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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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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건 꿀꿀이가 우리 집을 떠나던 날

큰오빠의 먹성 좋고 잘생긴 ‘미국 돼지’
등록 2019-05-23 12:08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큰오빠가 평창농고를 다닐 적의 일입니다. 짙은 송아지 빛이 나는 돼지 새끼 한 마리를 사과 궤짝에 담아서 새끼줄로 걸빵(멜빵)을 걸어 지고 왔습니다. 영국에서 들여온 두록저지(Duroc Jersey)라는 품종인데 우리나라 검은 돼지보다 빨리 많이 크는 신품종이랍니다. 평창농고에서 큰오빠 외에 농삿집 학생들 6명에게 나눠주었습니다. 1년 동안 잘 키우면 학비를 면제해주기로 했답니다.

세상에 뻘건 돼지는 처음 본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기껏 영국에서 들여온 신품종이라고 여러 번 설명했는데도 사람들은 ‘미국 돼지’라고 부릅니다. 그 시절 좋은 것, 큰 것, 질긴 것, 별난 것은 다 ‘미제’라고 했습니다.

이른 봄나물을 후루룩 후루룩 쩝쩝

뻘건 돼지가 오기 전에는 우리 집에서 돼지를 키운 적이 없었습니다. 돼지는 겨나 곡식을 먹어야 하고 수익성이 소보다 떨어져서 키우지 않았습니다. 미국 돼지는 먹이를 감당하기 힘들 만큼 먹성이 좋았습니다. 그저 먹고 돌아서면 꿀꿀꿀 연신 먹이를 달라고 합니다. 아예 우리 집은 ‘꿀꿀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채소를 넣고 죽을 끓여 먹입니다. 겨울 동안은 배추시래기 무시래기를 많이 해서 매달아놓고, 양을 늘리느라 늘 강냉이를 갈아 넣습니다. 이른 봄부터는 매달아놓은 시래기도 다 떨어졌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같이 아랫마을 윗마을 어디든지 양지 쪽 걸찬(기름진) 텃밭에 돋아나는 풀을 뜯어 날랐습니다. 새끼줄로 걸빵을 만들어 풀자루를 지고 구라우 험한 길을 오기가 풀을 캘 때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강물에서 풀뿌리를 씻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집안일보다는 들로 산으로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큰 가마솥에 풀뿌리를 넣고 강냉이가루도 넣고 겨도 넣고 훌훌하게 한 가마솥 끓여 두멍, 버럭지, 물동이에 담을 수 있는 대로 쭉 퍼놓으면 한 사흘 정도 먹일 수 있습니다. 꿀꿀이는 무엇이나 잘 먹지만 이른 봄나물 죽은 주둥이를 죽통에 처박고 “후루룩 후루룩 쩝쩝” 하며 더 맛있게 먹습니다. 꿀꿀이가 크는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통 돼지 기준으로 집을 지었는데 집이 꽉 차서 돼지가 움직일 수 없어 집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집을 높였지만 돼지의 가슴까지밖에 안 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꿀꿀이는 사람을 보면 앞발을 앞칸막이에 올리고 웃었습니다. 엄청 큰 주둥이에 큰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콧살을 찡그리고 고개를 한껏 치켜들면 왕방울 같은 두 눈이 보이지 않고 감기는 것이 아주 가관입니다. 덩치 크고 잘생긴 꿀꿀이가 재롱을 부리면 바쁜 우리 가족은 한데 모여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뤘습니다.

큰오빠 돼지는 약속한 시간에 평창농고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소처럼 끈을 매 며칠이고 평창까지 걸어가면 되지 했는데 꿀꿀이는 우리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뭔 돼지를 집채만 하게 키웠느냐고 큰오빠의 꿀꿀이는 살아서 평창농고로 돌아갈 수 없다고 약을 올립니다. 이참에 미국 돼지 맛 좀 보자고 합니다. 어린 동생들은 잡아먹자는 농담을 듣고 구석구석에 숨어서 웁니다.

우마차 타고 간 이별길

학교에서는 돼지가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고 빨리 가져오라고 합니다. 방법을 찾던 중 공사장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전문 목도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목도꾼은 여섯 사람이 멜 수 있는 목도를 만듭니다. 꿀꿀이의 두 발을 함께 묶어서 들것에 태우기로 합니다. 목도꾼들이 무겁다고 돼지 밥을 먹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어머니는 꿀꿀이가 좋아하는 죽을 만들어 목도꾼들 몰래 먹입니다. 순한 줄만 알았던 꿀꿀이는 덩치만큼이나 센 힘으로 어두니골이 떠나가라 “꽥꽥꽥~” 괴성을 질러댑니다. 힘깨나 쓴다는 남자 여럿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묶어서 실을 수 있었습니다.

여섯 명이 목도의 장대를 어깨에 메고 좁은 어두니 비탈길을 내려갑니다. 비탈길은 뒤에 사람이 뻑발을 주고 뒤로 당기는 것같이 내려갑니다. 자칫하면 앞으로 무게가 실려 곤두박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건너갑니다. 전문 목도꾼이 앞에서 뒷걸음질하며 길을 인도합니다. “흐여차 흐여, 왼발 조심조심, 오른발” 하며 좁은 다리를 건너갑니다. 빗금으로 된 목도를 멘 사람들은 양쪽에 서지 않고 일렬로 서서 가는 것처럼 다리를 건너갑니다. 이렇게 해서 어두니 다리를 건너고 다수 다리를 건넜습니다. 다수 다리를 건너 계장리부터는 미리 준비한 우마차에 태워 가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꿀꿀이가 어두니 다리나 건너는 것을 본다고 따라나섰습니다. 목도꾼들을 따라 한발 한발 따라가다보니 다수 다리까지 건넜습니다. 우마차를 타는 꿀꿀이를 쓰다듬으며 잘 가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합니다. 학교에 갔던 여동생 둘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습니다. 꿀꿀이 목을 끌어안고 엉엉 웁니다. 꿀꿀이는 지쳐서 큰 눈만 껌뻑거립니다. 사람들은 웃긴다고 무슨 돼지 새끼를 가지고 유별을 떤다고 합니다. 여동생들은 큰소리로 앙앙 울면서 “우리 가족인데 죽으러 가는데 눈물이 안 나겠느냐”고 합니다. 짓궂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며 동생들을 더 울립니다. 목도를 같이 메고 왔던 아버지가 시끄럽다고 어머니보고 아들 데리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곳에서는 웃지 않았습니다

꿀꿀이를 우마차에 태우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묶었던 발을 풀어주었습니다. 꿀꿀이 어깨 사이로 밧줄을 묶어서 우마차를 뒤로 기울여놓고 앞에서 밧줄을 당기고 뒤에서 밀어올렸습니다. 앞다리를 묶은 끈을 우마차 양쪽으로 벌려 묶었습니다. 꿀꿀이가 일어설 수도 있고 앉을 수도 있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주머니 여기저기에서 강냉이를 꺼내 꿀꿀이에게 줍니다. 꿀꿀이는 고개를 쳐들고 히~ 웃더니 강냉이를 우적우적 맛있게 먹습니다. 사람들은 박장대소합니다. 동생들과 어머니는 울면서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꿀꿀이를 안아봅니다. 옥고개재를 넘어 안 보일 때까지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꿀꿀이는 평창농고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돼지들은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어떤 돼지는 보통 돼지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다들 겨와 곡식 종류만 먹였답니다. 아마도 큰오빠의 꿀꿀이는 풀을 많이 먹여서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답니다.

큰오빠의 꿀꿀이는 종묘 돼지로 평창농고에 남게 되었습니다. 평창농고에서 집을 넓고 높게 지어 꿀꿀이를 칸막이 사이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꿀꿀이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지만 꿀꿀이는 왠지 크고 좋은 집에서 웃지 않았습니다.

전순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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