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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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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왜 꽃 사진이 좋을까

한결같고 담담한 자연에 위안 얻어… 알랭 드 보통에게 듣는 중년을 지혜롭게 보내는 법
등록 2024-11-22 19:55 수정 2024-11-25 18:25

평생을 투사같이 살았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늘그막에 꽃과 자연을 무척 사랑했다. 꽃향기를 맡는 루소를 담은 그림에서는 잔잔함과 평화가 느껴진다. 중년에 다다른 그대도 루소를 닮아갈 듯싶다. 예쁜 꽃을 보면 어느덧 카메라 앱을 켜게 되고, 주변에 ‘반려식물’도 하나둘씩 늘어나지 않던가. 나이 들수록 자연에, 식물에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왜 그럴까?

중년기의 매력을 찾아서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 있어도 꽃은 피고 진다. 언제나 차분하고 한결같으며, 계절에 따라 마땅하게 변해갈 따름이다.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시민이 양산을 쓰고 꽃밭 사진을 찍으며 산책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 있어도 꽃은 피고 진다. 언제나 차분하고 한결같으며, 계절에 따라 마땅하게 변해갈 따름이다.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시민이 양산을 쓰고 꽃밭 사진을 찍으며 산책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1969~ )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내가 부자이건 가난하건, 지위가 높든 범법자든 상관하지 않는다. 공원 연못에 있는 청둥오리는 내가 주는 먹이를 맛있게 받아먹을 뿐이다.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 있어도 꽃은 피고 진다. 언제나 차분하고 한결같으며, 계절에 따라 마땅하게 변해갈 따름이다.

인간 두뇌는 변온동물과 같다. 주변의 분위기가 달뜨면 같이 흥분하고, 차분해지면 같이 가라앉는 식이다. 오십 대의 일상은 온갖 의무와 걱정으로 가득하다. 이럴 때 자연의 담담한 모습은 차분한 위안을 안긴다. 그래서 마음이 산란할수록, 근심으로 뒤척이는 밤이 늘어날수록 자연에 더 많이 끌리곤 한다.

돌이켜보면 젊었을 때도 지금처럼 겁과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자연보다는 친구가, 근심을 잊게 하는 신나는 활동이 더 좋았다. 그런데 왜 중년에는 변함없는 자연이 오히려 더 좋을까? 그 이유는 인생의 성장 목표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젊었을 때는 막연히 ‘청년기가 인생의 정점, 중년기는 쇠약, 노년기는 몰락의 시기’라고 짐작하곤 했다. 그러나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오십이 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삶의 언덕 뒤편 풍경이 보이게 된다. 직접 겪어보면 중년은 약해져서 밀려 사라지는 시기가 아니다. 무르익으며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성숙기일 뿐이다. 중년의 고비를 잘 넘긴다면 노년은 비로소 인생의 완성기로 거듭날 터다. 그래서 또다시 ‘좋은 노년’이라는 목표를 품고 인생의 길을 계속 걷게 된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해간다. 인생 또한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흘러간다. 가을은 여름보다 못하지 않다. 각각의 시기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계절은 결코 가을에서 여름으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중년에는 청년기로 되돌아가려 하거나, 그 시기를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완성기인 노년을 맞기 위해 ‘성숙’이라는 중년기의 과제를 이뤄야 한다. 대자연의 변화처럼, 이제는 순리대로 인생의 가을을 잘 가꿔야 함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귀를 닫든지 적게 듣든지 

그렇다면 중년의 성숙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랭 드 보통이라면 무엇보다 “귀를 막아라. 하다못해 적게 들어라”라고 조언할 듯싶다. 그에 따르면, 근대화 이전에 서구 사람들은 아침마다 기도를 올렸다. 이제는 뉴스가 아침기도 시간을 대신해버렸다. 눈뜨자마자 세상의 온갖 소식으로 마음이 휘둘리게 됐다는 의미다. 알랭 드 보통은 뜨근뜨근한 소식을 순간순간 듣는 일은 “매일 자발적으로 공포의 강물에 몸을 적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숨을 쉰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알랭 드 보통. ⓒ 마티아스 마르크스(Mathias Marx)

알랭 드 보통. ⓒ 마티아스 마르크스(Mathias Marx)


“신문은 대부분 사람이 친절하다는 사실을, 기차는 대부분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정부에서도 감동적이고 훌륭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날들은 조용히 별일 없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 그리하여 매일 뉴스를 접할 방법은 없었지만 자신의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현실을 그려낼 줄 알았던 중세 시대의 문맹 농부보다도 (자신의 진짜 삶에 대해) 더 아는 게 적은 상태가 되었다.” (‘현대 사회 생존법’, 알랭 드 보통 & 인생학교 지음, 최민우 옮김, 오렌지디 펴냄, 2024, 72쪽)

 

뉴스만 보면 세상의 종말은 이제 멀지 않은 듯하다. 끔찍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정치는 엉망이고 세계정세 또한 심상찮지 않던가. 그러나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내 생각을 들으려 정치 지도자가 나를 찾아올 일은 아마도 없으며, 내 판단대로 정부가 정책을 만들 일도 없다. 가슴은 울분과 걱정으로 가득하며, 일상은 회색빛으로 물든다. 이런 상태로는 오롯이 생활의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소식은 용서하고, 반성하고, 음미하고, 감사하고, 고요하고,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뉴스다.”

인간 두뇌는 변온동물과 같다고 했다. 소란스럽지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세상 소식을 멀리하자. 그래야 별문제 없이 오늘도 굴러가는 소소한 일상이 비로소 눈에 들어올 테다. 그리고 별 소득 없이 흥분하는 일에서 벗어나 차분히 나의 생활을 제대로 추스를 수 있다. 이쯤 되면 알랭 드 보통이 “귀를 막아라. 하다못해 덜 들어라”라고 충고하는 까닭이 다가올 듯싶다.

조용함과 차분함에 익숙해져야

 

그렇지만 알랭 드 보통의 말을 정치나 사회 활동에 관심을 끊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일찍이 세네카는 ‘화냄이란 일시적 광기’라고 했다. 제대로 된 판단을 위해서는 끓어오르는 감정부터 다스려야 한다. 벌어진 일에서 거리를 두고 찬찬히 생각을 모을 때 비로소 지혜로운 해법이 열리는 까닭이다. 중년은 끓는 혈기가 식으며 지혜가 영그는 나이다. 식어가는 감정을 다시 덥히려고 자극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세상일의 본질을 차분히 되짚게 하는 고요함이 절실하다. 수많은 현자가 경력의 정점을 지난 다음에 왜 초야(草野)에 묻히려 했는지를 곱씹어보라.

이를 위해서 중년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숱한 세상 소식, 강렬한 자극을 ‘디톡스’(Detox)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엠에스지(MSG)에 길든 혀는 건강하고 담백한 음식의 맛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정신을 건강하게 가꾸는 일도 그렇다. 시급한 현안이 곧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나이 듦은 다급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나를 급하게 찾는 이들이 이제 드물지 않던가. 그러니 세상 사람들과 덩달아 흥분하지 말고 거리를 두자. 늘 온전한 판단을 이끌도록 차분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불면증은 낮에 풀지 못하고 지나갔던 온갖 생각이 마음에 가하는 복수며, 불안이란 우리가 소홀히 대했던 감수성에 깊이 주의를 기울이라는 권고”다. 예전에 비키니 해변에서 핵실험을 했던 사람들은 방사능의 해로움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끌벅적한 상황에서 떠들썩하게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지를 놓치곤 한다. 중년은 인생의 가을을 지나가고 있다. 삶의 여름을 고대하던 유년기에는 온갖 자극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청년기를 지나 지혜를 가꿔야 할 중년에는 조용함과 차분함에 익숙해져야 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여보자.

 

“비싼 도심지 밖에 거주하며, 물질적 필요와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고자 일하지만 미친 듯한 열정이나 정서적인 갈망은 없으며, 가끔 뉴스를 확인하고, 멀리 여행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저녁에는 대부분 외출하지 않고, 소수의 친구하고만 연락하며, 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운동은 산책으로 충분하고, 식사는 주로 과일과 야채로 간단히 하고, 비싼 물건을 좀체 사지 않으며, (…)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 (‘현대 사회 생존법’, 191쪽)

 

중년 다음의 인생 진도는 노년이다. 중년은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조용하고 한갓진 주변부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밀려나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지혜로운 중년, 인생의 성숙기

우리가 자연에 끌리는 이유는 세상일이 어떻건 한결같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중년도 그러하다. 젊은 시절, 심란할 때 어떤 선배들에게 기대고 싶었는지 떠올려보라. 우리가 꽃과 식물에 매료되듯, 젊었던 우리 영혼은 지혜롭게 나이 든 이들에게 절로 끌리곤 했다. 인자한 표정, 한결같이 평온한 감정 상태, 내가 어떤 상황에 있건 차분하게 끝까지 내 말을 들어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던 모습은 그 자체로 인생의 가을에 걸맞은 ‘지혜’다. 중년은 인생의 쇠락기가 아니라 성숙기다. 오십에도 삶은 성장한다. 자연에 이끌리는 우리 마음은 반백의 시기를 지나는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부디, 아름답게 인생의 가을을 즐기시길. 응원을 보낸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백철학: 교사이자 철학박사인 안광복이 오십 대에게 철학을 처방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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