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안병수의 바르게 먹자 칼럼 목록 > 내용   2008년04월29일 제708호
내 입에도 ‘미국산 소’ 들어올까

정부가 광우병 쇠고기를 들여온다니 한우와의 구별법이라도 익혀둡시다

▣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질 좋은 쇠고기를 들여오는 것.”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뒤 언론들이 내건 기사 제목이다.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 모양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질이 좋다고? 질에 대한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폐가 있는 발언임이 틀림없다. 기사 말미에 ‘값싼 고기’라는 언급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쇠고기 협상 카트’가 지나간 캠프 데이비드 현장에는 자욱한 먼지와 함께 두 가지 명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 보듯 뻔한 국내 축산농가의 피해가 그 하나고, 베일에 가려진 광우병에 대한 불안이 다른 하나다. 일반 소비자의 뒷덜미를 잡는 것은 단연 후자인 광우병일 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광우병 문제를 좀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자. ‘프리온’(prion)이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은 좀 특이하다. 유전자 없이도 증식을 할 수 있다. 정상적인 형태일 때는 문제가 없으나 어떤 이유로 분자구조가 미세하게 바뀌게 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분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수백 도의 높은 온도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주변의 정상 프리온들까지 물들여버린다는 사실. 똑같은 변형 프리온으로 바꿔버린다.

이 변형 프리온이 소의 몸 안으로 들어간 경우를 생각해보자. 결코 대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주변에 같은 형태의 변형 프리온들을 늘려나갈 것이다. 이 현상은 뇌세포에 치명적이다. 정교한 기계에 난데없이 구멍을 숭숭 뚫어놓는 꼴이 된다. 그 구멍들은 점점 커질 것이다. 뇌 기능을 마비시킬 것이고 결국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이것이 광우병이다. 이 불행의 메커니즘은 인체에서도 그대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저주받은 물질, 즉 변형 프리온이 체내 특정 부위에만 분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설령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라 해도 그 부위만 먹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아홉 군데를 위험 부위로 명시하고 있다. 뇌(64.1%), 척수(25.6%), 척주(3.8%), 회장(3.3%), 삼차신경(2.6%), 비장(0.3%), 눈(0.04%), 편도와 골수(소량) 등. 주요 식용 부위인 근육과 지방은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현대과학이 이 광우병을 아직 잘 모른다는 사실. 살코기에서도 변형 프리온이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식품저널리스트 군지 가즈오의 경고를 들어보자.

“소를 도축해 해체하는 과정에서도 주의해야 합니다. 등뼈의 수액(髓液)이 튈 수 있거든요. 살코기가 오염된다는 이야기죠. 유럽에서는 등뼈를 잘라내기 전에 흡입관을 이용해 먼저 뼈 내부의 수액을 빼내죠. 일본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엉망이에요. 무조건 등뼈부터 잘라내거든요. 수액이 튀었다 싶으면 물에 헹구는데, 글쎄요. 그런 식으로 씻어질까요?”

‘사전예방 원칙’이란 것이 있다.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으면 인과관계가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더라도 미리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원칙대로라면 미국산 쇠고기는 결코 먹지 말아야 한다. 위험 부위가 아니라도 말이다.

이제 공은 소비자 쪽으로 넘어왔다. 주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안전인가, 가격인가. 그 선택에 따라 앞으로 축산정책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한우 사육 농가의 미래도 그 선택에 달려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도 이제 더 이상 광우병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우병의 씨앗이 태평양을 건너 상륙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광우병 발생국으로 등록되지 않았던가.

“한국은 광우병에 취약한 나라예요. 소는 버리는 게 없잖아요. 뼈는 물론 내장까지 모두 식용으로 쓰고 있으니. 또 유전적으로도 불리해요. 아시아인의 95%가량이 광우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형을 갖고 있거든요.” 한 수의학자의 발언이 차갑게 심경을 긁는다. 한우와 미국산 쇠고기의 구별법이라도 익혀두자.

[한겨레21 관련기사]

▶안 먹을 수 없는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