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카페 옆에는 서점이 있다.”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를 한 사회학자 정수복의 말이다. 사실 다양한 카페로 말하자면 서울만 한 곳이 없다. 하지만 카페 옆에 서점은 없다. 영국 런던의 서점은 카페를 겸업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박물관 인근의 런던리뷰서점(London Review Bookshop)은 직접 서점 옆에 카페를 운영한다. 포일스나 워터스톤스도 서점 내에 카페가 있다. 이와 다르게 파리6구 생제르맹데프레 거리에 가면 카페 옆 서점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영국 문학은 개인주의적이고, 독일 문학은 관념적이며, 프랑스 문학은 사회적이고 사교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프랑스 사람은 대화를 좋아한다. 프랑스 카페에서는 심지어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즉석에서 토론이 벌어진다. 프랑스인에게 카페는 커피와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곳이다. 이런 문화를 잘 보여주는 카페가 생제르맹데프레 거리에 남아 있다. 100년 넘게 운영되는 카페 ‘되마고’(Deux Magots)와 ‘드플로르’(De Flore)다.
되마고는 1855년 문을 열었다. 되마고란 ‘두 개의 중국 인형’이란 뜻인데, 카페가 있는 건물이 중국에서 건너온 실크를 취급하던 점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스테판 말라르메, 아르튀르 랭보와 같은 상징파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같은 초현실주의자, 오스카 와일드, 에즈라 파운드 같은 영미 문인이 즐겨 찾았다. 1930년대 유럽에 파시즘이 드리우자 앙드레 말로, 루이 아라공 같은 작가들이 반파시스트 문학가 회의를 소집했는데 그 장소가 카페 되마고였다.
되마고와 이웃한 카페 드플로르는 1885년 시작했다. 드플로르의 단골 명단은 어마어마하다. 생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피카소, 헤밍웨이,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와 대통령이 되기 전 프랑수아 미테랑도 있다.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드플로르를 좋아해 드나들었다. 1940년 무렵부터 드플로르는 실존주의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아예 드플로르를 작업실로 삼았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사의 한 장면을 낳은 두 카페에 들어가려면 긴 대기줄을 감수해야 한다. 날씨가 좋아지는 5월 이후 카페 밖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라틴 지구를 돌아다니다 드플로르 카페 앞에 줄을 선 인파에 놀랐지만 카페 안에서 차를 마시겠다고 하자 빨리 입장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원고를 쓰고, 점심을 먹고 친구들와 대화하다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다시 원고를 썼다. 내가 방문했던 한낮의 드플로르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비넥타이에 흰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에게 커피를 접대하는 ‘가르송’의 모습은 여전했다. 서울의 스페셜티커피에 익숙해진 탓인지 드플로르의 커피 맛은 평범했다. 파리의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곳이라는 말이 맞는 듯했다.
카페 되마고와 드플로르가 있는 생제르맹데프레 거리는 프랑스의 사상가, 작가, 예술가, 정치인이 즐겨 찾던 만남의 장소였다. 이들이 카페나 레스토랑만 즐겨 찾은 게 아니다. 서점이 빠질 수 없다. 1949년 문을 연 ‘라윈’(La Hune·배의 망루)은 되마고나 드플로르 카페를 찾는 문화예술인에게 사랑받는 서점이었다. 라윈은 최초의 갤러리서점으로, 1957년 피카소가 전시를 했다. 원래 라윈은 되마고 바로 옆에 있었다. 카페 옆 서점이었다. 그러나 생제르맹데프레 거리의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2012년 라윈은 루이뷔통에 서점 자리를 내주고 인근으로 이전했다. 그럼에도 매출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2015년 문을 닫았다. 물론 되마고 옆 루이뷔통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드플로르 옆에도 서점이 있다. ‘레큄 데 파주(L'Ecume des Pages·책장의 거품)다. 1980년부터 파리에서 가장 문학적인 이 지역을 지키는 유일한 독립서점이다. 워낙 관광객이 몰려드는 거리라 기념품이나 굿즈를 겸비한 편집서점이 아닐까 싶었지만 내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책 4만 권 이상이 빼곡하게 들어찬, 과거 한국의 중형 서점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더 놀라운 건 서점의 장서인데, 고전과 철학서 그리고 정치사상 등 인문교양서의 구색이 훌륭했다. 대체 생제르맹데프레 거리에 어떻게 이런 서점이 여전히 건재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프랑스인들은 스스로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지녔다. 프랑스는 대학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에 철학시험을 포함시키는 유일한 나라다. 문과에서 최고 수재만 입학한다는 노르말쉬페리외르(고등사범) 출신이 졸업하면 우선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임용되는 나라다. 사르트르와 보부와르 그리고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지식인이 모두 철학교사 출신인 이유다. 프랑스의 지적 전통을 이해하면 레큄데파주 같은 서점이 이 거리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레큄데파주는 평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무려 자정까지 영업한다. 어둠이 내리면 파리의 지식인들이 라틴 지구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책을 사고 옆에 있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건 파리 지식인에게는 당연하고 즐거운 일상이다. 서점과 카페 모두 지식인이 사랑하는 장소이니 나란히 있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나라지만, 그럼에도 서점은 프랑스에서조차 수익성이 가장 낮은 소매업 중 하나다. 프랑스 독립서점의 매출 대비 순이익률이 1.2%라는 결과도 나왔다. 프랑스에서도 서점은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파리의 카페 옆 서점이 놀라웠다.
한미화 <동네책방 생존탐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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