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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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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1차 회식비보다 적은 월급

청년노동 문제 담은 단편소설 8편 <땀 흘리는 소설>
등록 2019-03-13 10:32 수정 2020-05-03 04:29

2019년 최저시급은 8350원. 스타벅스에서 가장 비싼 커피 메뉴 하나를 시키고도 1천원 이상은 남길 수 있다. 시급이 커피 한 잔 값보다 못한 시절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1시간을 서서 꼬박 일해도 커피 한 잔 못 사 먹는 노동의 자괴감 앞에서 “노동은 생명이며 사상이며 광명”(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이라고 노동의 신성함을 외치는 말 따위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땀 흘리는 노동이 나를 살아 있게 하고, 의미 있으며, 찬란한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돈 벌려고, 암흑 속에서 헤매며 일하는 사람이 주변에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는, 모두가 겪는 일이 노동이지만 노동은 결코 만만치 않다.

(창비교육 펴냄)은 청년들의 애환을 담은 노동에 관한 단편소설 8편을 엮은 책이다. 문학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제자들을 걱정하며 묶어냈다. “일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제공”하려는 의도다. 노동문학이 없다시피 한 지금, 교사들이 선택한 책은 오래된 서고의 1970~80년대 노동문학이 아닌 21세기에 맞는 직업과 노동환경을 담은 고달픈 청춘들의 이야기다. 김혜진 ‘어비’, 김세희 ‘가만한 나날’, 김애란 ‘기도’, 서유미 ‘저건 사람도 아니다’, 구병모 ‘어디까지를 묻다’, 김재영 ‘코끼리’, 윤고은 ‘P’,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다. 읽는 데 한 편당 30분이 걸리지 않는 소설 속엔 인터넷방송 BJ, 가짜 블로그 홍보대행사 직원, 공시생, 일과 육아에 시달리는 이혼녀, 카드사 콜센터 직원, 외국인 이주노동자,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생산직 직원, 사무직 알바생이 나온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직업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는 일에 대해 부단히 고민한다. 적성에 맞는 일로 알았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때론 ‘을’의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연애도 포기하고 독서실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사는 공시생(‘기도’), 취업에 급급해 자신의 적성이나 희망과 상관없이 주어진 업무를 하게 된 콜센터 직원(‘어디까지를 묻다’), 삼겹살 1차 직원 회식 밥값이 자신의 월급보다 많은데 그 월급마저 쪼개 일을 시키려는 회사를 바라보는 알바생(‘알바생 자르기’) 등의 이야기는 딱딱하지도 교조적이지도 않으면서 청년실업과 감정노동, 직업윤리 같은 노동문제에 관한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한다. 사회초년생과 예비 사회인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전쟁터에 가듯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출근길에 나서지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읽어보면 좋음직한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다보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는 상징적인 문구로 시작하는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이 생각난다. 출간된 지 벌써 35년이 된 이 시의 가치는 노동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한 퇴색될 리 만무하다. 땀 한 방울의 무게를 가치 있게 평가해주는 사회는 오긴 오는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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