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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포용 대상을 확대해가는 것이 복음
등록 2020-09-26 14:13 수정 2020-10-05 14:24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최대 걸림돌은 보수 개신교계 일부의 반발이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가 ‘동성애’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금지했다는 논거가 따라붙는다.

성서학자 박경미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는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한티재 펴냄)에서 그런 주장이 “죽은 문자에 대한 우상 숭배”라고 통렬하게 논박한다. 성서는 “인간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담은 책이지만 과학적,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으며, 따라서 “오늘의 윤리적 도전과 현실 인식에 따라 비판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신·구약 원문뿐 아니라 성서 시대의 역사적 사실과 사회·경제적 배경, 나아가 생물학과 심리학 등 과학적 연구 성과까지 파고들며 실체적 진실을 좇고,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에 갇힌 오류를 넘어 참뜻을 찾는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을 ‘발견’한다

동성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자연에서도 기린·코끼리·펭귄을 비롯해 동성애를 즐기는 동물이 확인된 것만 해도 450여 종에 이른다. 문헌 연구에 따르면, 이성애/동성애의 명확한 구분과 성소수자에 대한 체계적 억압은 19세기 말 이후의 현상이며, 멀리 잡아도 12세기 ‘라테란 공의회’(로마의 라테란 대성당에서 열린 공의회. 1123∼1517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열렸다) 이후다. 이전엔 사람들이 “자신을 특정한 성적 지향으로 구분하지 않고 다양하고 친밀한 성적 관계”를 즐겼다. 기독교 영향 이전의 멜라네시아 문화권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이 그랬고, 고대 그리스에선 “남성 간의 사랑을 남녀 간 사랑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답고 차원 높은 것으로” 여겼다.

‘동성애’(호모 섹슈얼리티)가 성적 지향을 가리키는 용어로 처음 쓰인 것은 1869년 헝가리 의사가 남성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에 반대하면서였다. 사람의 성적 지향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싹트기 시작한 시점이다. 2004년 미국 소아과학회는 “성적 지향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며,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고 결론지었다.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작용해 성적 지향이 발현되며, 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성적 지향을 “선택한 게 아니라 ‘발견’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박 교수는 성서와 사료들에 대한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동성애에 대한 기존 인식의 오류와 왜곡을 바로잡고 성서 메시지의 본디 의도에 걸맞은 해석을 펼쳐 보인다. 성서에서 동성애를 죄악시하고 “집단학살이라는 잔혹한 벌”로 단죄한 기록은 창세기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 처음 나온다. 그런데 17세기 영국 흠정역 성서(영국 국왕 제임스 1세의 주도로 나온 영어 성경)에서 ‘남성 간 성행위자’로 옮겨진 낱말 ‘소도마이츠’(Sodomites·소돔 사람들)의 히브리 원어는 ‘카데슈/카데샤’로, 본디 풍요를 상징하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던 신전의 남녀 사제를 가리킨 말이었다. 일종의 ‘신전 매춘자’인데 이들이 동성 간 성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외려, 구약성서와 유대교 전통에서 ‘타락한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는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고 적대하며, 부(富)를 가난한 사람과 나누지 않는 악행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온 손님들에게 성폭력을 일삼은 행위는 외부인과 약자에 대한 폭력이었다. 지은이는 고대 세계에서 동성 간 강간은 승자가 패자에게 힘을 과시하고 모욕하는 가장 난폭한 처우였다는 견해도 소개한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 깔린 코드는 ‘이방인에 대한 태도’임에도, 기독교인들은 그 설화를 ‘동성애 심판’의 신화적 근거로 만들었다고 본다.

지은이는 특히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위기는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하느님의 축복을 동일시하고 물질적 성공과 풍요를 복음과 맞바꾼 데서 비롯”했다고 질타하며, “배제와 증오가 아니라 끊임없이 포용의 대상을 확대해가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사실에 스며든 차별을 직시해야

철학자 김진석 교수(인하대)는 <진보는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개마고원 펴냄)에서 현대사회의 차별과 평등 문제가 더욱 세분화하고 복잡해지며, 때론 서로의 권리가 확장되면서 충돌하는 미시적 양상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은 그렇게 나왔다.

김 교수는 “법을 통해 일정 범위에서 사회적 차별과 갈등을 해결할 순 있지만, 모든 차별이나 권력관계가 법으로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며, “‘좁은 의미의 차별’과 ‘넓은 의미의 차별’을 나눠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자는 법으로 규제와 개선이 가능한 ‘나쁜 차별’이다. 반면, 후자는 “사회에서 여러 이유로 정당하다고 인정·묵인되거나 심지어 생산되는 차별”인데, 근대적 공공성과 이성을 믿는 쪽에선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사례는 젠더, 지방, 학력, 이주민 등을 이유로 한 차별에서 흔히 발견된다. 능력주의 신화도 한몫한다.

지은이는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선 “(착한 의지와 정치적 올바름에 기대는) 거대담론에 치우치기보다 사실에 스며든 폭력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사회 시스템에 의한 갈등 관리를 원론적 방법으로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해결 대안은 일단 포기”한다고 밝혔다. 먼저 폭력적인 팩트와 위험이 확대되는 현실을 마주 보고 발언하는 “악역”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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