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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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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세포도 가속보다 잘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쥐의 노화세포 제거 뒤 수명 연장 보여준 실험, 노화세포 없애는 ‘세놀리틱 물질’ 찾기 활발
등록 2022-05-21 08:24 수정 2022-05-22 02:38
한 노부부가 손을 잡은 채 계곡을 오르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한 노부부가 손을 잡은 채 계곡을 오르고 있다. 한겨레 자료

처음 운전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필기시험과 기능시험, 도로주행시험을 모두 통과해 면허를 취득했지만 막상 도로에 나가서 혼자 운전하려니 겁나더군요. 하지만 당장 한 달 뒤부터 출근하기로 한 직장이 꽤 멀고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서 운전할 수밖에 없어, 결국 시내연수를 추가 신청해 연습했더랬지요.

그때 운전 연수 프로그램에서 만난 강사는 늘 제게 “속도를 잘 내는 것보다 속도를 잘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전에는 전방만 잘 주시하면 됩니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지요. 전방에 무엇이 있다고 성급히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는 관성의 법칙의 잔인함을 몸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관성은 내게만 통용되는 게 아니기에 갑자기 멈춘 나를 뒤차가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하면 2차 사고가 날 위험도 큽니다. 그러니 잘 멈춘다는 건 그만큼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었죠.

사멸과 사멸 방지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노화세포

생명체가 살아가면서, 이런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더 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멈춰야 하는 순간 말이죠. 너무 많이 분열해 염색체 끝 손상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 여러 이유로 디엔에이(DNA) 손상을 입은 경우, 유해산소에 지나치게 노출됐다든가, 그 밖의 이유로 세포 내 스트레스가 상당히 축적된 경우입니다.

이 경우 세포는 일단 분열을 멈추고 노화세포 상태로 들어갑니다. 이런 세포가 계속 분열하면 암세포가 될 가능성이 현저히 커지기에 더 큰 피해를 막으려 세포는 분열을 정지하고 노화세포가 됩니다. 노화세포가 되면서 일단 발등의 불은 끈 셈이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암세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택한 노화세포 자체가 주변 세포를 암세포로 만들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이는 노화세포의 이중성에 있습니다. 노화세포는 세포사멸에 관련된 유전자와 세포사멸에 대응하는 유전자를 동시에 활성화합니다. 즉, 노화세포는 세포사멸을 방지하는 유전자의 활성을 증가시켜 아폽토시스(Apoptosis·세포자살) 프로그램을 멈추고 보통 세포보다 더 오래 사는 동시에 인터류킨6(IL-6), 종양괴사인자(TNF-α) 등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분자를 더 많이 내보내, 오히려 세포사멸을 촉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이때 만들어내는 세포사멸 인자는 노화세포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주변 조직에 만성 염증반응을 일으킵니다. 보통 생체 내에서 염증반응이 일어나면, 이 신호를 받고 호중구 등 면역세포가 모여들어 원인물질을 제거합니다.

상처를 입으면 히스타민 등 염증반응을 촉진하는 물질의 분비가 늘어나는 것은 이것이 신호탄이 되어 면역세포를 끌어들이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죠. 상처가 났을 때 주변이 붉게 변하며 부어오르는 것이 바로 면역세포를 끌어들이는 빨간색 경고등인 셈입니다. 노화세포가 많아질수록 염증 신호는 장기화·만성화되고, 만성적인 염증반응은 면역세포를 교란해 이들이 원활하게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치 경고신호가 가끔 울려대면 재빨리 대응하지만, 매일매일 경고신호가 넘쳐나면 무시해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경고신호를 무시한다고 물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이런 세포사멸 인자들의 분비는 주변 세포를 자극해 오히려 이들의 돌연변이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치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폭주를 멈췄지만, 뒤따라오던 다른 차들이 제때 멈추지 못하고 핸들을 꺾어 2차 사고가 나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노화세포로 이런 부정적 결과가 나타난다면, 노화세포를 바로바로 제거하면 조직 손상과 시스템 활성 저하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노화세포 제거, 희망의 시작

미국 메이오클리닉의 연구진은 노화세포의 빠른 제거가 개체 전체의 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일부러 노화가 빨리 일어나도록 유전자조작을 한 생쥐, 즉 조로증에 걸린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합니다. 노화 방지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물이 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조로증 쥐를 만들어낸 거죠. 그리고 이 유전자조작 생쥐에 한 번 더 유전자조작을 해 INK-ATTAC 생쥐를 만들어냅니다. 이 유전자는 평소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지만, 특정 약물을 투여하면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작용해 노화세포만을 골라 죽입니다. 다시 말해 INK-ATTAC 조작 생쥐는 특정 약물을 투입하면 노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폭탄이 터지도록 만든 쥐입니다.

이 생쥐를 어느 정도 키운 뒤 약물을 투여했더니, 원래 조로증이 있는 생쥐이지만 같은 조로증 생쥐에 견줘 훨씬 덜 늙는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노화세포의 선택적 제거로 노화 방지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줬죠. 하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긴 이릅니다. 아쉽게도 유전자조작 생쥐는 겉으로 덜 늙어 보이는 것이 확실했지만 그렇다고 수명이 더 길어진 건 아니었고, 심장질환 등 흔히 노화와 연관된 질환의 발생 비율도 낮아지지 않았기에 노화 방지 연구의 또 다른 목표인 생명 연장 현상은 관찰되지 않았지요.

생쥐의 수명이 더 늘지도 않았고, 게다가 일부러 조로증이라는 특수한 상황- 조로증이면 노화세포 수도 그만큼 많고, 애초에 유전적 조로증은 발현 확률이 수백만분의 1로 매우 낮아 매우 특수한 경우입니다- 에 놓인 생쥐였고, 유전자조작까지 한 경우라 보통의 생쥐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리라고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이긴 해도 노화세포의 선택적 제거가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많은 이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유전자조작을 하지 않은 건강한 보통 생쥐에게서도 노화세포 제거가 긍정적 결과를 일으키는지, 그렇다면 어떤 물질이 노화세포만을 골라서 제거할 수 있는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먼저 보통 생쥐에게서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것이 노화를 지연시킨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노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면, 여러 노화 징후가 나타나는 속도가 느려지는 게 밝혀졌죠. 이렇게 노화세포만을 골라서 없애는 것을 세놀리틱(Senolytic) 치료법이라고 하는데, 이제 남은 숙제는 더 효과적인 세놀리틱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신경세포, 노화 상태로 네트워크의 핵심

이후 몇 가지 물질이 세놀리틱 효과가 있음이 증명됐습니다. 조로증 생쥐의 경우 노화세포 제거가 수명 연장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건강한 보통 생쥐에게서는 노화세포 제거로 수명이 늘어났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구체적인 물질 이름이 거론됐고, 2018년에는 제한된 임상시험도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몇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완벽하게 항노화 치료제로 인정된 물질은 없습니다. 다들 가능성뿐이죠.

대개의 물질이 노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기능이 완벽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조건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화세포 제거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뇌 속 신경세포입니다. 신경세포는 어느 정도 자라면 분열을 멈춘 채, 다시 말하면 노화세포로 변모한 채 수십 년을 살아갑니다. 신경세포가 일찍 분열을 멈추고 오랫동안 노화된 상태로 살아남는 이유는 그들 자체가 체내 네트워크의 핵심이기 때문입 니다.

잘 알려졌듯이 태아는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신경세포를 가진 존재이며, 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신경세포는 주변의 다른 세포들과 의미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만 남고 나머지는 솎아지는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되면 처음의 절반 정도만 남습니다. 이후 세포분열은 오히려 안정화된 신경계 네트워크를 교란할 가능성이 크기에, 일정 시기 이후 안정된 네트워크를 형성한 신경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노화세포 상태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포를 노화세포라고 하여 제거해버린다면, 다른 부위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아도 신경세포 손상으로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몸은 건강한데 정신이 퇴화한다면? 그건 단순히 늙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노화세포를 보통 세포와 구별해야 하고, 꼭 필요한 ‘현명한’ 노화세포는 선별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니 쉽지 않죠.

생물은 디지털이 아니기에

생물의 가장 큰 특성은 디지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기관과 조직과 세포가 유기적으로 연결됐기에, 하나의 시도가 단일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단선적인 원인-결과를 파악하기 힘들고, 의학 발전에서는 섣부르게 시도했다가 끔찍한 부작용을 경험한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 약간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우리에게 남은 건 이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조심조심 펼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어디 있는지 찾는 일이겠지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늙음의 과학: 나이 들어가는 당신은 노후화되어가고 있나요. 노쇠되어가고 있나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나이 드는 것의 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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