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길은 달리기와 걷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둘을 뒤섞어, 달리기를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어찌 치욕스러운 달리기를 계속하려 하십니까.”
“상헌 대감은 어찌 길을 앞에 두고 나아가지 않고 중단하려고만 하십니까. 무엇이 달리기입니까. 원칙을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갈 수 있는 자가 진정한 ‘러너’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의 덕양산이 이렇게 먼 길이었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데, 내 안의 ‘명길’과 ‘상헌’은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목표 시간 안에 뛸 수 없는 하프마라톤을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해야 하나를 놓고서다.
양갈비가 먹고 싶던 건 아니었다지난해 10월 중순이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가게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모모’가 내기를 제안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알게 된 모모는 15년째 시간이 나면 같이 농구를 하는 친구다. 체격과 운동신경이 고만고만해서 같이 시합하는 걸 즐겼다. 성격은 다르지만 내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기에서 지는 것을 죽기만큼 싫어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농구 시합, 컴퓨터게임, 모노폴리(보드게임) 등 각종 내기에서 한번 지면 그다음 만날 때까지 연락해서 비웃으며 괴롭혔다. 그래서 내기에서 지면 몇 번이고 승부에 불복해 연장전을 외치다 밤을 새운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살짝 취한 내가 “요즘 한강변을 달리는 게 너무 좋아”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최근 달리기 기록을 보여줬다. 그러자 모모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내가 제안을 하나 하겠어”라고 불쑥 말했다. 직감했다. 내기를 걸려는 것이다.
“자고로 달리기를 시작했으면 마라톤은 뛰어야 달린다고 할 수 있지 않나?” 맞는 말이다.
“내가 너에게 내년 목표를 줄게. 마라톤은 힘들 테니 일단 하프마라톤을 완주하자. 1시간40분 안에 뛰면 양갈비를 사줄게.” 인터넷 검색을 하던 모모는 “5월 서울신문하프마라톤이 어떠니. 6개월이면 충분하겠지?”라고 했다.
전리품인 양갈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양갈비가 먹고 싶었으면 하프마라톤 대회 참가비(5만원)로 그냥 사먹으면 될 일이다. 다만 내기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평소 조깅을 하면 5km 정도는 가볍게 뛰었는데 이때부터 거리를 늘려나갔다. 6개월을 훈련하자 15km 정도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됐다. 스스로 원칙을 세웠다. ‘달리는 중간에 걷지 않는다, 앞선 이의 등을 보고 뛰지 않는다, 어제보다 빨리 달린다’는 세 가지였다. 원칙은 꽤 잘 지켰다. 1시간40분 하프마라톤 완주는 무난해 보였다. 모모를 비웃으며 양갈비 먹을 상상만 해도 너무 신났다.
5월19일 오전 9시, 서울신문하프마라톤대회의 출발점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 평화의광장에 섰다. 발목과 팔목을 돌리고 몸을 푸는데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평소보다 유연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5월 둘쨋주 주말 비 내리는 지리산에서 ‘100km 옥스팜트레일워커’를 완주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20km를 달린다는 건 과욕이었다.
경쾌한 뒷모습과 고통에 찬 앞모습‘지난주에 100km를 걸었으니 20km 정도는 가볍게 뛰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용불용설’은 달리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출발도 하기 전에 무릎이 뻣뻣하게 굳었다. 오른쪽 발바닥이 내디딜 때마다 아팠다. ‘이건 족저근막염 의증이야. 충분히 쉬고도 상태가 안 좋아지면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해.’ 스스로 진단까지 마쳤다.
지난밤에는 야근까지 했다. 주간지 기자의 금요일 밤은 ‘불금’이다. ‘불타는 금요일 밤’이라기보다는 ‘불가역적 금욕’의 밤에 가깝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씻고 몸을 침대에 눕히니 이미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부랴부랴 광장에 나왔다.
1km를 달렸을 뿐인데 “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내가 뛰는 건지, 심장이 뛰는 건지, 고막이 뛰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내기에서 질 것 같다는 불안한 확신이 들자 우울했다.
또 다른 두려움도 엄습했다. 나름 잘 지켜온 달리기 3원칙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달리기에선 도저히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나를 앞지르는데 그들만큼 나는 힘차게 뛸 수 없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며 달린 게 처음이었다. 그들의 뒷모습은 경쾌했다. 뒤꿈치가 채 땅에 닿기도 전에 무릎이 올라갔고, 보폭이 넓었다. ‘완주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한없이 무거웠다. 5km 지점에서 만난 오르막길에서 이미 마음은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루한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그만두고 싶었다. 어제까지 내린 비가 고인 물웅덩이를 곳곳에서 만났다. 발이 젖었고, 마음도 무거웠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마음으로 터벅터벅 달리다 8km 지점에 들어섰을 때다. 선두 주자들은 이미 반환점(12km)을 돌아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경쾌했던 그들의 뒷모습과 너무 다른 앞모습 때문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거대한 두려움에 압도된 표정이었다. 그들이 나를 스쳐간 뒤 고개를 휙 돌려 다시 뒷모습을 보았다. 역시나 경쾌했다. 자신감에 가득 찬 뒷모습이었다. 앞모습과 뒷모습의 괴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엉겁결에 나도 반환점을 돌았다. 나를 뒤따르던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를 앞서던 사람들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온 얼굴에 웃음 띤 얼굴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휙 돌려 뒷모습을 봤다. 둔탁했다. 이 달리기를 완주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곧 주저앉을 듯한 사람도 있었다.
중부경찰서에 질 순 없지15km 지점에 접어들면서는 다리가 내 통제를 벗어났다. 몇 번이고 뜀박질을 멈춰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그때마다 그만두는 것을 생각했다. 순간, ‘중부경찰서’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경찰 아저씨(로 추정됨)가 총총 나를 앞질러 뛰어갔다. 승부욕이 솟구쳤다. 지고 싶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마지막 1km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결승점이 눈에 들어왔다. 더욱 빠르게 달렸다. 서너 명을 더 앞질렀다.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환희가 밀려왔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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