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석’.
8월18일 오후 3시께. 잠실대교 옆 한강 한가운데서 열심히 강남(잠실수중보)을 향해 헤엄치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공기주머니(부이)와 가이드라인이 얽힌 것이었다. 뒤따라오던 사람, 가이드라인, 그리고 공기주머니가 엉키면서 물안경이 벗겨졌다.
“악! 꼬르륵…”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데 순간 눈과 입, 코로 한꺼번에 물이 들어왔다. 뜨거운 늦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신경이 곤두섰다.
“어푸어푸.” 강물을 두어 모금 더 들이켰는데 생각보다 물맛이 신선했다.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비리지도 짜지도 않고 딱 알맞은 온도의 상쾌함. 세상을 떠나는 이들은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이승의 기억을 잃는다더니 나는 한강 물을 마시고 조금씩 두려움을 잊었다.
침착하게 가이드라인을 겨드랑이에 끼고 발을 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많은 사람이 가이드라인에 매달려 쉬거나, 가이드라인을 붙잡은 채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었다.
편집장이 옆구리 ‘쿡’, 떠밀리듯“재호씨, 끝까지 가는 건 또 언제 할 거예요?”
편집장이 물어볼 때마다 옆구리가 콕콕 찔리는 것 같았다. 아팠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미약하리라.” 지난해 5월13일 지리산 100㎞ 옥스팜 트레일워커, 5월19일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를 완주하고 깨달은 한 가지 사실. 끝까지 가는 건 정말 힘들다는 것.
“심신의 한계 때문에 규칙적으로 찾아뵙기 어렵다는 점과 끝까지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라고 예고했지만, 끝까지 갈 자신이 없는 시작은 아무래도 끌리지 않았다. 해가 바뀌도록 출발점에 서지 못한 이유다.
‘매주 돌아오는 기사 마감, 대학원 수업까지 듣느라 이미 내 삶에 뭘 더 할 여유가 없어.’ 스스로 위로했지만 뭔가 찝찝했다. ‘끝까지 간다’는 내 마음속 변비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회사 선배가 “철인3종경기를 준비해보지 않겠어?” 제안했다. 솔깃했다. 철인(鐵人). 영어로는 ‘아이언맨’. 영화에서 자신이 발명한 강화 슈트를 입고 악당들과 싸우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떠올라 흐뭇했다. 기획연재 ‘끝까지 간다’로 화려하게 복귀하기에 안성맞춤인 목표로 보였다.
무작정 철인3종경기에 등록했다. 경기 내용을 살펴봤다. 오픈워터 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 오픈워터가 뭐지?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바다나 강, 호수에서 하는 장거리 수영 경기. 수영계의 마라톤. 그런데 나는 수영장 25m도 한 번 왕복하면 숨이 차 씩씩거리는데 1.5㎞라니. 그것도 한강에서? ‘아이언맨’이 되기에 앞서 먼저 ‘아쿠아맨’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두려움을 떨치고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강에서도 잘 헤엄치는 아쿠아맨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집 근처 구립 수영장 레슨에 등록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매달 돌아오는 등록일엔 오전 일찍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금방 정원 마감이 됐다.
수영을 ‘너튜브’로 배우다레슨 받는 걸 포기하고 ‘너(You)튜브’를 보며 스스로 자세를 교정해보기로 했다. 밤에 잠들기 전 휴대전화로 수영 선수들 채널에 접속해 수영 자세 교정 영상 등을 보며 연구했다.
아침, 점심, 짬이 날 때마다 자유수영으로 훈련했다. 100m, 200m… 조금씩 거리는 늘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느렸다. 100m에 4분 정도 걸렸다. 철인3종경기에선 커트라인이 있어서 1.5㎞에 45분 이상 걸리면 실격 처리된다. 100m에 4분이면 1.5㎞에 42분. 오픈워터에서 물살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고 가정하면 완주가 불투명해 보였다.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는데 장거리 수영을 연습하기에 구립 수영장은 적절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장거리 수영을 위해 천천히 헤엄치면 뒤따르는 이가 내 발을 쓰다듬는 일이 많았다. 쓰다듬는 사람, 쓰다듬어지는 사람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계속됐다.
한산하고 조용한 수영장을 수소문한 끝에 대학 내 수영장이 일부 시간대에 몹시 한산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평일 저녁과 주말 점심께 가면 거의 한 개 레인을 한두 명이 쓸 정도로 쾌적했다. 집에서 거리는 좀 있지만 감수할 만했다.
훈련을 거듭하면서 한 번에 완영(느린 수영)하는 거리도 늘어났고, 속도도 빨라졌다. 자세 교정을 받지 못해 자세는 좋지 않았다. 왼팔접기가 잘 안 됐다. 왼팔은 접영이고, 오른팔은 자유영인 기형적 자세가 됐다.
자세는 불안정했으나 장거리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8월18일 열리는 ‘한강크로스스위밍챌린지’에 등록했다. 이 대회는 서울 송파구수영연맹이 주최한 것으로 한강 잠실대교 수중보 남단에서 북단까지 역영한 뒤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다. 대회를 앞둔 마지막 수영 훈련(8월16일) 기록은 1750m에 40분 정도 걸렸다. 평균속도는 2분20초/100m였다.
대회를 앞두고 계속 비가 내렸다. 강물이 불어나 물살이 세지 않을까 걱정됐다. 차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다 무심코 바라보니 넘실대는 한강 물이 마치 파도 같았다.
다행히 대회 전날엔 비가 오지 않았고, 대회 날도 맑았다. 대회 장소인 서울 송파구 잠실수중보 인근 잠실야외수영장엔 피서객이 가득했다. 선수 등록을 하고, 수영복을 입은 뒤 몸을 풀었다. 잠실대교를 바라봤다. 잠실대교 지점엔 낙차가 있었다. 강 상류에서 불어난 물이 흐르다가 잠실대교에 오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그제야 강에 뛰어든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 묘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오리발 착용한 분은 앞으로 오시고, 하지 않은 분들은 뒤로 가세요.” 안내원이 소리쳤다. 역시 너튜브에서 보고 배운 대로 최대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오리발을 신지 않은 나는 맨 뒷줄에 섰다.
가장 늦게 출발한다고 했지만 다른 선수들과 계속 부딪쳤다. 이것은 수영인가 격투기인가. 고개를 물 밖으로 내 숨 쉴 때 최대한 주위를 살피며 피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누구의 손인지 발인지 모르는 것들이 나를 마구 때렸고, 내 손발도 어딘가에 가닿았다.
앞으로 가기 위해선 앞뒤가 구분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전, 후, 좌, 우가 계속 헷갈렸다. 수영하다가 물살에 휩쓸려 왼쪽으로 가는 날 발견하고 일부러 오른쪽으로 헤엄치려 노력했다. 그러다보면 어느 지점에선 너무 오른쪽으로 가 있는 날 발견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과 계속 부딪혔다. 물속에 있는 우리는 알지 못했다. 누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렇게 수시로 부딪히면서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장거리 훈련을 꾸준히 해서인지 생각보다 숨은 차지 않았다.
위기는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면서 결승점이 보일 때쯤 왔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가이드라인 반대편으로 역주행하는 나를 발견했다. 가이드라인을 넘어 제자리로 돌아오려 했는데 가이드라인 줄과 공기주머니 줄이 꼬이면서 수경이 벗겨졌다.
상체가 밑으로 가라앉고 하체가 물 밖으로 나와 몸이 뒤집혔다. 몇 번의 허우적거림 뒤에 겨우 자세를 바루고, 가이드라인에 매달려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숨 고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뒤에서 가이드라인을 잡고 전진하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공기주머니를 안고 발차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다시 헤엄을 시작했다.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진 걸 느꼈지만 이제 와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승점이 다가올 때쯤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배영으로 오세요.” 안내원이 소리쳤다. ‘저 배영은 잘 못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누군가 건넨 손을 잡고 일어서니 그제야 발이 땅에 닿았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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