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의전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쓴다.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 이해는 가지만, 그게 지나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행사장에서 자신을 소개해주지 않는다고 주최 쪽에 항의한 것이 기사화되어 비판받은 국회의원이나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서울역사 안까지 관용차가 들어가서 물의를 빚은 분도 있었다. 의전을 먼저 챙기는 정치인치고 국민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한때 90%를 육박했던 이유는, 각종 개혁 조치나 탕평 인사 등도 있겠지만 소탈하게 국민과 사람을 앞세우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깨에 뽕 없는 정치인… 겸손이 오히려 아쉽기도“그동안 인터뷰해온 사람들 가운데 인상적인 사람의 인물 열전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길윤형 편집장의 제안을 받고 어떤 분을 먼저 쓸지 고민이 많았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당했다. 검증된 행정 능력조차 폄훼당하며 권력욕의 화신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그때 “내가 만난 박 시장은 그런 분이 아니다”라고 글 한 줄 보태지 못한 부채감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2015년 6월 영국 일간지 은 혁신을 이끈 세계 5대 시장을 발표했다. 박원순 시장이 포함됐다. 일개 신문의 선정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게 아닌가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일이었다.
가령 나 같은 유력지에서 한국 대통령을 버락 오바마, 쥐스탱 트뤼도, 앙겔라 메르켈, 시진핑 등과 함께 세계 5대 혁신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생각해보자. 진보, 보수를 떠나 온 나라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더 놀라운 건, 그중 현직은 박 시장이 유일했다. 세계 5대 혁신 대통령 가운데 현직으로 한국 대통령만 유일하게 선정된 셈이고, 나머지 네 명은 역대 대통령 중 업적이 큰 사람들이 뽑힌 것이다. 은 박 시장을 뽑은 이유로 “시민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시장, 시민참여, 공유경제, 복지정책” 등을 꼽았다.
지난해 박원순 시장과 도올 김용옥 선생이 참여한 대담집 사회를 보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이런 자랑스러운 일을 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나요? 홍보팀들 다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박 시장은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답했다. “아유, 그런 것 말고도 서울시 정책 중에 자랑할 만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조직의 업적이나 정책을 내세우는 박원순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직업 정치인으로서는 조금 아쉽다고 느낄 때가 있다. 피아르(PR), 즉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이 정치인의 주요 자질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도올은 박 시장에 대해 “내가 본 정치인 중 가장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정치인인데, 보좌하는 주변 사람 모두가 그런 것 같다”고 평했다. 생각해보면 서울시장이란 큰 권력을 쥐고 그런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권력을 가진 사람 본인은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더라도, 주변에서 권력자의 눈치를 살펴 의전을 챙기는 일이 많다. 내 경우, 인터뷰하러 갔을 때 보좌관이 복장을 지적한 일도 있었다.
2008년 인터뷰집 추천사에서 김어준 총수는 말했다. “내게 박원순은 순도 100의 빚쟁이다. 마땅히 내가 감당할 몫이어야 했으나 까맣게 잊고 싶었던 사회적 부채들을 어찌나 부지런하게, 온갖 분야에서, 대신 지불해버리는지, 간혹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번개같이 줄행랑을 치곤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박원순의 정책은 시민사회단체 시절부터 쌓여온 실험과 경험의 결과물이다. 물론 정치권에 들어선 지금은 절반의 사람을 적으로 두고 시작하는 게임이니 시민단체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박원순은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매년 책으로 남긴다. ‘초판클럽 회원’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책이 안 팔리는데도 말이다.
박원순에 대해선 지지자들조차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하는 것 같고, 대중도 ‘좋은 사람인 것은 알지만, 궁금하지는 않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박원순의 정책을 좀더 연구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세상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이 뽑은 세계 5대 혁신 시장은 서울시의 박원순, 독일 베를린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프랑스 파리의 베르트랑 들라노에, 미국 뉴욕의 마이클 블룸버그, 콜롬비아 메데인의 세르히오 파하르도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들 가운데 현직은 박원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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