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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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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독설가 신해철

이슈마다 변명·사과보다 도발·위악 선택했지만 천성적으로 선한 사람
등록 2017-11-17 12:04 수정 2020-05-03 04:28
가수 고 신해철씨에게 “열려 있는 인터뷰어”라는 말을 들었던 지승호씨는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강조한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가수 고 신해철씨에게 “열려 있는 인터뷰어”라는 말을 들었던 지승호씨는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강조한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인터뷰라는 일을 하다보니 ‘그간 인터뷰한 사람 중 누가 제일 달변이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굳이 꼽자면 김어준, 유시민, 한홍구, 노회찬, 봉준호, 표창원, 진중권, 신해철 등이 있을 것 같다.

10월27일은 고 신해철의 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후 2시 경기도 안성의 추모공원에서 열린 공식 추모 행사에 다녀왔고, 저녁 땐 팬들이 마련한 ‘탈상’ 모임에도 다녀왔다. 이날은 영화 (감독 전인환)의 프로듀서 조은성의 주도로 영화감독 안영진, 음악감독 신대철이 참여해 제작에 들어가는 다큐멘터리영화의 첫 촬영날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공손하고 예의 바르며 느릿느릿 만사태평이고 특별히 손이 갈 필요 없는 수줍고 조용한 아이”였던 신해철은 음악계라는 살벌한 전쟁터에 들어와 “아티스트 알기를 머슴보다 못하게 여기는 PD, 아무 데나 쌍욕을 찍찍 갈겨대는 매니저, 가수는 자신 앞에서 끝 간 데 없이 공손하고 굽실거려야 한다고 믿는 대중” 사이에서 자신의 음악과 밴드를 보호하려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거만하고 위악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독설가’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그는 말했다. “가요계에 립싱크 논쟁이 있었다. 그때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하며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립싱크에 찬성한 것이 아니다. 립싱크가 싫다면 라이브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박수를 쳐줘야 한다. 립싱크하는 사람들을 욕한다고 립싱크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였다. 아이돌 집단을 욕하는 것만으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인디와 아티스트 쪽 노래를 소개했다. 계속 자신을 비난하던 후배가 밴드를 만들어 데뷔하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후배에게 “게임 CD 좀 구해줘”라고 부른 뒤 “별걸 다 시키네” 하고 투덜대며 달려온 후배에게 슬쩍 봉투를 내밀며 “나 좀 예쁘게 봐줘”라고 말하는 등 알고 보면 ‘미담 부자’였다.

그는 한국 연예인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될 대중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대중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음악시장의 문제를 지적할 때 뮤지션 문제, 환경 문제, 정부의 책임 등을 다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이할 정도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대중의 책임 문제다.” 요샛말로 치면 ‘돌직구’였다. 그는 대중이 “매일 술 마실 돈은 있어도 예술비·문화비 지출을 자기 인생에서 맨 마지막에 놓아버린다”고 개탄했다. 그는 한국에 버스킹을 하는 길거리 악사가 드문 이유로 “행정적 이유로 연주를 못하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연주해도 돈을 놓고 가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남겼다.

해나 아렌트의 말이었던가. “대중은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변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몇몇 이슈에서 변명이나 사과보다 도발이나 위악을 택한 그의 태도는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게 했다. 그의 독설을 네거티브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포지티브한 방법으로 세상과 싸우는 사람이었고, 천성적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저는 나 자신이 훨씬 더 공격적이라고 생각해요. 부정적 네거티브의 공세로 ‘이 음악은 안 된다. 얘네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수비입니다. 대안을 찾아내고 뭔가 판을 바꾸려면 근본적 개혁을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훨씬 적극적인 공격 자세라고 봐요.”

네거티브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런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2008년 나와 진행한 인터뷰집 이 나온 뒤 “지승호가 같이 하지 않는다면 사인회를 하지 않겠다”며 나를 존중해주었다. 물론 난 “신해철 팬들만 득시글할 텐데, 미쳤다고 갑니까?”라는 말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여러 자리에서 그는 “지승호가 질문한다면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대답했다”고 내게 신뢰를 표해주었다. 훗날 그의 한 팬에게서 나와의 대화에 대해 그가 “정말 힐링이 되는 인터뷰였다”고 말한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는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터뷰어는 밥상을 차려주고, 조명을 비춰주는 사람이지만, 상대의 태도에 상처받을 때도 종종 있다. 나는 이런 인터뷰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으면서 받기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승호 인터뷰 작가<font size="2">*‘인터뷰의 인터뷰’ 연재를 마칩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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