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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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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된 자네, 인정욕구 넘어설 때 되지 않았나

‘욕구 5단계론’ 매슬로에게 배우는 5060의 마음가짐
등록 2024-08-02 20:36 수정 2024-08-09 08:00
에이브러햄 매슬로.

에이브러햄 매슬로.


노년에 접어든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에게 어떤 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욕정을 느끼지 못하니 아쉽지 않으십니까?” 소포클레스는 정색하며 답했다. “무슨 끔찍한 말을 하는가! 나는 이제야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막 빠져나온 듯하네!”

펄펄 뛰는 욕망은 강한 쾌감을 안긴다. 하지만 채워지지 못한 욕구 탓에 삶이 지옥으로 바뀌는 때도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중년 이후에는 약해지는 욕망을 고마워해야 한다. 이래야 일상이 안온해지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되레 욕구를 되살리려 애쓰는 이도 적지 않다. 온갖 좋은 약재를 구해 욕정을 되살리거나, 젊어 보이려 아득바득하는 이들을 보라.

건강하게 살려는 노력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늙음을 외면하며 푸르름과 활기참을 영원히 움켜쥐려는 애씀은 헛헛하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젊은이만큼 강렬한 마음과 피어나는 아름다움은 다시 나에게 찾아들지 않을 터다. 그렇다면 이제는 풋풋했던 시절과 다른, 나이에 걸맞은 욕망을 틔워야 하지 않을까? 욕망은 평생에 걸쳐 성장해야 한다. 호흡 가쁘고 짧은 순간만 만족이 주어지는 낮은 단계 욕구에서, 편안하고 길게 이어지는 차원 높은 욕구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오십 고개를 넘어가는 그대는 어떻게 욕구를 가꾸어야 할까?

‘꼰대 짓’ 할까 ‘다른 길’ 받아들일까

이 물음에 에이브러햄 매슬로(1908~1970)는 지혜를 안긴다. 그는 ‘욕구 5단계 이론’으로 유명한 심리학자다. 욕구는 생존, 안전, 소속감과 사랑, 인정, 자아실현의 순서로 나아간다. 또한 아래 단계 욕구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위 단계 욕구는 생겨나지 않는다. 예컨대 굶어 죽을 지경인 멧돼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먹이를 찾아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온다. 생존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에 안전 욕구를 돌볼 겨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 충분히 안전해지고 나면 따뜻하고 마음 기댈 만한 관계를 바라게 되기 마련이다. 이마저 채워졌다면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바람이 찾아들 터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어느 수준의 욕구에 머무르고 있을까? 매슬로에 의하면, 선진국에서는 생존과 안전의 단계에서 허덕이는 이가 많지 않다. 맞는 말이다. 우리 대부분은 때때로 배고픔을 느낄지언정 굶주림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늘 시달리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러나 소속감과 사랑, 인정의 욕구는 늘 우리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들 역시 이들 욕구를 둘러싼 심리 게임을 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십 줄인 그대를 괴롭히는 욕구도 이런 것들이리라. 나는 더 이상 ‘왕년의 나’가 아니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내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인정과 존경보다 무시와 비난의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는 상황도 많아진다. 매슬로는 생존, 안전, 소속감과 사랑, 인정을 바라는 심정을 ‘결핍 욕구’(D-needs, Deficit needs)라 불렀다. 부족해서 생겨난 문제는 채워져야 해결될 터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불안한 마음은 위협이 사라진 다음에야 비로소 가라앉지 않던가. 사랑받고 인정받고픈 심정도 그렇다. 이들 역시 관심과 칭찬, 혹은 우러름을 받은 후에야 풀릴 테다.

그렇지만 반백(半白)인 그대에게 사랑과 관심이 촉촉하게 주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자존감을 높여줄 기회도 점점 줄어들뿐더러 이를 얻기 위해 애쓰기에는 몸도 정신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장년에 다다른 자들은 다음 셋 중의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기 십상이다. 미친 사랑을 꿈꾸며 일탈에 빠지려 하거나, 불 꺼진 방에서 깊은 시름에 잠겨 있거나,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며 꼰대 짓(?)을 일삼거나. 이대로 더 나이 들어간다면 그대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결핍 욕구 넘어 성장 욕구로 나아가라

이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든다면, 매슬로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 매슬로는 결핍 욕구를 넘어서 ‘성장 욕구’(B-needs, Being needs)로 나아가라고 충고한다. 이는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고픈 갈망, 즉 ‘자아실현의 욕구’다. 그대는 어떤 순간에 진정 ‘나답다’라는 생각이 드는가? 매슬로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음악가는 음악을 만들고, 미술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써야만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본성에 진실해야 한다. 이것이 자아실현의 욕구다.”(<매슬로의 동기이론>, 에이브러햄 매슬로 지음, 소슬기 옮김, 유엑스리뷰, 2021년, 69쪽)

하지만 이 말이 혜안보다 절망으로 다가오는 중년이 훨씬 많겠다. 나이가 오십이나 됐으면서도, 여전히 나의 진정한 가능성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가 얼마나 많던가! 하긴 매슬로 자신도 자아실현에 다다른 이들을 전체 인류의 2% 남짓으로 가늠했을 뿐이다. 게다가 매슬로는 아래 단계 욕구가 채워져야 위 단계 욕구가 생겨난다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아직도 나에게는 소속감과 사랑, 인정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자아실현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매슬로도 이런 항의를 많이 받았던 듯싶다. 그래서 그는 친절하게 모든 의문에 조곤조곤 답해준다. 인간의 욕망은 하나씩 찾아들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은 다섯 단계의 욕구에 동시에 시달린다. 예컨대, 여느 사람들은 생존의 욕구가 85%, 안전이 70%, 소속감과 사랑이 50%, 인정의 욕구가 40%, 자아실현의 욕구가 10% 채워져 있는 식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에게도 자아실현의 욕구가 살아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결핍 욕구를 넘어 성장 욕구, 즉 자아실현의 욕구에 매달려보라.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위 단계의 욕구가 잘 채워진 이는 아래 단계의 욕망이 설사 흔들려도 더 오래, 튼실하게 버티곤 한다. 예컨대,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가 언제나 잘 채워졌던 자는 불안한 상황을 더 의연하게 이겨낸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자아실현의 욕구를 제대로 채운다면, 불안하고 외로우며 인정받지 못해 서운한 심정도 훌훌 털어낼 것이다.

‘절정경험’ 최대한 자주 거듭해 느끼라

하지만 여전히 자아실현은 모호하고 다가오지 않는 개념이다. 그래서 매슬로는 자아실현을 이룰 방법을 구체적으로 일러주기까지 한다. ‘절정경험’(Peak experience)을 최대한 자주, 거듭해서 느끼는 일상을 살라고 말이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힘겹게 산에 올라 정상에 섰을 때의 뿌듯한 기쁨을 떠올려보라. 달리기에 빠져 있다면 긴 고통 뒤 찾아드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황홀함을 생각해봐도 좋겠다. 책 읽기에 푹 빠져 있느라 시간이 ‘순삭(!)’됐을 때의 뿌듯함도 절정경험이 될 수 있겠다. 절정경험은 평범한 이들도 자아실현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절정경험을 할 때) 잠시 그들은 자아실현자가 되고, 이는 그들에게 가장 행복하고 가장 스릴 넘치는 순간일 뿐만 아니라 가장 성숙하고 개성적이며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 다시 말해 가장 건강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 이는 자아실현을 전부 또는 전무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와 빈도의 문제로 만듭니다.”(<트랜센드>, 스콧 배리 카우프만 지음, 김완균 옮김, 책세상, 2021년, 343쪽)

매슬로의 설명이다. 행복한 순간이 많이 쌓이면 삶은 행복으로 물든다. 절정경험도 그러하다. 자기를 잊을 만큼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절정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대의 삶이 지복(至福)의 상태에 접어들 가능성도 커진다.

몰입한 오십의 표정을 살펴보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불확실한 상황을 잘 견딘다.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 자체를 바라본다. 유머 감각이 탁월하다. 조직이나 분위기에 길들여지지 않으며 창의적이다. 독립적이면서도 민주적이어서 포용력이 높다. 도덕적 수준이 높다.”

매슬로가 말하는 자기실현을 이룬 사람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끙끙거리던 문제가 속 시원히 해결됐을 때, 혹은 운동 후 나른한 만족감과 피로 속에 젖어 있을 때 등등을 기억해보라. 마음이 한껏 자애로워지고 생각이 열리며 낙관적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지혜로운 중년은 웅크려 지내지 않는다. 젊을 때의 욕망을 되살리려 애쓰지도 않는다. 자신을 잊을 만큼 오롯이 몰입할 절정의 순간을 계속해서 찾아 매달릴 뿐이다. 오십은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나이다. 등산과 식물 가꾸기 등에 매혹되기도 하고, 스포츠, 예술의 매력에 깊게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중년들의 표정을 살펴보라. 이들은 절정경험을 통해 나이에 걸맞게 성장 욕구를 열어가고 있다. 그대 역시 이랬으면 좋겠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백철학: 교사이자 철학박사인 안광복이 오십 대에게 철학을 처방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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