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은 미국 최대 규모의 공익 로펌이다. 민사소송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한다. 의뢰인 대부분은 저소득층이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뉴욕답게 여러 인종, 국적, 종교, 언어, 성정체성 등을 가진 이가 찾아온다.
성소수자와 시각장애인이 어우러진 로펌
로펌 사무실에 온 의뢰인을 가장 먼저 맞는 대기실에는 영어뿐 아니라 세계 각국 언어로 ‘환영합니다’라고 쓴 포스터가 걸려 있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이에게 통역을 제공한다는 안내문도 여러 언어로 쓰였다. 첫 상담에서 의뢰인에게 꼭 묻는 것 중 하나는, 혹시 의뢰인이 남성과 여성 대명사인 히(He)나 시(She)가 아닌 제3의 성을 이르는 대명사 데이(They)로 불리기를 원하는가다. 아무리 소수라 할지라도, 이분법적 남자/여자 성별 구분에 맞지 않는 정체성을 가진 의뢰인에게 당신도 다른 의뢰인들처럼 똑같이 존중받고 차별 없이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모든 채용 공고에는 “우리는 평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합니다. 유색인종, 여성, 장애인,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40살 이상인 사람의 지원을 환영하고 장려합니다”라는 문구가 꼭 들어간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 고용 과정에서 소수자 차별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건 같이 일하는 동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속한 부서의 동료는 대부분 유색인종·여성이고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들도 있으며 시각장애인 변호사도 있다. 이렇듯 소수자에게 균등한 기회와 고용을 보장하는 건 여러 억압과 차별에 맞서 사회·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공익 로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취업, 주거, 교육, 공공시설 이용 등에 소수자를 차별하는 일이 불법임이 법률에 분명히 명시됐다.
그럼에도 아직 법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한다. 소수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로부터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성소수자 차별은 곳곳에서 여전히 일어난다. 에이미 스티븐스라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겪은 일이 대표 사례다.
1960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난 에이미 스티븐스의 원래 이름은 앤서니 스티븐스다. 태어났을 때 남자 성별로 지정돼 남성으로 키워졌다. 하지만 5살 때쯤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고, 그 막연한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과 맞지 않는 몸에 갇혀 있다는 생각으로 더 분명해졌다. 그러나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에이미는 그런 얘기를 함부로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에이미는 계속 주어진 운명처럼 남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커밍아웃한 뒤 해고돼
에이미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으로 계속 고민했다. 큰 절망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 방황을 눈치챈 아내의 권유로 상담받으면서 비로소 에이미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받아들였다. 커밍아웃했을 때 가장 먼저 가까운 가족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수많은 트랜스젠더와 달리, 다행히 에이미는 아내와 가족들의 이해와 지지 속에 자신의 진정한 성정체성인 트랜스젠더 여자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에이미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직장이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근교의 한 장의업체에서 일하던 에이미는 직장에서는 계속 남자로 행세해야 했다. ‘이중생활’에 괴로워하며 자살까지 시도했던 에이미는 마침내 어렵게 용기 내어 직장 동료들과 고용주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혔다. 6개월 이상을 썼다 지웠다 고민한 끝에 보낸 편지에서 에이미는 직장에서도 앤서니 스티븐스가 아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 에이미 스티븐스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용주는 남자가 여자 복장을 하고 직장에 나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에이미를 해고했다. 에이미가 살던 미시간주는 트랜스젠더 차별을 명시적으로 불법이라고 규정한 주법이 없는 주였다. 이 때문에 에이미는 연방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 문을 두드렸고, 에이미의 해고를 연방법이 금지하는 성차별이라고 본 고용기회평등위원회는 고용주를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잘 알려졌듯이, 미국 연방 민권법(The Civil Right Act of 1964) 제7조는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 성별에 따른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1964년 제정된 이 법은 성별(Sex)이 아닌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나 성정체성(Gender Identity)은 불법적인 차별의 근거로 명시하지 않는다. 현대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분수령인 스톤월 항쟁은 민권법이 제정되고 5년이 지난 1969년에 일어났고, 동성애자를 연방공무원 채용에서 배제하는 반동성애자 차별법도 1975년에야 폐지되는 등 당시 역사적 경험의 한계가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후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법원의 판결과 주법들은 연방 민권법 제7조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성소수자를 명시적으로 보호하는 연방법이 없고,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주법이 미국 50개 주의 절반도 되지 않는 21개 주에서만 제정된 상황에서 에이미처럼 트랜스젠더이거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차별에 맞서 싸운 에이미의 용기 덕분에, 민권법 제정 이후 반세기가 더 지난 2020년 6월15일 미국 대법원은 민권법 제7조의 성차별 금지가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까지 포함한다고 판결했다. 생물학적 성별에 근거한 차별,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근거한 성소수자 차별을 따로 떼어내 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미국의 경험에 비춰볼 때, 최근 한국에서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불법이라고 명시한 것은 그동안 전세계에서 진행된 성소수자 인권투쟁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라 더더욱 환영할 일이다.
에이미 스티븐스는 대법원 판결을 불과 한 달 앞둔 2020년 5월12일, 59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트랜스젠더가 법의 보호 안에 있음을 확인해준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을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에이미가 남긴 말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다.
“인류의 일원은 누구나 똑같은 기본권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성소수자들이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우리를 취급해달라는 것뿐입니다.”
남수경 미국 뉴욕 공익변호사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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