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2019년 규모를 보면, 한국의 명목GDP는 세계 10위다. 실질GDP가 경제성장 속도를 보여준다면 명목GDP는 경제의 크기를 나타낸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열 번째로 부유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GDP는 한 국가(집단)의 재화와 서비스 생산 총량인 까닭에, 구성원 개개인의 소득과 삶의 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경제력이 커진다고 인권 감수성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과 이윤 극대화를 좇는 극한 경쟁 속에서 장애인·여성·고령자·비정규직·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와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더 노골적으로 작동하기 일쑤다. 자신의 정체성이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소수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인권과 평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최근 수십 년 사이 인권 선진국들이 앞다퉈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는 같은 효력의 집단규약을 제정하고 있다. ‘경제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을 뺀 대다수 나라가 이미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00~2006년 새 ‘차별 금지에 관한 일반 지침’을 잇달아 만들어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못박고, 회원국은 5년마다 ‘이행 보고서’를 내도록 의무화했다.
우리나라도 남녀고용평등법, 연령차별금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일부 개별법은 이미 시행 중이다. 그러나 성별(남녀)과 성적 지향(성소수자)에 따른 차별 금지의 법적 보호만 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소수자 인권과 평등에 관한 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에 걸맞은 자리를 찾아가기까지 아직 할 일이 많다._편집자주
한국의 양성평등과 성소수자 포용력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중하위권 수준이며, 일부 항목은 밑바닥을 맴돈다. 한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2019년 12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젠더 격차 보고서 2020’을 보면, 한국은 ‘젠더 격차 지수’(GGI)가 0.672로 전체 평균 0.686에 못 미치며 조사 대상 153개국 중 108위에 그쳤다. 세계경제포럼이 2006년부터 조사하는 GGI는 젠더(성적 정체성)에 기반한 불균형 정도를 0~1점 척도로 표시한 것으로, 1에 가까울수록 격차가 좁다는 뜻이다. 핵심 평가 지표는 네 가지로 △경제활동 참여·기회 △교육 성취 △건강·수명 △정치적 권한이다. 특히 한국은 2006년 첫 조사에서 격차 지수가 0.616으로 92위였는데, 이번엔 지수가 개선됐음에도 세계 순위는 외려 후퇴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다른 나라들의 젠더 격차 해소 속도가 한국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의미다. 흔히 선진국 그룹으로 인식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37개 회원국 중 35위였다.
이런 사정은 성소수자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윌리엄스연구소가 2019년 10월 내놓은 ‘174개국의 LGBT 사회적 수용도’ 연구 조사를 보면, 한국은 10점 척도에서 4.9점으로 67위에 그쳤다. ‘글로벌 성소수자 수용 지수’(GAI)는 한 나라 안에서 LGBT와 그들의 권리에 대한 대중의 태도와 신념으로 표현되는 사회적 태도를 보여준다.
연구소는 조사 대상 174개국 중 131개국에서 1981년 첫 조사 이래 30년 동안 꾸준히 GAI가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도 2000년 이후 99위(2000~2003년) → 131위(2004~2008년) → 83위(2009~2013년) → 67위(2014~2017년)로 나아지고 있긴 하다. 그러나 OECD 37개 회원국만 놓고 보면 한국은 공동 30위로 꼴찌에서 다섯 번째다.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 격차도 주요국 가운데 꼴찌다. OECD가 공개한 ‘남성 정규직 임금 중간값 대비 여성 임금 격차’의 최신 자료를 보면, 한국의 성별 임금 차이는 32.5%로 OECD 평균값 13.0%의 2.5배나 됐다. 한국 바로 위인 일본(23.5%)과도 상당한 차이를 보여,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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