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병원 식당 등 서민 밥상에 오를 미국산 쇠고기…검역 주권 포기하고 나이 표시마저 양보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이명박 대통령은 “질 좋은 (미국산) 고기를 들여오면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에 도움이 된다.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뒤,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과연 그럴까? 물론 부유층이라면 먹고 싶지 않으면 사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서민들은 먹고 싶지 않더라도 먹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노동자, 병원 환자들이 미국 수입 쇠고기의 1차 타깃이 된다.
프리온,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나
서울 강북의 한 중학교. 이곳 학생들은 한 끼 급식비로 2500원을 낸다. 교육청에서 보조금이 일부 나온다. 하지만 한 끼 식사에 들어가는 식재료비는 1200원에 그친다. 나머지는 위탁급식 업체의 인건비와 이윤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급식 메뉴로 불고기와 쇠고깃국, 우거지탕을 각각 올린다. 여기에 들어가는 쇠고기는 모두 오스트레일리아산이다. 우거지탕은 수입 고기를 뼈째로 고아 국물을 만든다. 고기는 등급이 낮은 것을 쓴다. 수입 쇠고기는 1kg당 7천원이다. 돼지고기 1kg은 4천원이다. 1kg당 3만원이 넘는 한우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 학교 급식 담당자는 “미국산 쇠고기가 오스트레일리아산보다 싸게 들어온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그걸 쓸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병원의 환자 급식과 회사의 직원식당, 대학교 내 학생식당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의 한 정형외과 병원. 이 곳에선 교통사고 등으로 골절상을 입은 환자 80여명이 입원해 있다. 이 곳 역시 급식용으로 수입 쇠고기를 쓴다. 환자들은 병원 급식 담당자에게 뼈를 고아서 만든 곰탕이나 설렁탕, 우거짓국을 많이 달라고 한다. 뼈를 고은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부러진 뼈가 빨리 나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곳의 급식 담당자도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가락시장에서 호주산 수입 쇠고기를 사 오는데, 미국산이 싸다면 그걸 사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픈 데 나으라고 고기요리를 해주는데 오히려 (광우)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빗장이 완전히 풀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 정상회담을 앞둔 4월18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했다. 2003년 12월 광우병 사태로 수입이 금지된 지 4년5개월 만이다. 시민들은 LA갈비는 물론 미국산 곰탕, 곱창까지 먹게 됐다.
몇 개월 전까지 살코기에서 뼛조각 하나만 발견돼도 미국으로 돌려보내던 정부가 뼈를 통째로 수입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국민에게 설명이나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부의 전격 발표에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송기호 통상 전문 변호사(조선대 법대 겸임교수)는 “올 2월 보건복지부가 낸 ‘인간광우병 관리 지침’ 2차 개정판에선 감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의 뇌와 척수를 먹지 말라고 했다.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을 규제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자신들이 주장한 것과 180도 다른 방향으로 수입 쇠고기 정책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담당자들은 오히려 안이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은 4월22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서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에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99.9% 안전하다. 마치 독을 제거한 복어를 우리가 아무런 걱정 없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광우병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주요 관리 대상으로 삼는 사람·동물 공통 전염병 중 하나다. 복어 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하다. 광우병의 원인 물질은 ‘프리온’(prion)이란 단백질 입자다. 프리온이란 말은 ‘단백질’(protein)과 바이러스의 최소 단위인 ‘비리온’(virion)에서 따왔다.
끓여먹고 고아먹는 우리 식문화
프리온은 단백질 형태여서 익혀도 파괴되지 않고, 약간만 소비해도 몸에 전이된다. 일단 전이되면 잠복 기간이 10년에서 20년에 이른다. 프리온이 정상 세포의 변형을 일으키기 전까지 감염 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뇌·척수 등 SRM에서 프리온이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살코기와 소변, 혈액 등에서도 발견됐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프리온에 서민들의 식탁은 노출돼 있다. 부유층이 주로 찾는 백화점에선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팔지 않는다. 한우만 판다. 백화점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당분간 팔지 않겠다고 했다. 신세계 홍보실의 한 과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매장에서 팔았으나, 2003년 미국 광우병이 문제가 된 뒤부터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민들이 즐겨 찾는 대형 할인마트에선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판다.
고급 음식점이 아니라면 식당 음식에도 수입 쇠고기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전통적인 식습관은 고기를 직접 먹는 것이 아니라 끓여서 먹는 방식이다. 적은 양으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거나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양지머리나 아롱사태로 국을 끓일 때도 고기를 오랫동안 푹 고아서 국물을 낸다. 그래서 식당 메뉴의 대부분에는 쇠고기가 들어간다. 부대찌개, 사골곰탕, 우거지곰탕, 쇠고기국밥, 쇠고기볶음, 설렁탕, 우족탕, 순댓국, 우거지갈비탕, 도가니탕, 해장국, 갈비탕, 냉면, 뚝배기불고기, 너비아니 등 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할 정도다.
뿐만 아니다. 햄버거를 비롯한 모든 패스트푸드, 대기업에서 만드는 조미료, 간식으로 먹는 죽, 라면 스프에도 쇠고기가 들어간다. 쇠고기에서 추출한 젤라틴은 알약 캡슐에도 들어간다.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 소머리국밥에서, 또는 쇠고기를 잘게 썰어 만든 햄버거에서도 프리온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4월21일 미국산 수입 쇠고기 대책을 내놓았다. 지금까지는 300㎡(약 90평) 이상 대형음식점 구이용 쇠고기에만 원산지 표시 의무를 적용했다. 6월22일부터는 100㎡(약 30평) 이상 일반음식점에서도 구이용 쇠고기뿐만 아니라 갈비탕·튀김·찜·육회용 쇠고기도 원산지를 밝히도록 했다. 또 원산지 표시 단속 권한도 농산물품질관리원이 갖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다 적발된 유통업체는 390여 곳이었다. 해마다 10%씩 증가하는 추세다. 또 여전히 단속 대상에서 빠지는 규모 100㎡ 미만 음식점은 전체 음식점의 절반이 넘는 55%에 이른다.
김성훈 상지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은 과 한 통화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익이 중요하다. 따라서 국민건강은 개인사업주나 가공업체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질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쇠고기 협상은 너무나 무책임하게 결론 났다. 우리나라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대통령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벌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국장도 “닭이나 오리를 충분히 끓여 먹는다면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릴 위험은 없다. 그런데 왜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 닭고기를 수입하지 않을까. 자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국민건강은 국가가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들은 ‘미국 사람도 먹고, 재미동포도 먹는데 우리는 왜 못 먹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해 김성훈 총장은 “미국 사람들이 먹는 쇠고기의 97%는 20개월 미만 소의 고기다. 또 뼈까지 고아 국물을 먹는 음식문화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닭·돼지고기 값도 떨어뜨릴 것
세계적으로 광우병은 대부분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발견됐다. 그래서 그동안 30개월 미만 소의 고기만 수입했으나 이번에 나이 제한이 철폐되면서 앞으로는 30개월 이상 자란 소의 고기도 수입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우리에게 제출하게 돼 있는 수출검역증명서에 소의 나이를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점 역시 문제다. OIE는 30개월 이상의 소에선 뇌·두개골·척수·눈·등뼈 등 7가지를 빼고 수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30개월 이하면 편도와 소장 끝만 빼면 된다. 우리 쪽은 협상 기간에 계속 나이 표시를 요구했으나, 미국이 거부했다. 단, SRM의 하나인 등뼈가 들어가는 ‘T-본’ 스테이크만, 그것도 180일 동안만 ‘30개월 미만’이라는 나이를 표시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쳤다. 나머지 SRM의 경우 미국이 나이에 맞춰 제대로 제거해주기를 믿는 수밖에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즉각 수입이나 검역을 중단할 수 없게 됐다. 현재는 미국 검역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정부가 자체 판단에 따라 수입을 전면 금지할 수 있다. 하지만 타결된 위생 조건에선 미국이 자체 역학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우리 정부에 통보하기만 하면 된다.
이 때문에 정부의 쇠고기 협상은 국민건강권과 검역주권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동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활동가는 “애초 정부는 마지노선으로 나이 표시만은 지키려 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굴욕적인 협상이었다. 정부가 한-미 FTA 타결과 국민건강권을 맞바꾼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입 쇠고기는 대체재인 돼지고기와 닭고기 값도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뼈 있는 쇠고기가 들어오면 돼지고기 값은 13~20%까지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지 소값도 폭락하고 있다. 농민들이 소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소를 팔려고만 하지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 3당은 4월23일 국회 차원의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야 3당의 청문회 추진은 “정치 공세”라며 TV 공개토론을 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쇠고기 협상은 이미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쪽과 합의해 개방을 약속한 사안”이라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국민들은 ‘러시안 룰렛’처럼 언제 어디에서 ‘프리온’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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