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동력’이 다시금 스멀스멀 시동을 건다. 벌써 8개월 전 얘기다. 이번에도 발명가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1500W짜리 AC모터와 발전기로 20W 전구 140개를 밝히는 장면을 시연했다. 입력값 1500W에 출력값이 2800W이니 에너지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높고, 따라서 한 번 작동하면 영구히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다. “향후 10년 동안 1경5천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숫자놀음일 뿐이다. 무한동력은 현대 물리학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수많은 시도에도 무한동력 기관은 아직까지 한 번도 완성된 적 없다.
물론, 오늘은 이 무한동력 기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말하려는 게다. 허황된 시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무모함을 성취로 탈바꿈시켰다. 도전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불가능을 정복하며 우리는 진보해오지 않았던가.
이를테면 슈리 내어(Shree K. Nayar) 교수도 그렇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다. 같은 대학 컴퓨터비전연구소 책임자도 맡고 있다. 그와 연구팀은 지난 4월15일, ‘세계 최초’의 제품을 내놓았다. 외부 전원 공급 없이도 스스로 전력을 생산·충전하고 사진을 찍으며 평생 동작하는 디지털카메라다. ‘셀프 충전 디카(사진)’인 셈이다.
대개 카메라 해상도는 ‘1200만 화소’ ‘8메가픽셀’ 식으로 표현한다. ‘화소’(pixel)는 이미지 센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8메가픽셀은 800만 화소를 뜻한다. 이 화소의 핵심 장치는 ‘광다이오드’다. 광다이오드는 빛을 받으면 전류를 발생시킨다. 이 전류에 따라 각 화소는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측정한다.
그런데 광다이오드는 태양광 패널에도 들어간다. 태양광 패널은 똑같이 빛을 받아들이지만, 입사광을 전력으로 변환시킨다. 같은 광다이오드지만, 쓰임새가 다른 것이다. 디지털카메라에선 밝기를 측정하고, 태양광 패널에선 전력을 생산한다. 광다이오드를 디지털카메라는 ‘광전도 모드’로 쓰고, 태양광 패널은 ‘광전지 모드’로 쓴다.
두 모드를 함께 쓰면 사진도 찍고 전력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슈리 내어 교수는 여기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시제품 카메라를 만들었다. 시중에서 쓰는 화소를 이용해 30×40픽셀짜리 이미징 센서를 만들어 붙이고, 카메라 본체는 3D 프린터로 찍어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였다. 연구팀은 이미징 센서를 사진 찍기 모드와 전원 공급 모드를 번갈아 오가도록 설계했다. 이미징 센서는 처음엔 사진을 찍고, 그다음 곧바로 빛을 전력으로 바꿔 배터리를 충전한다. 카메라가 작동하는 동안은 이 두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 내어 교수는 이런 식으로 전원 공급 없이 카메라가 스스로 동작하며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무한동력 디카’에 한 발짝 다가서는 순간이다.
내어 교수는 사진을 찍지 않을 땐 카메라를 다른 휴대기기의 전원 공급 장치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부품 대신 새로운 이미징 칩에 디자인을 적용하면 활용 범위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무한동력 카메라’가 현실화된다면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당장 외부 전원 공급이 만만찮은 환경에서 두루 쓰일 수 있다. 환경감시용으로 들판에 설치하거나, 야생동물 몸에 부착해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데 쓰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축배를 터뜨리긴 섣부르다. 내어 교수가 실험에 쓴 이미지 센서는 1200픽셀, 즉 0.0012메가픽셀이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만 해도 해상도가 10메가픽셀을 훌쩍 넘는다. 이번 연구 결과를 시제품 수준을 넘어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는 고해상도 이미지 센서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과거에도 비슷한 시도는 몇 차례 있었지만, 아직까지 상용화 수준으로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 특허청에 ‘이미지 센서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모바일 기기’에 관한 특허(US7936394)가 출원된 건 이미 2008년 얘기다. 연구 진행 단계를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슈리 내어 교수팀은 연구 결과를 4월24~26일 휴스턴 라이스대학에서 열리는 ‘국제 컴퓨테이셔널 포토그래피 콘퍼런스’에서 발표한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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