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여성인 방송인 풍자는 지금 웹예능과 지상파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기본 100만 조회수는 거뜬히 뽑는 ‘방송계 만능키’다. 이 정도 인기와 영향력이면 이미 풍자라는 예명을 두고 쉽게 떠올릴 만한, ‘풍자 전성시대’라는 헤드라인으로 뽑힌 인터뷰나 칼럼이 앞다퉈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풍자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울리는 반면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이상하리만치 적막이 감돈다.
본명이 윤보미인 풍자는 2016년 <아프리카티브이> 진행자(BJ)로 시작해(이때 ‘별풍선을 많이 뽑자’의 줄임말인 예명 ‘풍자’가 탄생했다) 2019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의 구독자가 ‘떡상’(급격하게 상승)하며 대세 유튜버가 됐고, 2021년 스튜디오 와플의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는 등 온갖 웹예능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제는 MBC <라디오스타>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 SBS <미운 우리 새끼>, JTBC <히든싱어즈> 등 지상파 간판 프로그램까지 골고루 출연하고 있다. 시사 프로그램인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까지도. 비유하자면 풍자는 어느 사석 술자리에 데려다놔도, 심지어 광장에 데려다놔도 일정하게 그리고 높은 수준으로 웃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정말 ‘끼가 뒤집어진다’.
풍자의 끼는 단지 기상천외한 ‘썰’ 부자나 독설가 기믹(Gimmick·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특별한 전략) 이상이다. ‘막내 개그우먼’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희극인의 기본 예능 포지션인 ‘딜러(남을 놀리며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탱커(다른 사람의 놀림감이 되는 역할)·힐러(놀림받은 사람을 챙기는 역할)’ 모두 능수능란하다. 입담이면 입담, 연기면 연기, 콩트면 콩트, 리액션이면 리액션, 진행이면 진행, 인터뷰면 인터뷰 모두 가능한 ‘꽉 찬 육각형’ 인재다.
반면 요즘 온갖 매체의 특집이나 오피니언, 마케팅 트렌드에서 떠들썩하게 언급하는 신예 방송인들은 굳이 ‘육각형 인재’가 아니어도 됐다. 특정 인물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보여주거나(사회 초년생 여성의 태도를 재현한 주현영의 ‘주기자’, 신도시 거주 기혼 여성의 모습을 재현한 박세미의 ‘서준맘’), 독특한 설정의 캐릭터로 상황극을 벌이는(일본 유흥업소 호스트 출신 콘셉트인 김경욱의 ‘다나카’, 비대면 데이트 상대로서 카페 사장 콘셉트인 김해준의 ‘최준’) 역량만 갖춰도 충분했다.
풍자가 연예인이 아닌 인터넷 방송인 출신이어서일까. 그렇다기엔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의 박막례 할머니와 김유라 피디, <빠더너스>의 문상훈, <사내 뷰공업>의 김소정씨는 진작에 ‘주요 문화 현상’으로 회자됐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명한 인물이면 구구절절 기록되는 그 ‘나무위키’에서조차 풍자 페이지는 내용이 너무 썰렁한데다 방송 출연 목록도 누락된 항목이 많다. 이 침묵이 역설적으로 외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풍자의 모든 역량을 뒷받침하는 역량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선(線) 지키기’. 아무리 유튜브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서 자극적인 썰이나 현란한 입담으로 날고 기던 사람들도 지상파에서 ‘노잼’이 되는 건 수위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풍자는 어딜 데려다놔도 이 선을 절대 넘지 않으면서도 재밌다. 여기에 웬만한 프로 방송인보다도 논란이 적어 ‘깨끗’하고, 다리를 쓰지 못할 직전까지 일했다가 큰 수술을 해내고 바로 다음날 퇴원해서 일하는 ‘(과한) 성실함’도 갖췄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에게 성관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는데, 결과적으로 성소수자 정체성을 희석하여 대중들을 ‘덜 불편하게’ 만든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그녀는 너무 재밌는데다 무해하다.
나는 2022년 여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채널A)에서 풍자가 가정사를 고백하는 방송을 봤을 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와중에 ‘풍자를 좋아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선택이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서 지키고, 가난한 형편에서도 동생들을 부모 같은 책임감으로 돌보고, 엄한 아버지에게 정체성을 오래 인정받지 못한 일은 감히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극적’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누군가에게는 쉽게 ‘연민’할 대상이 된다. 또 풍자는 트랜지션한 자기 모습을 어머니가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어머니 묘소를 찾아가지 않았고, 성별 정정에 관한 모든 절차를 마쳤지만 아버지가 반대하는 마음을 헤아리며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바꾸지 않을 정도로 ‘분수’를 지키는 사람이다. 이미 완벽한 예능인인 풍자는 이 방송으로 대중이 ‘안심하고 좋아할 만한’ 존재가 됐다. 그래서 풍자가 오은영 선생님과의 상담 방송을 기점으로 온갖 지상파 프로그램에 진출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자신의 소수자성에서 웃음을 발명해내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는 저서 <차이에서 배워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이야기를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해 성공한 유명인이 되었다는 감동 포르노 서사로 읽어주지 않길 바란다. (중략) 나는 어떤 한 사람이 겪은 불행을 세세하게 들추어내야만 연민과 공감을 보내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재미와 이해를 상호교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걸 풍자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가 그녀의 재미와 ‘완벽’을 상호교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글은 언젠가 <풍자테레비>에 ‘작가 풍뎅이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얘,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잖니”라는 이야기를 들을지 모른다(‘풍뎅이’는 <풍자테레비> 구독자 애칭이다). 그렇다, ‘노잼’이고 진지한 얘기는 우리 몫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풍자의 ‘유잼’을 날로 먹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풍자가 출연하는 콘텐츠마다 ‘디폴트’로 댓글에 달리는 혐오 표현들, 그녀가 방송 현장에서 종종 마주친다는 무례한 사람들에 대해 방송계는 어떤 역할을 하고 대책을 마련했는지 궁금하다. 혐오로 얼룩진 사회면서 ‘표백된 존재’만 사랑하려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원조 ‘풍뎅이’로쒀 부치는 팬레터: 풍자 언니에 대해 ‘심각한’ 이야기만 하는 건 부당하다는 마음까쥐 담음
풍자 언니, 요즘 언니가 잘돼서 방송마다 회차마다 달라지는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언니가 손짓하고 입을 뗄 때마다 다양한 얼굴들에 웃음이 시시각각으로 피는 현장은, 보기에 어떤가요? ‘썰’이나 감동 스토리로만 이야기될 수 없는 삶은 충분히 돌보고 있나요? 방송에서 애주가로 비치는 것과 달리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고 싶진 않다는 말에 놀랐어요. 건강 꼭 챙기셔야 돼요. 얼마 전 한 신점 콘텐츠에서 점쳤던 대로 조만간 참여할 음악 작업과 뮤지컬, 영화 출연도 기대할게요. 그러면 몇 년 뒤엔 언니의 소개 멘트가 ‘<풍자테레비>의 풍자입니다’에서 ‘방송하는 풍자입니다’로 바뀐 것처럼, ‘예술 하는 윤보미입니다’가 되기를 고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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