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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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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키움은 왜 저렇게 잘하는 걸까

2022년 ‘미스터리 히어로즈’, “원팀이 아닌 게 오히려 장점일지도”
등록 2022-06-21 13:18 수정 2022-06-22 01:01
키움 히어로즈 홍원기 감독(왼쪽)이 2022년 6월12일 기아(KIA) 타이거즈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이정후와 손바닥을 마주치고 있다. 연합뉴스

키움 히어로즈 홍원기 감독(왼쪽)이 2022년 6월12일 기아(KIA) 타이거즈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이정후와 손바닥을 마주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올해 야구 현장을 가면 늘 나오는 질문이 있다.

“키움은 왜 저렇게 잘하는 걸까요?”

딱히 명쾌하게 나오는 답은 없다. 모두 “글쎄요”라고 답할 뿐이다. 야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방송 해설위원들에게 물어봐도 “그러게요, 신기하죠?”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한 야구 에이전트는 “기이하다”는 표현까지 썼다. 진짜 ‘미스터리 히어로즈’다.

다년 계약 없고 리그 평균에 못 미치는 연봉이지만

지난겨울 전력 보강을 한 것도 아니다. 엘에이(LA) 다저스 악동이던 야시엘 푸이그 영입으로 눈길은 끌었으나 그가 썩 잘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른 외국인 타자들보다 못한다. 타율이 2할5푼 미만이고 홈런 수도 아직 두 자릿수를 못 채웠다. 그런 그가 키움 히어로즈 4번, 5번 타순에 포진해 있다. 한때는 발 빠른 유격수 김혜성이 4번 타자였다. 다른 팀이라면 김혜성은 1번, 2번 타순에 배치됐을 터. “던질 곳이 없다”는 이정후가 버티고 있지만 야구는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상대 팀 집중 견제를 받다보면 볼넷만 누적돼 타격감을 잃기 십상이다.

히어로즈의 전력은 2021년과 비교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팀 중심 타자이던 박병호가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어 케이티(KT) 위즈로 이적했다.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가 왔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래도 홈런 20개 이상은 쳐줬던 중심 타자다. 박병호가 빠진 자리에 김수환·박주홍 같은 낯선 이름이 타순을 채우는 히어로즈는 에스에스지(SSG) 랜더스를 강력하게 위협하는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안우진·이승호 같은 젊은 투수들이 마운드에 버틴다고 해도 지금의 성적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오프 시즌을 돌아보면 SSG는 스토브리그(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에서 소속 선수들(박종훈·문승원·한유섬·김광현)의 다년 계약을 추진하면서 무려 331억원을 썼다. 히어로즈는? 단 1원도 쓰지 않았다. 히어로즈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지속되면서 팀 운영비를 대기에도 버거웠다는 게 야구계 중론이다. 박병호에게 야박할 수밖에 없던 이유도 자금난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해마다 80억원가량의 중계권료 등을 배분받지 못했다면 더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구단 연봉만 봐도 그렇다. 히어로즈의 평균연봉은 1억417만원으로 세대교체 중인 한화 이글스(9052만원) 다음으로 적다. 리그 평균(1억5259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올 시즌 승수에 따른 선수 몸값만 놓고 보면 히어로즈가 단연 가성비 최고의 팀이 된다. 대표적인 ‘저비용 고효율’ 팀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고비용 저효율’ 팀이 넘쳐나는 KBO리그에서는 참 드문 사례다. 물론 해마다 선수 유출을 겪고도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낸 두산 베어스도 있으나 두산은 김재환 계약(4년에 115억원)처럼 쓸 때는 또 쓴다.

몸값 높은 주전 없어서 선수 기용 자유로워

혹자는 히어로즈의 시스템 야구를 얘기한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구축된 시스템 야구가 이어지면서 내외부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팀이 됐다는 것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히어로즈는 붙박이 주전이 있는데도 신인 드래프트(선수 선발) 때 그 포지션을 또 뽑는다. 비슷한 포지션의 김하성·임병욱을 같은 해에 뽑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실 히어로즈에 ‘붙박이 주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하다. 개막전(4월2일 롯데 자이언츠전)과 최근(6월12일 기아(KIA) 타이거즈전)의 선발 라인업을 비교하면 이정후, 푸이그, 김혜성, 이지영만 붙박이로 있다. 이용규처럼 부상으로 빠진 선수도 있지만 라인업 절반 이상이 두 달 사이 바뀌었다. 히어로즈에서 과거 성적은 그저 참고자료일 뿐. ‘반드시 주전으로 써야 할’ 몸값 높은 FA 선수가 없다는 것이 선수 기용을 자유롭게 한다. 팀 내 FA 야수가 많으면 선발 라인업은 고착되고 유연성은 그만큼 떨어진다.

한 야구해설위원은 이에 재밌는 해석을 내놓았다. “‘원팀’이 아닌 게 오히려 히어로즈의 장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은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끈끈한 조직력이 아닌 선수 개개인의 욕망이 뭉쳐 시너지효과를 내며 팀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해석이었다. 하긴 히어로즈에서는 개인 능력치가 더 강조된다.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되고, 종국에는 방출된다. 반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더 큰 곳에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진다.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이 그랬다. 히어로즈를 거쳐 메이저리거가 됐다. 이들은 다른 선수들에게 또 다른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정후가 그 예다. 이정후 또한 포스팅(공개입찰) 자격을 갖추면 미국 혹은 일본 무대에 도전할 것이다. 김혜성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한다. 안우진도 현재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관심을 받고 있다. 히어로즈팀 내에는 이미 포스팅을 통한 국외 진출 문화가 자리잡았고, 구단 또한 이들의 도전을 막지 않는다. 선수들의 목표의식을 자극할 이만한 장치가 어디 있을까.

물론 이는 극히 한정된 상황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거듭 자신을 증명해내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도 각오해야 한다. 2021년에 서건창이 그랬고, 2022년에는 박동원이 그랬다. 예비 FA를 미리 트레이드하는 것인데, 히어로즈는 이들을 대체할 선수를 선제적으로 키워낸다. 김혜성이, 김재현(포수)이 그렇게 자리잡았다. 이 또한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하겠다.

야구계 빌런 혹은 히어로

히어로즈 구단을 보면 ‘정거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 잠시 발을 멈추는 곳 같은. 실적을 내는 누군가는 언젠가는 떠나기에 몇 년 전부터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그런 곳 말이다. 그동안 참 많은 선수가 히어로즈를 떠났다. 그래서 선수도 팬도 팀에 깊게 뿌리 내리기를 주저하는지 모르겠다. 감정 없는 시스템의 무정함이랄까. 성적이 나면 나는 대로, 나지 않으면 나지 않는 대로 많은 궁금증을 던져주는 히어로즈 구단이다. 야구계의 ‘빌런’인지 ‘히어로’인지는 답이 안 서지만.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인생 뭐, 야구’ 시즌2를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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