. 환호하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여러 번 물망에 올랐던 노벨평화상을 받으신 뒤에는 여사님과 함께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대식가이셨다죠.

대식가라 하면 억울하다, 하셨습니다. 양이 많아야 대식가인데, 골고루 잘 드시는 편이었지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거든요. 간식은 자주 드시는 편이어서 붕어빵 등 단팥 제품, 특히 ‘비비빅’을 좋아했습니다. 저도 비비빅을 좋아하게 됐어요. 저희가 여름에 이것저것 골고루 드시라고 하는데,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본인이 대식가로 알려질까봐 싫어하셨습니다. 영국에서 귀국하신 뒤 정계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몇 년간 체중이 많이 불었습니다. 이희호 여사께서도 계속 이야기하시니까 스스로 신문을 보고 조절해야 할 내용, 건강 수칙을 수첩에 적어놓고 한 번씩 보셨는데, 일하시다 보면 지키기가 쉽지 않잖아요. 한동안 치킨을 정말 좋아하셨는데, 물리지도 않는지 점심 치킨, 저녁 치킨, ○○○ 닭날개를 좋아하셨어요. 너무 맛있으신지 하나씩 나눠주면서 ‘아까운 건데, 정말 맛있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1995년 무렵 한창 에너지를 쏟을 때라 고열량 식품을 찾으셨던 것 같습니다.

건강법이 있었습니까.

채소 위주의 식사와 적당한 수면, 그리고 몇 분간의 맨손체조 등이었습니다. 일산 시절에는 새벽 6시쯤 여사님과 같이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가시곤 했어요. 맨손체조, 얼굴 경락체조와 함께 그렇게 건강관리를 좀 하셨습니다. 청와대에 가니 운동하실 시간이 별로 없으셨죠.

힘들어했던 적도 있겠죠.

재임 기간 아들 문제가 나왔을 때였죠. 역정을 내는 일이 전혀 없으시니 오히려 주변에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차라리 폭발하면 좀 후련하실 텐데 대통령은 그냥 눈 감은 채 침묵하며 듣고 있었습니다. 식사도 잘 못하셨고 너무 괴로우실 때는 뉴스도 피하셨어요. 자서전 집필 과정에서 다시 확인한 내용인데, 터무니없이 용공으로 매도하거나 진의를 왜곡한 악의적 뉴스가 정말 많았거든요. 그때그때 강하게 항변도 하고 그러시면 좋은데 그런 모습이 정말 없으셨습니다.

퇴임 이후에는 어땠습니까.

퇴임하시고 나서 몸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아들들 문제 때문에 국민을 볼 낯이 없지만 그래도 국정 수행은 끝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거라 하시며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임기 말엔 건강을 돌보셔야 했는데, 계속 참으신 채 끝까지 마무리를 하셨어요. 퇴임식 날도 매우 안 좋으셨고요. 겨우겨우 퇴임식에는 참석하셨지만 며칠 뒤 곧바로 투석을 하셨습니다. 이희호 여사께서 옆에서 많이 기도하고 위로하셨어요.

측근들에게는 어떤 대통령이었습니까.

주변 사람에게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으셨어요. 업무적으로 야단도 들었지만 행여 혼내신 뒤에는 치킨 하나 더 준다든지 하며 많이 미안해하셨습니다. 또 야단을 할 때도 절대로 다른 사람 있는 데서는 하지 않으셨어요. 야단칠 때도 ‘장점은 이러이러한데, 이 부분은 좀 미흡하지 않냐’ 이런 식이었습니다. 비서들도 참 좋아해서 가족이나 동지처럼 생각하셨습니다. 세배하면 꼭 1만원씩 세뱃돈을 다 주셨고요.

서거 직전 대통령의 심경은 어땠나요.

참여정부 때는 대북송금 특검 때문에 서운해하셨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의 대의를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얻었는데, (특검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래도 대북송금 특검을 빼면 다른 아쉬운 부분은 소소하다 할 수 있을 텐데, MB 정부 몇 년은 상상 초월이었습니다. 일기에도 그런 분노가 많았습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어요. 당신이 힘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다시며 기도하면서 오열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다리가 아파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하시면서도 온 힘을 다해 그러셨다고 생각합니다. 해주신 마지막 말씀, 행동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거다, 그 말씀 그대로 대통령은 정말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셨습니다.

김의겸 선임기자 한겨레 정치부문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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