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로버츠가 개발한 난민촌 미숙아를 위한 인큐베이터. 제대로 된 기능을 갖췄고 이동성까지 겸비했다. 제작비는 250파운드(약 44만원)에 불과하다. 2014 제임스다이슨어워드 동영상 갈무리
갓 태어난 아이가 가장 먼저 만나는 세상은 무엇일까. 엄마? 그보다 먼저 아이는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에 안긴다. ‘인큐베이터’다. 인큐베이터는 삶과 죽음이 나뉘는 첫 갈림길이다. 그 선택의 기회를 경제나 환경상의 이유로 태어나면서부터 박탈당한다면 너무 매정한 일 아닌가.
제임스 로버츠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시리아 난민 얘기를 다룬 영국 방송
로버츠는 직접 아이들을 돕기로 했다. 마침 그는 영국 러프버러대학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다. 로버츠는 우선 인큐베이터에 눈을 돌렸다. 그는 왜 난민캠프에서 태어난 미숙아들이 하릴없이 목숨을 잃는지 곧 알게 됐다. 요즘 쓰는 현대식 인큐베이터는 너무 비쌌다. 하나 만드는 데 영국돈 3만파운드가 들었다. 우리돈 5200만원에 이르는 큰돈이다. 게다가 인큐베이터는 크고 무거웠다. 난민촌이나 제3세계 저개발 지역까지 운반하기엔 부담스러웠다.
답은 자연스레 나왔다. 값싸고, 운반하기 쉬우면서, 기존 인큐베이터 기능을 오롯이 담은 물건을 만들면 되잖은가. 인큐베이터는 신생아에게 맞는 온도와 습도를 제공하면 된다. 신생아가 흔히 앓는 황달용 광선치료기까지 달면 금상첨화다. 난민캠프처럼 비좁고 복잡한 공간에서도 불편함 없이 쓰도록 본체를 만드는 것도 숙제였다. 아이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하지만 말처럼 쉬울까. 로버츠는 처음엔 시제품 2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기존 인큐베이터처럼 투명 플라스틱으로 제작하고, 전자장치를 덧붙였다. 다른 하나는 디자인과 기능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소재로 제작했다. 전자장치를 단 플라스틱 시제품은 원래 생각했던 인큐베이터 기능을 제대로 구현했다.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은 신생아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로버츠는 두 시제품의 장점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벼렸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새로운 인큐베이터가 태어났다. ‘맘’(MOM)이다.
맘은 인큐베이터다. 그런데 겉모습이 남다르다. 흔히 보는 인큐베이터는 투명 플라스틱 소재로 본체를 만든다. 맘 본체는 독특하다. 바람을 넣어 부풀렸다 수축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물놀이장에서 갖고 노는 튜브 같다. 까닭이 있다. 제작 비용을 줄이고, 손쉽게 운반하기 위해서다. 맘을 쓰지 않을 땐 바람을 빼고 양쪽을 접어 오므려 지퍼를 닫으면 가방처럼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다. 사용할 땐 반대로 지퍼를 열고 펼치기만 하면 된다.
덕분에 제작비는 획기적으로 줄고 운반은 편리해졌다. 맘은 제작비와 운반비를 모두 합쳐도 250파운드(약 44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성능은 기존 인큐베이터와 똑같다. 항온·항습 시설에 황달용 광선치료기까지 모두 갖췄다. 앞면은 투명 튜브 소재로 만들어 아이 상태를 확인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했다.
장점은 또 있다. 튜브 소재는 청소나 살균도 쉽고 인체에도 무해하다. 로버츠는 인큐베이터에서 발생하는 열에도 튜브 소재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실험 결과를 말했다. 주요 부품은 레고 블록처럼 손쉽게 조립·분해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러니 고장이 나도 해당 부품만 빼서 고치거나 교체하면 된다. 맘은 전력소비량도 적다. 정전이 돼도 자동차 배터리 하나면 24시간 이상 너끈히 구동한다.
맘은 올해 11월 제임스다이슨재단이 주최한 ‘2014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았다. 제임스다이슨재단은 가전기업 다이슨의 창업자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다이슨이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과학과 공학, 기술에 관심 많은 교사와 학생들을 후원한다. 제임스 다이슨은 “서방세계는 비효율적인 인큐베이터 디자인이 저개발국이나 재해 지역에서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라며 “제임스 로버츠는 이러한 관습에 용감하게 도전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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