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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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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버티는 사람들, 프리랜서

비정규직 독립 인터뷰 노동자 지승호씨의 생존기

혹은 고군분투기
등록 2017-05-25 16:27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생소한 분이 많으시겠지만, 저는 비정규직 독립 인터뷰 노동자입니다. 긴 인터뷰를 진행해서 단행본 내는 일을 주로 합니다. 17년 동안 인터뷰 관련 단행본만 50권을 냈으니 잘하지는 못했어도 꾸준히는 해온 셈이죠.

우리 사회에서 프리랜서는 시간을 맘대로 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운 좋으면 돈까지 버는 일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매어 사는 직장인들은 프리랜서를 부러워하죠. 저 역시 ‘당신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새벽에 자고 있는데, 경찰관 두 분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SNS 글을 보고 누가 신고를 했다”면서요. 선거철이니만큼 내가 선거법 위반 글을 올렸나,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렸나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낮에 올렸던 “이번 고비를 넘기기 힘들 것 같네요. 그간 도움 주신 모든 분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보고 누군가가 ‘이 사람 자살을 할 것 같다’고 신고를 했다는 겁니다. 신고하신 분도 프리랜서 입장에서 아는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 경험이 있었던가봅니다. 그래서 노파심에 저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으니 신고를 했던 거지요. 헛걸음을 한 경찰관분들에게 죄송하고 민망하고 난감하고 쪽팔린 일이라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걱정이 되어서 신고를 한 것이고 제가 빌미를 제공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성공하지 못한 데는 게으르고 전략이 부재했으며 재주가 일천한 탓도 있었겠죠. 하지만 인터뷰를 둘러싼 환경의 열악함도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열정 페이’와 뭐가 다르지

2011년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최고은씨가 생활고와 병마로 사망했을 때 많은 분이 프리랜서들의 삶과 작업 환경에 대해 개탄하면서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희 같은 프리랜서들은 잠깐 나오고 말 얘기인 것을 알았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요. 그때 제 작업을 지지하고 꽤 진보적인 생각을 한다는 후배가 술자리에서 제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왜 국가나 사회가 챙겨줘야 해.” 저는 충격을 좀 받았습니다. ‘언제 국가와 사회가 도와줬다고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하고요.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과 달리 대부분의 프리랜서는 안정적이지 못한 수입, 그로 인한 생활고, 일상적 우울감에 시달립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물론이고,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자금으로 쓴 대출금을 갚을 날이 되면 목을 매거나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경험을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프리랜서의 일을 좋아해서 하는 ‘놀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터뷰집을 내는 것이 호의적인 인터뷰이를 만나 즐거운 시간 보내면서 받아적으면 그냥 책으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요. 출판사 관계자들조차 말이죠.

요즘 출판사에서 제시하는 계약금은 대체로 50만원입니다(얼마 전에는 30만원도 있었죠). 인터뷰어의 경우 그 돈으로 인터뷰이에 대한 자료를 사서 보고, 인터뷰할 때 인터뷰이와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합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책이 나와야 초판 인세를 받을 수 있죠. 요즘 같은 출판시장에선 초판을 팔기 어려우니 몇 달 일한 수입이 200만~300만원 선에 머무를 때도 많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그조차 떼어먹히는 일도 있고요. 물론 출판의 특수성이 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열정 페이’와 뭐가 다르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러려고 한국에서 글을 쓰나’

한 권의 인터뷰집을 내려면 꽤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노동 강도도 상당합니다. 그러니 일을 계속해도 몸만 축나고 빚이 늘어가는 구조가 됩니다. 출판사도 어렵겠지만, 기획을 할 때 저자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도록 부담을 함께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건비, 콘텐츠 생산자의 몫을 줄이는 것이 당장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모두 공멸하는 거 아닐까요? 이런 상황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이나 같은 책에 10억원 이상의 선인세를 제시하는 출판사가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이러려고 한국에서 글을 쓰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 사람이 돈이 없을 땐 경멸의 시선을 보내면서 어쩌다 성공하면(정확하게 말하면, 성공한 것처럼 보이면) 불로소득을 얻은 사람 취급을 하는 사람들도 프리랜서들을 괴롭힙니다. 막바지에 제작비가 부족해 전세금을 빼서 영화 를 완성한 양익준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상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술 한잔 사라’는 요구에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당신한테 술 살 돈 있으면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 개런티를 챙겨줘야지’ 했다고 합니다. 프리랜서들이 매체에 소개되면 사람들은 여지없이 ‘술 한잔 사라’는 연락을 합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죠. 물론 축하하는 선의에서 하는 얘기겠지만, 일일이 설명하기도 구차한 상황에서 프리랜서들의 속은 타들어갑니다.

언론사들은 외부자에게 좀처럼 인터뷰 글을 기고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17년 일하는 동안 저에게 연재 기회를 준 곳은 서너 매체에 불과합니다(그중 한 매체에는 정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 칼럼의 진입장벽도 높지만, 인터뷰의 경우는 더욱 심하죠. 최근 외부 기고자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 늘어났지만, 그것 역시 대부분 셀러브리티나 진보 진영 명망가에게 한정되니 저 같은 프리랜서에겐 상처 아닌 상처가 됩니다. 프리랜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먹고살 수만 있으면 그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죠. 아니 빚을 내서라도 그 일을 하면서 버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박수는 쳐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안 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람을 아끼고 돌아보는 사회를

한국 보수는 대체로 사람들을 개·돼지 취급하고, 진보는 대개 시스템을 강조합니다. 그 안에 사람은 잘 안 보입니다. 미국의 목사이자 노예폐지 운동가인 헨리 워드 비처는 “증오만큼 끈질기고 보편적인 정신력은 없다”고 했죠. 선거도 끝났으니 한명 한명 사람을 아끼고 돌아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승호 인터뷰 작가

*한국의 대표적인 인터뷰 작가 지승호의 ‘인터뷰의 인터뷰’가 3주에 한 번씩 독자를 찾아갑니다. 지승호 작가는 연재를 시작하며 “한 프리랜서 인터뷰어의 실패기, 생존기, 혹은 고군분투기가 될 것 같습니다. 거슬리는 얘기들이 좀 있더라도 부디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주시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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