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똘똘 뭉친 암탉 다섯 마리

수탉도 사람 손에도 꿈쩍 않고 모여서 알을 품고 칠십다섯 마리 병아리를 낳아
등록 2019-09-04 10:19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할머니는 길조, 양반, 영물이라는 말을 자주 쓰십니다. 사람은 대개 다 양반이라고 합니다. 누구와 싸우고도 잘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나쁜 것보다 내가 나빴다고 하십니다. 짐승은 대개 영물이라서 마구 잡거나 죽이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꽃만 예쁘게 피어도 길조라고 하십니다. 곡식이 잘되거나 짐승이 잘되어도 길조라고 하셨습니다. 그해는 할머니 칠십 평생에 기상천외한 길조가 생겼습니다.

모아두었던 알을 새로 넣어주고

이른 봄 닭들이 다 알을 낳으니 알둥주리가 모자라서 임시로 넓은 광주리에 왕겨를 깔아 닭장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습니다. 광주리에는 이놈 저놈 들어가 알을 낳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토종 암탉 다섯 마리가 광주리에 엎드려 나오질 않습니다. 다른 닭들을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힘센 수탉이 구구거리며 광주리에 들어가 암탉을 짓밟고 다닙니다. 암탉들은 최대한 날개를 부풀리고 몸을 낮추고 눈에 독기를 뿜으며 사납게 수탉을 쪼아댑니다. 혼쭐이 난 수탉은 다시는 광주리 옆에 얼씬도 못합니다.

한 마리씩 분산시켜 알을 안기려고 닭을 들어내면 도로 그 자리에 들어가 꼼짝도 안 합니다. “이놈들아, 이왕 안으려면 똑같은 날 새끼를 까야 할 것 아니여.” 할 수 없이 품고 있던 알을 치우고 모아두었던 알을 한 마리에 열다섯 개씩 계산해 온 식구가 나서서 닭한테 쪼여가며 새로 넣어주었습니다. 체구가 작은 암탉들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붙어 앉아 알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알을 열심히 품습니다. 먹이도 사흘에 한 번씩 나와 먹는데, 세 마리는 알을 품고 두 마리씩 나와서 잠깐 먹이를 먹고 들어갑니다. 이웃 사람들이 이변이 났다고 자꾸만 와서 들여다봅니다.

알을 넣어준 지 21일이 되자 광주리에서 삐비비… 제제제… 소리가 나며 예쁜 병아리가 어미 날개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이 보입니다. 암탉 다섯 마리는 한사코 병아리를 품속으로 거둬들입니다. 병아리가 보이기 시작하고도 이틀을 더 광주리를 떠나지 않고 들어앉아 있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암탉들은 알의 손실이 하나도 없이 칠십다섯 마리의 예쁜 병아리를 데리고 광주리 밖으로 나왔습니다. 병아리를 잘 까면 그해 농사가 잘된다는데 길조도 이런 길조가 없습니다. 어미 닭 다섯 마리는 닭장을 온통 다 차지하고 다른 닭들이 병아리를 쳐다도 못 보게 하고 똘똘 뭉쳐 아주 병아리를 잘 키웁니다.

기존 큰 닭들은 다 팔고 몇 마리는 잡아 가족이 몸보신을 하였습니다. 아예 닭장에는 어미 닭 다섯 마리와 병아리만 남겨두었습니다. 닭장 속에서 여름을 나니 병아리가 다 큰 닭이 되었습니다. 어미 닭들이 하도 의리가 좋으니 새끼들도 의리가 좋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저 닭은 닭일 뿐 수탉들은 서로 서열 싸움을 하느라고 매일 피 터지게 싸웁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내내 갇혀 있던 닭들을 풀어놓았습니다. 밭에 떨어진 낟알들을 주워 먹고 메뚜기도 잡아먹고 풀도 뜯어 먹고 닭들은 갇혀 있을 때보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통통하게 오릅니다. 어머니는 씨암탉을 따로 구분하여 무척 좋아하시고 아낍니다. 씨암탉은 다리가 통통하게 살이 너무 올라 아기작아기작 걸어다닙니다. 사람들은 닭다리가 아주 맛있게 생겼다고 농을 합니다.

정말로 난챙이를 잡을 줄이야

난챙이(새매, 하늘 높이 떠 움직이지 않고 날개만 파닥거리는 모습이 하도 낭창낭창해서 붙여진 이름)가 우아하게 비행하더니 높이 떠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면서 한자리에 고정하고 닭들을 노립니다. 어머니는 얼른 닭들을 불러들여 닭장 속에 가두었습니다. 닭들을 가둬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계절입니다. 잘 살펴보고 난챙이가 보이지 않을 때 닭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신경을 빠짝 쓰고 일하는데 난데없이 난챙이가 일직선으로 번개처럼 내리꽂으며 어머니의 씨암탉을 채가지고 날아갑니다. 난챙이는 어머니의 씨암탉을 발 사이에 끼고 날아가 빤히 보이는 강 건너 앞산 벼랑 위에 앉아 맛있게 뜯어먹습니다. “난챙이 이놈, 우리 식구도 아까워서 안 잡아먹는 씨암탉을 잡아가다니. 그것도 제일 예쁘고 실한 놈을 잡아갔네.” 어머니는 엄청 약이 올라 얘기하고 또 합니다. 그놈의 난챙이는 잠도 안 자는지 이른 아침에도 비호처럼 나타나 꼭 어머니의 예쁜 씨암탉을 채갔습니다.

“이러다가는 아까운 씨암탉이 거덜이 나겠다. 내가 저놈의 난챙이를 잡아 치우고 말아야지.” 벼르고 벼릅니다. 어머니는 일부러 산에 가서 가늘고 긴 물푸레 장대를 해왔습니다. 아버지는 장대로 하늘을 나는 난챙이를 잡으면 신문에 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루는 난챙이가 하늘에 떠서 날지 않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한 군데 고정하고 닭들이 노는 것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난챙이가 번개같이 내리꽂으며 닭을 낚아채는 순간입니다. 어머니는 날아오르려는 난챙이보다 더 빠르게 장대로 후려쳤습니다. 난챙이가 뚝 떨어졌습니다.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습니다. 정말로 난챙이를 잡을 줄 몰랐습니다.

닭은 이미 죽었습니다. 난챙이는 오른쪽 날개 끝이 살짝 부러졌는데 날지 못합니다. 발톱을 세우고 위엄을 부려보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밭에서 일하시던 할머니도 아버지도 쫓아오셨습니다. 할머니는 난챙이는 영물이어서 잡으면 안 된다고 잘 고쳐서 보내주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다 아주 얇게 깎아서 부러진 날개 양쪽에 대고 삼베 실로 감아주었습니다. 사람도 뼈가 부러지면 버드나무를 깎아 대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붙었습니다.

닭장 옆에 칸을 막고 난챙이를 가두었습니다. 난챙이 덕분에 손님이나 오면 잡던 씨암탉을 먹게 되었습니다. 괘씸하지만 난챙이한테는 닭 대가리와 내장을 생으로 주었습니다. 오빠들이 물고기도 잡아다 주고 개구리도 잡아다 주면 잘도 먹습니다. 그래도 난챙이는 닭을 잡아먹고 싶어서 늘어진 날개를 끌고 사납게 눈을 뒤룩거리며 닭들을 들여다보고 널름거립니다.

난챙이 덕에 씨암탉을 먹네

일주일 만에 버드나무 보호대를 갈아 매주었습니다. 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주일이 지나 버드나무 보호대를 풀었습니다.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다 넣어주고 닭장 문은 열어놓았습니다. 갈 만하면 언제든지 가라고. 어머니는 “다시 씨암탉을 채가면 그때는 정말 가만 안 둔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난챙이는 그동안 정이 든 우리 가족을 뒤로하고 씩씩하게 날아갔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