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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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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골뱅이

주천강에서 잡아온 골뱅이를 서울 집 동쪽 창가에서 키웠더니
등록 2019-07-12 11:2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골뱅이는 어두니골에도 많았고 다수리에도 많았습니다. 세상에서 골뱅이만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살아가는 데 걱정이 없었을 것입니다. 깊은 물에는 길쭉한 골뱅이가 살고 여울물 돌 밑에는 동그란 올뱅이(다슬기)가 삽니다. 강물의 특성상 얼마쯤은 여울물이 흐르다 다시 잔잔한 물로 이어져 흐릅니다. 우리 집 앞을 중심하여 위쪽은 삼치라우소 소용돌이를 지나 엉들멍들한 바윗돌에 부딪혀 깊고 사나운 여울물이 허옇게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같이 흘렀습니다. 우리 집이 가까워지면서 졸졸졸 소곤소곤 즐겁게 열심히 흘러가는 맑고 깨끗한 여울물에는 동그란 올뱅이가 많이 살았습니다. 어른 엄지손가락 마디만 한 올뱅이는 낮에는 돌 밑에 숨어 있습니다. 한낮에 올뱅이가 들어 있을 만한 납작하고 잘생긴 돌을 골라 돌 밑에 두 손이 넘칠 정도로 훑어 담았습니다.

깊은 물에는 골뱅이, 여울물에는 올뱅이

해가 설핏할 때면 올뱅이들은 돌 위로 올라와 구슬처럼 붙어 흐르는 맑은 물에 몸을 깨끗하게 씻는 것 같습니다. 올뱅이가 돌 위에 있을 때는 양쪽에 돌을 감싸고 중간으로 쓸어올려 그릇에 담으면 돌 밑에 있을 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건질 수 있습니다. 올뱅이는 골뱅이보다 좀 씁쓰름한 맛이 있어 건져다 절구에 척척 찧어 겨를 섞어서 닭도 먹이고 오리도 먹였습니다. 올뱅이가 허리나 무릎고뱅이(무르팍) 아픈 데 약이라고 가끔 사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건지러 오는 친척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널리고 쌔빠진(흔한) 올뱅이가 안 보인다고 온 강을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건지질 못합니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씩 신나게 올뱅이를 건져다주고 돈을 만져보는 기가 막히게 좋은 날들도 있었습니다. 친척들도 한 다래끼씩 건져주면 용돈을 쥐여주고 갔습니다.

우리 집 앞 아래쪽에는 길쭉하고 맛있는 골뱅이가 많이 사는 잔잔한 모래강이 흘렀습니다. 건너편은 강물이 깊은 소를 이뤄 배를 타고 마낙을 놓아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두니골은 보아구(지명)서 우리 집 앞까지 한 2㎞ 되는 모래강에 저녁때면 어른 손 구부렁이 같은 골뱅이가 여기저기 거뭇거뭇 드문드문 깔렸습니다. 큰 다래끼를 강가에 놓고 작은 종다래끼로 건져다 붓습니다. 어둑어둑할 때까지 건지면 큰 다래끼가 가득 찹니다. 큰 두멍 버럭지에 소금을 약간 풀고 해감을 시켜 다음날이면 골뱅이 막장국을 끓여 밥 말아 먹고 골뱅이를 실컷 까먹고 포식했습니다.

서울 천호동에 살던 때였습니다. 환갑 지나 친정에 갔다가 그때 그 시절만 생각하고 손주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물꼬내기도 잡아주고 골뱅이도 잡아주겠다고 용감하게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가 돌을 들추었습니다. 두 손으로 훑어내니 올뱅이도 없고 잔잔 물속에 골뱅이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20년 사이에 그 많던 골뱅이가 하나도 없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멸종 위기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 보니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진부 상류에 어느 대기업이 골프장을 만들고부터 농약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 노인들이 골프장 반대한다고 머리에 띠 두르고 물러가라 물러가라 했지만 아무 설명도 보상도 없이 그냥 쓱 밀고 들어와 골프장을 짓고 말았습니다.

꽁지를 돌리며 추는 골뱅이 춤

상류에서부터 흐르는 농약 때문에 여러 강에서 골뱅이도 물고기도 씨가 말랐습니다. 영월군 주천면 판운초등학교 근방에 큰외삼촌이 살고 계셨습니다. 외삼촌을 보고 가고 싶었지만 너무 늦어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외삼촌 집을 바라보며 “외삼촌 늦어서 그냥 가유. 다음에 오면 꼭 들러갈게유” 하며 지나치는데 큰외숙모가 마침 앞강에서 골뱅이를 건지고 계셨습니다. 주천강에는 아직 골뱅이가 지천이었습니다.

골뱅이를 금세 한 바가지 건져 서울로 돌아와 국을 끓여 먹고, 몇 마리는 장난삼아 큰 도자기 대접에 모래를 깔고 강돌도 놓아주었습니다. 동쪽으로 난 창가에 올려놓았습니다. 골뱅이는 낮에 모래 속에 들어가 보이지 않다가도 오후가 되면 모래밭에 길을 내며 기어다닙니다. 수염을 길게 빼고 돌 위에 올라붙어 있기도 합니다. 강에서 하는 모든 행동을 그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배춧잎을 띄워주었습니다. 골뱅이는 배춧잎 위에 올라와 배춧잎을 왕성하게 갉아먹습니다. 물이 금세 지저분해져서 사흘에 한 번씩 물을 갈아줍니다. 수돗물을 대야에 받아놓았다가 사흘이 지나서 물갈이를 해줘야 합니다.

창가에 해가 밝게 비치는 아침이었습니다. 물을 갈아주려고 보니 골뱅이는 상추에 얼굴을 붙이고 거꾸로 서서 꽁지 쪽을 빙글빙글 돌리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처음 한 마리가 시작하면 모두 꽁지를 휘저으며 열심히 춤을 춥니다. 다 같이 춤을 추면 물이 찰랑거립니다. 골뱅이가 재롱을 부릴 줄은 몰랐습니다. 먹으려고 잡을 때는 잘 몰랐는데, 제법 하는 짓이 귀엽습니다.

어느 날 물을 금세 갈아줬는데 뭔가 까만 것이 물 위에 둥둥 떠서 무슨 날파리가 빠진 줄 알고 건졌는데, 돌아서니 또 까뭇한 것이 둥둥 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골뱅이 새끼가 너무 가벼워서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암수 구별도 할 수 없는 골뱅이가 어떻게 새끼를 낳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여름이면 물웅덩이에 메밀달개미(메밀껍질)를 풀어놓은 것같이 골뱅이 새끼가 가득했는데, 도자기 그릇에서도 가득 차도록 새끼를 낳은 것입니다.

넓은 강에서 번성하고 번성하길

물 갈아주기가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새끼 골뱅이가 떠내려갈까봐 조리를 대고 걸러 물을 갈아줘야 했습니다. 골뱅이가 다 크면 어디에다 키울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골뱅이를 한강에다 풀어주자고 하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한강으로 가 너무 깊지 않은 모래밭에 골뱅이를 살며시 부었습니다. 아주 조심해서 부었는데도 엄마 골뱅이고 아기 골뱅이고 다 나뒹굽니다. 목을 허옇게 드러내고 죽은 척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참을 조용히 기다리니 골뱅이들이 일어나 딱지 붙은 얼굴을 모래밭에 대고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우리 가족은 넓은 강에서 번성하고 번성하라고 당부 당부하면서 돌아왔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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