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다수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소수를 지지한다. 적정기술은 선택받은 10%에 가려져 있던 ‘소외된 90%’를 다수에 두고 탄생한 지향성 기술이다. 3D 프린터는 산업 측면에선 자본과 기술의 문턱을 없애고 생산공장을 각 가정으로 편재했는데 동시에 신체장애인에겐 새로운 손발을 가져다준 조물주이기도 하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또 어떤가. 인류 대중의 편의를 겨냥했는데 손발이 불편하거나 인지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도 이동 수단의 평등을 가져다준다.
기술 혜택으로부터 소수를 배제하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의무다. 구글 ‘매빌리티’(사진)도 이 맥락을 따른다. 매빌리티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길안내(내비게이션) 프로젝트다.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 형태로 개발 중이다. 시각장애인이 복잡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쉽고 안전하게 길안내를 받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과 메뉴 구성, 기술 완성도 모두 신경 쓴 모습이다. 메뉴는 최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구성했다. 첫 화면은 불필요한 버튼을 없애고 흰색과 밝은 회색을 적용해 저시력자도 손쉽게 메뉴를 구분하도록 했다. 내비게이션을 열고 화면을 두 번 연속 누르면 즐겨 이용하는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음성으로 메뉴를 불러내고 다시 하위 메뉴로 찾아 들어가는 난관을 없애고, 가장 빠르고 간편하게 즐겨 오가는 경로를 불러내도록 한 모습이다.
매빌리티 길안내의 핵심 기능은 ‘라이트하우스’다. 이용자는 어느 화면에서든 두 손가락을 아래로 쓸어내리면 길안내 모드로 들어설 수 있다. 이제 폰으로 아무 방향이나 가리켜보자. 앞쪽 건물이나 도로 등 장애물 정보를 실시간 스캔해 음성으로 알려주고 거리도 측정해준다. 말 그대로 깜깜한 앞길을 밝혀주는 ‘등대’다.
매빌리티는 ‘턴바이턴’ 방식으로 경로를 안내한다. 그렇지만 여느 내비게이션과는 안내 경로가 다르다. 시각장애인용 길라잡이답게 혼잡한 길, 경사로가 많은 길 등을 따로 구분해 보여준다. 이동 지역 날씨나 휠체어 접근성 여부도 알려준다. 이런 정보들은 현지 환경에 맞춰 실시간 업데이트된다. 경로를 이탈할 땐 곧바로 진동으로 경고하고, 언제든 현재 위치를 저장하거나 다른 이에게 전송하도록 했다.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35개 키 가운데 원하는 걸 실수 없이 입력하는 일은 비장애인에게도 만만찮은 도전이다. 구글 매빌리티는 전맹장애인이나 저시력자를 고려해 한 번에 한 글자만 입력되도록 키보드를 설계했다. 구글은 이용자들이 즐겨 쓰는 단어에 주목했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대고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해 철자 하나를 선택하면,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를 토대로 그다음에 올 철자를 자동으로 배열해준다. 이런 식으로 몇 번 스크롤하다보면 원하는 단어가 완성되고, 손가락을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쓸면 해당 단어가 입력된다. ‘대중교통 히치하이커’ 기능도 요긴하다. 이용자의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곧 도착할 버스를 알림창으로 띄워준다. ‘330번 버스’란 안내와 함께 예상 도착 시간과 ‘호출’ 버튼을 띄워주는 식이다. 이용자가 이 버튼을 누르면 승차 호출을 미리 보내준다.
전세계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장애와 더불어 산다. 구글은 오롯이 스마트폰 안에서 시각장애인이란 소수만 포용해 가장 쓰기 쉽고 똑똑한 길라잡이를 만들 심산이다. 한데 생각해보자. 시각장애인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매빌리티를 이용해 길을 찾아다니면 어떻게 될까. 이들이 누비며 모으는 도로 정보는 구글 지도에 고스란히 업데이트된다. 이들은 구글이 포용하는 소수이자, 구글 데이터베이스를 살찌우는 우군이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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