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카메라 앞에서 눈꺼풀만 내려주세요

빈혈 진단 앱 ‘아이내미아’로 ‘2014 이매진컵’ 우승한 두 오스트레일리아 의대생,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다”며 각별한 애정
등록 2014-10-09 06:52 수정 2020-05-02 19:27
이매진컵 행사가 마무리된 지난 9월 초, 빌 게이츠(맨 오른쪽)는 올해 이매진컵 우승팀 학생 2명을 집으로 초대해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해주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이매진컵 행사가 마무리된 지난 9월 초, 빌 게이츠(맨 오른쪽)는 올해 이매진컵 우승팀 학생 2명을 집으로 초대해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해주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이매진컵’은 전세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최하는 정보기술(IT) 경진대회다. 나라별로 예선을 거쳐 올라온 팀들이 7∼8월께 한데 모여 우승컵을 놓고 실력을 겨룬다. 구호도 거창하다. ‘지구촌 난제를 해결하라.’ 전세계 대학생들은 이 임무에 맞춰 자신 있는 부문을 골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이매진컵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 시작됐다. 2003년 첫 대회가 열렸으니, 올해로 벌써 12년째다. 대회 이름처럼,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아이디어를 겨루는 경진대회로 출발했다. 그러다 2009년 유엔과 손잡으며 지구촌 난제를 제 손으로 해결하는 ‘실천적’ 행사로 발돋움했다.

대회에서 구현된 아이디어와 제품은 모두 학생 소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 권리도, 이윤도 챙기지 않는다. 목적은 하나다. 학생들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자신이 가진 기술을 쓰도록 돕고, 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매진컵을 가리켜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전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사’라고 말한다.

2012년, 10주년을 맞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십 대회를 직접 참관했더랬다. 당시 관심사는 빌 게이츠 창업자의 참석 여부였다. 하지만 게이츠는 아쉽게도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대신했다.

빌 게이츠는 올해도 행사장엔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예년과는 좀 달랐다. 행사가 마무리된 지난 9월 초, 게이츠는 미국 시애틀을 방문한 올해 우승팀 학생 2명을 직접 집으로 초대했다. 9월29일에는 이 청년들을 만난 얘기를 개인 블로그 ‘게이츠노트’에 소상히 소개했다. 이 학생들에 대한 게이츠의 관심은 확실히 남달랐다.

두 청년은 제니퍼 탕과 재럴 셰아다. 22살 동갑내기로, 오스트레일리아 모내시대학 의대생으로 재학 중이다. 이들은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 ‘아이내미아’(Eyenaemia)로 ‘2014 이매진컵 월드 챔피언십’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들이 주목한 건 ‘빈혈’이다. 전세계 빈혈 환자는 20억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억9천만 명 정도는 어린이 환자다. 빈혈은 무리한 다이어트로 철분이 부족한 여성이나 임신부에게 쉽사리 찾아오는 질병이다. 하지만 검진 과정은 간단치 않다. 피를 뽑아 실험실 검사를 거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 그 전에 의사들은 대개 눈꺼풀을 내리고 동공이 창백하지 않은지 살펴본다. 저개발국가나 오지 주민들은 이 간단한 검진조차 받기 만만찮았다.

아이내미아는 의사의 진단 과정을 스마트폰 앱으로 대체했다. 진단 방법이 기발하다. 손가락으로 아래쪽 눈꺼풀을 살짝 내리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눈을 찍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스마트폰 앱이 알아서 안구 색깔을 판별해 빈혈 여부를 알려준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고, 인체에도 무해하다. 검진을 위해 살균 과정을 거치는 번거로움도 없다. 의사처럼 훈련받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자가진단을 할 수 있으니 간편하기까지 하다.

빌 게이츠는 두 오스트레일리아 청년과 아이내미아를 소개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이들이 저개발국 주민의 삶을 실제 개선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누구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두 청년이 몸소 실천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충고도 잊지 않았다. 아이내미아는 갓 걸음마를 뗀 프로젝트다. 높은 오진율을 끌어내리는 게 무엇보다 급한 숙제다. 오랜 기간 켜켜이 쌓인 의학계의 연구 성과를 따라가기엔 아이내미아는 아직 갓난아기 수준이다.

빌 게이츠는 이들과 오랜 시간 아이내미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하라고 두 청년에게 조언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할 때 우리는 고객에게 배우고 제품을 개선하는 데 미친 듯이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제니퍼와 재럴의 노력은 특히 막 새 출발을 한 젊은이들에게 이 점을 다시 일깨워주는군요. 혁신은 위대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절대 아이디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요.”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